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8-10-15   882

[창간호] 특·집·글·③ 합의회의에 대한 우려와 비판들, 그리고 그 함의

― 1994년 영국 합의회의를 중심으로

합의회의는 본질적으로 이중적 성격을 지니는 기제라고 생각된다. 전문성(expertise)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시민지식의 유의미성을 인정하고 이를 도입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참여민주주의를 확장된 형태로 구현하는 '제도'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과학기술적 쟁점에 대한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통제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합의회의는 이 둘을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형태로서 그동안 인지되어 왔다.

그러나 합의회의를 실제로 준비하고 개최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이상적인 모습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중재'와 '규제'의 결합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 합의회의의 실제 운영에서는 오히려 이 두 가지 방향이 상호모순된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민주주의적 원칙의 관철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과학기술적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으로서는 실패를 맛본다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목적의식적으로 합의회의를 사고하여 그것이 지니는 급진민주주의적 성격과 인식론적 의미가 희석된다거나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에 아울러, 우리 나라와 같이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담

론이 취약한 곳에서는 과민모와 같은 단체가 중재와 규제의 역할을 모두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 됨으로써 발제문에서 언급된 바와 같은 "역할 갈등"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문제가 덧씌워질 가능성도 있다.

이 지점에서 합의회의를 이미 개최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거친 바가 있는 영국의 경우를 참고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런던 과학박물관의 주관으로 1994년에 개최되었던 식물 생명공학에 대한 합의회의는 영국의 환경운동가들과 좌파적 지식인들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 비판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합의회의가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회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의 개최 과정에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들이 개입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를 통제하는 것이 합의회의의 성공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먼저 합의회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개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준비주체가 인적·재정적 자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권위를 지녀야 하며 그 결과물이 정책결정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강제성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합의회의의 위상을 사회적으로 제고하는 것이 선결 요건이 된다. 즉 합의회의는 일차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 차원의 논의를 불필요한 것으로 보는 기득권 세력의 무관심을 딛고 일어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계를 넘어선 이후, 즉 합의회의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인지된 이후에는 이제 합의회의를 어떤 특정한 사회세력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려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합의회의에서 오가는 담론들은 필연적으로 그 외부의 사회적 역관계를 반영하여 형성되기 마련이며, 따라서 합의회의 자체가 (예컨대)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생명공학의 문제들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고 비판자들은 주장한다. 합의회의를 둘러싼 사회적 역관계의 대립이 존재한다는 것은 영국 합의회의의 결과로 나온 시민패널 보고서가 의미하는 바―그것이 생명공학에 대한 지지의 표시냐, 우려의 표시냐―에 대해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해석들이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잘 볼 수 있다. 결국 합의회의는 특정한 과학기술적 쟁점 및 이를 둘러싼 사회적 역관계의 양상과 분리시킬 수 없는 치열한 대립의 장(場)이라는 것이고, 이를 전문가정치와 지배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의 영향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의미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거리의 정치'로 대표되는 기존의 운동방식들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언급은 사실 대중적 공간에서 생명공학에 대한 찬반 논의가 부딪쳐 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 나라의 상황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환경적 문제들이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고 생명공학 전문가들이나 관료들 역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중적인 공간에서 풀어낸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개최될 우리 나라 최초의 합의회의는 찬·반 양 진영 모두에게 대단히 건설적인(constructive)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며, 이후의 관련 논의에 대한 하나의 준거점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이번의 합의회의가 그만큼 비중이 있는 행사라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의 합의회의가 위에서 언급한 영국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준비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김명진·학생사업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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