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용ㅣ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민동세ㅣ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이사장
인터뷰 및 정리ㅣ 전은경·이성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가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이 두렵다’라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는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초고령 사회인 한국에서 노인 돌봄은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5월의 봄봄클럽 <모두가 노인이 된다>에서는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면서 노인의 삶과 돌봄에 대해,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복지톡에서는 지난 5월 27일 진행된 봄봄클럽의 내용과 김형용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민동세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형용 안녕하세요? 저는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근무하는 김형용이라고 합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민동세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이사장 민동세입니다. <도우누리>는 2008년 자활공동체로 출발하여 생애 전주기에 필요한 돌봄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보건복지부 지정 제1호 사회적협동조합이고, 현재는 서울시립 중랑노인전문요양원을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돌봄, 누가 해야 할까요? 또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김형용 노인돌봄은 아동돌봄과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모든 동물이 자식에는 헌신적이지만 부모를 돌보지는 않기 때문이죠.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자식에 투자하는 종은 살아남지만 부모에게 투자하는 종은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노인이 된 부모를 돌봐요. 우리는 부모를 정말 사랑으로 돌보는 걸까요? 아니면 책임감이나 어떤 의무로 돌보는 것일까요? 이것은 인간이 형성한 사회공동체의 한가지 특이점이죠. 인간은 폴리스를 형성하여 문명을 개척한 것처럼 노인돌봄에서도 생물학적 법칙을 극복하는 규범과 윤리 그리고 제도를 만들면서 진화해 왔어요. 그 자체로 개인의 본성과 거리가 있는 매우 사회적인 것이죠.
우리나라는 3년마다 한 번씩 복지패널 조사를 하는데요. 거기에 보면 ‘부모를 자식이 돌봐야 한다’라는 의견이 작년 조사 결과 20%이에요. 5명 중 1명만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 것이죠. 그런데 이게 15년 전만 해도 반대였어요. 부모를 자녀가 돌봐야 한다는 의견이 50%가 넘었어요. 참 많이 바뀐 것인데요. 노인돌봄은 이렇게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인식도 급격히 바뀌는 성질의 것이에요.
그런데 사회적 돌봄이란 누가 돌본다는 것일까요? 이게 아주 중요한 지점인데, 사회적 돌봄이 내가 아닌 남에게 떠맡기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에요. 누가 돌볼 것인지를 논하지 않고 사회에 맡기게 되면, 결국에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이 맡게 되겠죠. 그래서 돌봄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예가, 하인이, 피지배 계층이 돌봤고, 그다음은 며느리가, 그다음은 딸이, 그러다가 외국인을 데려 오자까지 이야기가 되고 있어요. 누군가를 착취하는 돌봄은 정의롭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학자들도 돌봄은 상호의존성을 인정해야 하고, 서로의 책임이고, 서로 돌보는 관계의 사회적 체계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의 현황은 어떤가요?
김형용 아시겠지만, 미증유의 시대입니다. 기대수명이 이렇게 늘어난 사회를 경험한 적도 없었고, 돌봄의 기간이 이렇게 길어진 시대도 처음입니다. 불과 백 년 전 기대수명이 40세 정도일 때 돌봄이 문제가 될 리 없었고, 기대수명이 65세 전후였던 산업화 시대에도 부모 돌봄은 이슈가 될 수 없었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2024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50년에는 인구 열 명 중 네 명이 노인이며 80세 이상의 노인도 14.3%에 달합니다. 결국 돌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텐데요. 노인장기요양보험만 해도 작년 급여비가 16조 원을 돌파했는데, 2050년이 되면 130조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정도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돌봄이 이루어지면 좋은데, 지금의 돌봄서비스 제도와 공급 측면에서 보면 매우 암울하다는 것이죠. 돌봄이 집에서 그리고 동네에서 자유롭게 연결되고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요양시설 중심으로 민간 개인 사업자의 영리적 목적에 따라 서비스 구매가 이루어지는 식이죠.
한국의 돌봄은 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공공성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노인을 돌보는 것이 상품화된 서비스가 되면, 돈이 되는 돌봄을 만들려고 할 것이고, 돌봄 전달체계는 더욱 비효율적으로 될 뿐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예컨대, 시설에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돌봄이 아니라, 시설에서 집으로 건강하게 돌려보내는 돌봄이 아니라, 시설에 오래 머무르게 하면서 급여비만 챙기는 돌봄이 장려되는 현실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가족들은 ‘내가 직접 돌볼 것인가, 아니면 시설에 보내고 죄책감에 시달릴 것인가’라는 이분법적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나라 노인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잔인한 이분법을 깨는 것이며, 이를 위해 공공의 책임 하에 운영되는 지역사회 돌봄 기관이 꼭 필요합니다.

돌봄의 중요한 공간인 시설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요. 우리나라의 노인돌봄 시설은 어떻게 되나요?
민동세 노인돌봄 시설은 규모로 구분합니다. 거주하는 노인의 숫자를 기준으로 9인 이하는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그 이상은 일반요양원으로 부르는 노인요양시설로 구분을 합니다. 9인 이하의 시설의 경우 소규모이다보니 시설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터라 인력 규정을 일부 완화시켜 놓았다고 보면 됩니다. 9인이 넘어가면 일반요양원인데 정원수에 따라 일하는 직군과 사람의 수가 노인복지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어르신 숫자로 얘기하면 어르신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3명당 1명), 간호 인력(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은 25명당 1명, 사회복지사는 100명 초과할때마다 1명, 영양사 급식인원 50명 이상인경우 배치, 이런 식으로 직군별로 일하는 사람이 어르신 숫자에 맞춰서 되어 있는 거예요.
이 인원을 어떻게 운영하는가의 문제는 철저하게 운영자의 몫입니다. 시설에 더 많이 투자했다고 돈을 더 주지 않고, 어르신이 호전됐다고 해서 성과금을 주지 않죠. 제가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의 장기요양제도는 숙박업처럼 되어 있다”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시설에서 24시간을 유지하고 있어야 수가를 주기 때문이에요. 가족이 와서 데리고 외박을 나가면 깎고, 병원에 입원해도 깎습니다. 그러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이익이 남을 테니까요. 다른 하나는 인건비와 관련된 것인데요. 시설에서 가장 큰 비용은 인건비가 차지합니다. 그래서 시설에서는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을 저가로 쓰거나 오래 일하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어 24시간을 돌봐야 된다고 할 때 가장 표준적인 일자리는 4조 3교대거든요. 즉 4개 조가 8시간씩 일하고 돌아가면서 쉬어야 근로기준법상 연차도 보상이 되고 그러는데, 매출 중심으로 보면 4조 3교대를 쓰면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12시간 맞교대, 심하게는 24시간 맞교대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어떤 요양시설에 보낼지 고민이 된다고 하면 시설 자체도 봐야 하지만 인력 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꼭 봐야 합니다.
함께 본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다큐를 보면 일본의 노인돌봄은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라 보이는데요.
민동세 일본의 경우 요양원의 미션은 어르신들을 건강하게 지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서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설에 오신 분들에게 24시간 집중 케어를 하고, 호전이 되면 다시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일본은 지역사회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정원의 수가가 깎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잘해서 지역사회로 많이 내보내기 위해 긍정적으로 선순환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돌려보내면 돈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혼용해서 사용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요양원은 사회복지시설이고, 요양병원은 의료기관으로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요양병원 간병비를 급여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인데, 사실 이게 꼭 잘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병비 부담을 못하는 분들이 요양병원을 찾게 되고, 그럼 당연히 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그냥 유지만 되는 거죠. 실제 노인이 돌아가시는 과정을 연구한 자료를 보면, 가장 큰 비용이 돌아가시기 전 1개월의 병원비라고 나옵니다. 요양원에 계시다가 요양원에서 책임질 수 없는 의식 상태가 되면 그다음에 요양병원으로 가시는 거거든요. 요양병원은 결국 실제 의사의 처치가 아닌 유지로 운영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다큐에서는 집에서 가족이 같이 어우러져 살면서 의사가 케어하고,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는 내용들이 담겨있어서 감동적이었는데요. 어떻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김형용 우리나라의 돌봄정책 방향도 AIP(Aging in Place)를 지향하고 있기는 합니다. 3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돌봄통합지원법이 대표적인 예이고요. 당연히 노인 돌봄의 방향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이고, 돌봄의 시간 내에서도 노인 당사자의 자유와 존엄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돌봄이 행복이 아닌 불행의 시간이 되거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원조를 강제하는 것이라면 무슨 목적이나 의미가 있을까요? 돌봄은 노인이 무엇인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원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돌봄을 자꾸 식사 지원, 화장실 도움, 복약 관리 이런 것으로만 한정하는 것 같아서 매우 아쉽습니다. 노인이 집에서 가족과 어우러져 살면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한다는 것은 가족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평가되면 안 됩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란 노인이 된 이후에도 노래 부르러 나가고, 봄바람도 쐬고, 동창모임에 나가서 수다도 떨고, 김장도 담그는 등 스스로가 원하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장기요양보험 수급자이건 돌봄통합 대상자이건 개별 제도로 커버되지 않지요. 돌봄은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재택의료, 방문간호가 원활히 흐르는 것은 기본이고, 그 밖에도 가족과 이웃, 친구, 지인, 종교, 자원활동가들의 만남과 관계의 지속도 매우 중요하고요. 이러한 전인적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폭넓은 자원들이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그런데 아직은 돌봄통합이 기존 서비스의 연계 수준에 그치고 있어요. 돌봄의 우려와 요구는 빅뱅 수준인데, 대응은 기존 관료적 구조에 꽉 막힌 느낌입니다.
민동세 내가 살던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존엄한 마지막이라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실 것 같은데요. 저는 과연 그런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어머니를 마지막에 집으로 모시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재택의료센터도 확인하고, 침대도 복지용구로 바꿔서 준비했는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결국 응급실로 입원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원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저도 형제가 넷인데, 다 떨어져서 살고 있는데 한 달씩 돌면서 어머니를 모실 수는 없잖아요.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어려울 테고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시설이 필요하다가 아니라 내가 가정에서 계속 살기 위한 조건으로 시설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집에서 24시간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많거든요. 다큐에서 보면 회사에서 일하면서 어린이집 CCTV를 보듯이 어머니를 보고 있는데 과연 이건 옳은 걸까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인권의 문제가 아닐까요? 특히 노인분들은 계절을 많이 타시는데 이럴 때 집은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내 집이 좋고, 내가 익숙한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저는 시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요양원에서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시설에서 친구도 사귀면서, 자기 욕구를 만족하면서 사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죠. 문제는 우리나라의 제도가 시설과 가정을 단절시키고 있다는 것이에요. 이런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면서 시설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효성이 지극한 자녀분들 가운데는 요양원 근처로 이사를 와서 부모님을 매일 만나기도 합니다. 좋은 국공립요양시설은 필요한데, 혐오시설이라고 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요양원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있을까요?
민동세 예를 들어 재가센터나 주간보호센터의 경우 많이 만들어지긴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센터에서 요즘 ‘노치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유치원에서 따온 비하적 표현인데요. 인지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다시 5~6세로 만들어요. 굉장히 무례한 거죠. 이런 데 가면 맨날 노래만 부릅니다. 주간보호센터 차량에 ‘어르신 유치원’이라고 쓰여 있는 곳은 가지 말라고 권유해 드립니다.
최근에는 치료나 입원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필요한 시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긴 합니다. 퇴원을 했는데 집에서는 집중적인 돌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임시로 돌보는 부분이 필요한 거죠. 중간 집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요양원에서는 사실 그게 어렵죠. 저희 조합이 처음에 시립요양원을 위탁했을 때 사업계획서에 생활실에 20%를 공실로 유지하겠다고 했었어요. 재가서비스를 받다가 집중적인 케어가 필요한 분들은 공공요양원의 공실로 모시면 좋지 않겠나 생각한거죠. 그리고 다시 회복되면 재가서비스를 받게 하시고요. 그런데 막상 가봤더니 이렇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서울시립요양원에 대기 어르신만 300명이 넘었어요. 공실을 두는 순간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다 전화가 옵니다. 그래서 요양원은 요양원대로 기능을 두고, 다른 개선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 그런 면에서 통합돌봄 지원과 관련해서는 이런 부분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돌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내에서는 누가 돌봄을 맡아야 하는지를 두고 성별이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책임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돌봄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하고, 특정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지 않는 돌봄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의 변화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김형용 저는 돌봄 감수성이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병원에 가보면 예전에는 주로 딸이나 여성 가족이 돌봄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아들 등 남성 가족의 참여도 많아졌습니다. 가족구조가 변화하고 있고 돌봄이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돌봄에 대한 인식 개선은 이미 진행 중이고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서로 돌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국가나 제도만을 강조하는 것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어요. 돌봄 감수성이 떨어질수록 “국가가 돌봐야지”, “제도가 해야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돌봄 사회는 단순히 국가가 책임지라는 것은 아니고, 구성원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는 사회여야 합니다. 타인의 노동으로 더 많은 돌봄을 원하면, 더 많은 비용 부담, 증세에 동의라도 해야 합니다.
한편, 현실에서는 흔히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 돌봄을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책임감이 강하거나 가족에 대한 애정이 많은 이른바 ‘착한 사람’이 더 큰 희생을 감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이런 희생에 의존하는 돌봄 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개인이 희생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부담과 책임을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돌봄을 사회가 계약으로 제도화해야 합니다. 육아휴직처럼 돌봄휴직을 도입·확대해 남성도 자연스럽게 돌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돌봄에 따른 소득 손실을 충분히 보상하는 체계를 통해 누구나 돌봄의 혜택을 받는 만큼 일정한 책임도 함께 나누는 사회적 합의, 사회적 계약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특정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서로돌봄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여연대에서도 돌봄중심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고, 2024년 말에 ‘새로운 길, 돌봄복지국가’라는 보고서도 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형용 예. 맞습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기존의 복지국가 운동을 현 시점에 맞추어 재구조화하는 방향에서 최우선으로 돌봄을 의제화하였어요. 고령화라는 인구적 환경 변화 뿐 아니라 기후, 노동, 그리고 여성 등 여러 층위의 사회문제들을 관통하는 의제가 돌봄이라는 확신도 있었구요. 이미 돌봄정의, 돌봄민주주의, 돌봄윤리 등 여러 담론들이 변화의 물꼬를 열고 있었고, 기존 보편적 복지국가의 사회권 논의에서도 돌봄이 현재의 복지제도 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었다는 판단이었어요. 그래서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 할 권리, 돌봄경제의 창출과 민주주의, 공공성 확보와 시민사회 중심의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이슈페이퍼를 작성한 바 있어요. 그 연장선에서 돌봄기본법안을 만들어서 국회에서 발의하였고, 아마도 조만간 법제화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민동세 저는 요즘 돌봄을 생각하면 2000년을 경계로 해서 시혜적 사회복지와 권리적 사회보장이라는 흐름의 변화를 자주 떠올립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그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었는데요. 그때도 화두가 사회복지와 자립생활이었어요. 요즘 돌봄을 이야기하면서 사회복지가 자립을 이야기하는 게 맞을까, 자립하지 못하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노인이나 장애인은 자립하지 않아도 된다, 옆에 누군가가가 같이 있어 줄 수 있고, 누군가가 옆에서 같이 살아가면 그 삶이 채워지면서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서로 돌보는 삶이죠. 다시 공동체를 생각하고, 다시 생활에 대한 것을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 돌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제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형용 이번 봄봄클럽의 테마가 ‘모두가 노인이 된다’였어요. 다시 말하면, 모두가 돌봄을 받을 때가 온다는 것인데, 이를 뒤집어보면 사실 지금 모두가 돌봄을 할 때이기도 하다는 것이에요. 당장 내 가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주위에 가까운 지인 중에 돌봄을 받고 계시는 분이 없지는 않지요. 노인이 아니더라도,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외롭거나 고립된 이들도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돌봄은 항상 제 주위에 있어요. 사회보험의 원리가 내가 아니더라도 위험은 누군가 확률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험은 분산하여 미리 나누어진다는 것이잖아요. 돌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는 언젠가의 나이고, 지금 미리 경험하고 있는 것뿐이니 내 관심과 노력 그리고 기여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선량한 누군가의 덤터기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월간<복지동향> 2026년 6월호(제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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