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집중투자, 양극화·민생 대응은 부족
미래대응기금, 적립·사용 기준과 재정 통제 명확히 해야
반도체 호황 세수 넘어 증세로 안정적 복지 재원 마련해야
이재명 정부는 오늘(9/1) 2027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총지출을 전년 본예산보다 93조 원(12.8%) 늘어난 820조 9천억 원으로 편성하고 잠재성장률 제고와 양극화 완화를 핵심 목표로 제시했다. 올해와 비교하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증가율은 29.7%로 보건·복지·고용의 9.3%를 크게 웃돈다. 정부가 반도체·피지컬AI·AI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를 최우선 지원 대상으로 삼고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재정운용의 전면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재정투자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산업 정책에 대응하는 것은 한국의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재정 규모가 93조 원이나 늘어났는데도 이미 각종 수단을 통해 지원하고 있는 AI 등 산업에 또다시 막대한 자금이 지원되고 정작 양극화 완화에는 눈에 띌 만한 지원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참여연대는 이번 예산안을 성장투자에 비해 불평등 완화와 민생안정을 위한 재정전략이 뚜렷하지 않은 불균형한 예산안으로 평가한다.
지금과 같은 경기 국면에서는 재정정책의 기조도 통상적인 경기호황기와 달라야 한다. 실질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웃돌고, 명목성장률도 반도체 수출 호조로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물가와 자산가격의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경기호황은 극심한 양극화를 동반하고 있다. 반도체와 일부 첨단산업은 초호황을 누리는 반면, 전통 제조업과 자영업에서는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청년고용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준금리 인상은 반도체와 일부 첨단산업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나머지 분야에는 부정적인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재정정책이 과열을 억제하면서 긴축적 통화정책이 심화시킬 양극화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하고, 올해보다 194.2조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국세수입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한 이유다. 국세수입 증가분 전부를 내년 한 해에 지출하는 것은 물가와 자산가격을 자극할 수 있으므로, 증가분의 절반 정도만 내년도 지출 확대에 반영하겠다는 정부 예산안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확대되는 지출은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복지지출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이 여전히 OECD 평균의 약 69% 수준인 만큼 복지 확대에 재정의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의 복지지출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117.1조 원으로 편성한 ‘K자형 양극화 대응, 모두의 성장’ 부문은 국토대전환·지방주도 성장, 소상공인·농어민 지원, 적극복지, 사회연대경제 등의 예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적극복지를 제외한 사업들은 양극화 완화의 성격은 지니지만 직접적인 복지지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양극화 완화에 걸맞은 재정을 배분했는지는 보건·복지·고용 예산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전년보다 24.6조 원 늘어난 289조 원으로 편성되었지만, 증가율은 9.3%로 총지출 증가율 12.8%에 미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총지출도 148.8조 원으로 올해 본예산 137.5조 원 대비 8.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또한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 증가율은 15.2%에 달하지만, 보건·복지·고용 부문의 연평균 증가율은 7.5%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공적연금 등 의무지출의 자연 증가를 고려하면 재량적 복지지출은 크게 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1.26조 원을 신설하고 지역사회 통합돌봄 지원을 늘린 것은 긍정적이나 지역통합돌봄이 제대로 정착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특별회계가 기존 사업의 단순한 이관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규 투자로 이어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정부는 기준중위소득을 6.7% 인상하며 ‘역대 최대 인상’을 강조하지만, 기준중위소득과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 간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었다. 단년도 인상에 그치지 말고 산정방식을 개선해 저소득층의 실질적인 보장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기초연금을 소득구간별로 차등지급하고 일부 수급자의 급여를 사실상 삭감하는 것은 보편적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기초연금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무엇보다 이번 예산안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미래대응기금의 설치다. 내년 국세수입이 올해 본예산보다 194.2조 원이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세수 증가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경상지출에 모두 사용했다가 세수가 급감하면 지출을 줄이거나 국채 발행을 확대해야 하는 등 재정운용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의 일부를 당장의 지출과 분리해 관리하고 향후 세수 변동과 필요한 재정수요에 대비하는 미래대응기금의 설치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재원을 미래대응기금에 배정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부는 내년도 세수 증가분을 추세적 세수와 일시적 세수로 구분하고, 194.2조 원 가운데 162.3조 원을 일시적 세수, 즉 ‘추가세수’로 분류했다. 추가세수는 과거 10년간의 세수 추세를 연장하여 추정하고 이를 초과한 금액으로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한 것이다. 과거의 세수 추계를 기준으로 일시적 세수와 추세적 세수를 구분하는 방식에는 자의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만큼 적립 기준의 적정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적립방식이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봐야 한다. 세수 추세치를 보수적으로 추정하면서 세수 증가분의 상당액이 미래대응기금에 배정되어 지방정부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 설치 등에 따른 지방교부세 감소 규모를 30.5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수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지방정부가 세수 증가의 혜택을 충분히 공유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미래대응기금에 지방계정 15.3조 원이 편성되었지만, 사용처를 중앙정부가 결정하므로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늘어나는 것과는 다르다. 더구나 지방정부의 자체 재원 매칭을 요구하는 복지사업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도, 재량재원은 늘지 않고 그중 일부마저 중앙정부가 내려보낸 복지사업의 지방비 부담에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 세수 호황 가운데 어느 정도가 지속적이고 어느 정도가 일시적인지 알기 어려운 만큼 보수적으로 설계할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이 제약될 수 있는 만큼 적립 기준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보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에도 우려할 점이 있다. 첫째, 미래대응기금 162.3조 원 가운데 45.4조 원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자하기 위한 사업계정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구성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기존 예산에도 성장동력 관련 지출이 많은데, 미래대응기금에도 성장동력 계정을 만들고 14.2조 원을 편성했다. 성장동력계정의 규모를 줄이고, 4대 사업계정 전체적으로 산업전환의 충격을 받는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고용·소득 안전망, 주거와 돌봄 등 불평등 완화와 사회적 전환 대응의 프로그램을 배치해야 한다. 특히, 청년계정에는 ‘보편형 공공임대주택’ 사업비 1.4조 원이 편성되었는데, 중산층까지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유형의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라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청년층에게 실효성있는 부담가능한 공공임대주택에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104.4조 원은 여유자금으로 운용하다가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세수결손 발생시 추경 편성 없이 지출을 줄여 대응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재량으로 변경할 수 있는 미래대응기금의 규모가 20%이고, 현재 추진 중인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30%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성장정책에 과도하게 치우친 정부의 성향을 고려하면 미래대응기금이 더욱 성장지향적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금을 정부 재량으로 운용할 수 있는 만큼 사업 변경의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하고 국회의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발 세수 증가는 조세부담률을 GDP 대비 약 3%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예측한 2027년 조세부담률 18.8%가 이번 전망에서 22.5%로 올라갔고, 2028년 22.4%, 2029년 22.2%, 2030년 21.9%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부담률 상승은 낮은 복지 수준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과 중기재정계획은 여전히 성장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성장정책도 중요하지만 그 속도와 강도는 적정해야 한다. 이제는 과도한 성장 집착에서 벗어나 한국에 시급한 복지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이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될 내년도 예산안은 이러한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재명 정부는 자연증세에 기댄 소극적인 복지 확대에 머물지 말고, 적극적인 증세를 통해 제대로 된 복지국가로 나아갈 비전을 중기재정계획안에 반드시 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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