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규ㅣ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장
최근 이재명 정부는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외국인력 통합지원 TF」를 출범시켰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모든 일하는 외국인’을 아우르는 통합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표면적으로는 환영할 만한 조치다. 그러나 정책의 언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전히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과연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부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인력’이라는 자원으로만 계산하고 있는가?”
구조적 불평등: 선택권 없는 삶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에게 주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조건이며, 체류 자격과 직결된 구조적 문제다. 이 제도 아래에서 사업장 변경은 엄격히 제한되고, 실질적으로는 사업주의 동의가 좌우한다. 재고용의 열쇠 역시 사용자에게 쥐어져 있다. 이런 구조에서 숙소 환경이 열악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곧 고용의 단절과 체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 된다. “싫으면 나가라”는 말은 협상의 언어가 아니라 추방의 경고에 가깝다.
이주노동자는 근로계약과 비자(체류자격), 주거가 하나의 고리로 묶여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주거환경을 문제 삼는 순간 계약 연장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계약이 종료되면 합법적 체류 역시 위태로워진다. 이처럼 주거권은 고용구조에 종속되어 있으며,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 자체가 생존을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개인 간 분쟁이 아니라, 제도 설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종속에 가깝다.
그렇다고 스스로 집을 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사회적 연결망이 없으며, 임차보증금과 중개 수수료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농촌이나 외곽 산업단지의 경우 대중교통이 부족해 출퇴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도 많다. 임대인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계약을 꺼리기도 하고, 단기 체류 가능성을 이유로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거절하고 자유롭게 숙소를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업주 제공 숙소는 ‘복지’나 ‘배려’가 아니라, 엄격한 공적 기준과 감독 아래 관리되어야 할 권리의 영역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주거가 고용관계에 종속된 채 방치될 때, 이주노동자는 노동시장 안팎에서 이중의 취약성에 놓인다.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의 계약은 형식적 자유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선택권의 부재다. 선택할 수 없는 자유, 떠날 수 없는 계약,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주거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처럼 강요된다. 이러한 구조를 해소하지 않는 한, 주거권은 문서 위의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국가는 단지 노동력을 수급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그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의 기본권을 보장할 책임을 져야 한다.
고(故) 속헹 씨가 남긴 이정표
2020년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기온은 영하 18~20도에 이르렀고, 숙소의 난방 장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상태였다. 비닐과 얇은 패널로 둘러싸인 가설건축물은 혹한을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취약했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불운이나 돌발적 사고가 아니었다. 열악한 주거를 묵인해 온 제도와 관리의 공백이 빚어낸, 예견된 비극이었다.
속헹 씨는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 입국했고,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일했고, 제공된 숙소에 머물렀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비닐하우스 숙소 역시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주어진 조건이었다. “일할 사람”을 불러들였지만, 그 사람이 머물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조차 지키지 못한 현실이 그의 죽음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의 과정 또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무려 500일이 걸렸다. 유족은 먼 타국에 있었고, 정보는 단절되어 있었으며, 행정은 신속히 움직이지 않았다. 시민사회의 노력과 끈질긴 문제 제기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산재 승인조차 불투명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권리가 ‘투쟁의 결과’로 주어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구조의 문제를 증명한다.
국가의 책임 인정 및 사과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고 후 1,880일이 지나서야 대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속헹 씨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부는 패소 이후에야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했다. 책임 인정과 사과가 자발적 성찰이 아니라 소송의 종착점에서야 이루어졌다는 점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법원은 국가가 적법한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을 점검하고, 위험을 예방하며, 최소한의 안전 기준을 확보해야 했을 관리·감독 책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형식적 제도는 존재했지만, 현장을 바꾸는 행정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 공백이 결국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속헹 씨의 죽음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 이정표여야 했다. 이정표란 방향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그 죽음은 “여기서 멈추라”라고, “이 길은 잘못되었다”라고 경고하는 신호였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 표지판 앞에서 멈추어 섰는가. 가설건축물 숙소는 사라졌는가. 점검과 감독은 상시적 체계로 전환되었는가. 주거권을 고용관계로부터 분리하려는 근본적 논의는 시작되었는가. 비극 이후에도 유사한 환경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속헹 씨의 죽음이 아직 충분히 ‘전환점’이 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권고는 있었으나, 현실은 멈췄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 실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들의 주거권과 건강권이 반복적·구조적으로 침해되고 있다고 명확히 지적했다. 위원회는 단순한 행정지도 수준을 넘어 제도 전반의 개선을 요구하는 권고를 내놓았다. 다수의 농업 이주노동자 숙소가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부 시설 등 비주거용 가설건축물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상당수가 건축법상 주거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또한 일부 숙소는 화장실이나 목욕시설이 내부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 외부 시설을 사용해야 했고, 잠금장치가 없거나 고장 난 사례도 확인되었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 보호와 안전 확보라는 기본권의 문제임을 위원회는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농업 이주노동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1)공공기숙사 설치 등 실질적 지원 대책 마련, 2)열악한 가설건축물 숙소 사용에 대한 근본적 개선, 3) 숙식비 선공제 관행 개선 및 임금 전액 지급 원칙 확립 등을 관계 부처에 권고했다. 이는 이주노동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정책적 전환 요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권고 이후의 현장은 인권위의 문제 제기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속헹 씨 사망 사건 이후 수년이 지났음에도 농업 이주노동자 숙소 상당수가 여전히 가설건축물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일부 농가에서는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 구조를 계속 사용했고, 난방·단열·환기 설비가 미비한 환경도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인권위는 구조적 침해를 공식 확인하고 개선을 권고했지만, 현장의 변화가 제한적이며 반복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권위의 권고는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제도의 변화가 현장의 생활조건 전반을 빠르게 바꾸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인권위 권고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좁혀질 수 있을까?
행정의 ‘땜질’과 책임의 분산
문제의 핵심은 정책의 방향이 아니라 집행의 태도, 곧 고용노동부의 미봉적·단속 위주의 대책에 있다. 속헹 씨 사건 이후 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부’의 가설건축물은 숙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가설건축물 자체를 주거용으로 쓰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차단한 것이 아니라, 위치만을 문제 삼은 절충안에 가까웠다. 비닐하우스 ‘안’은 안 되고, ‘밖’은 허용된다는 식의 구분은 주거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 채 형식적 경계만 그은 셈이었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가설건축물을 주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건축법의 취지에 맞지 않으며, 구조적 안전과 위생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건축법은 주거를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안전·위생·채광·환기 등 최소 기준을 갖춘 생활 환경으로 전제한다. 그럼에도 노동부의 방침은 건축법 체계와의 정합성보다 현장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데 무게를 둔 것으로 보였다. 그 결과, 두 부처의 입장은 사실상 충돌했지만, 현장에서는 느슨한 해석과 관행이 우선했다.
노동부의 대응은 ‘땜질 처방’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서면 확인이나 형식적 점검에 그친 사례가 적지 않았고, 시정명령 이후의 사후관리도 충분치 않았다. 위반이 확인되어도 개선 기한을 반복적으로 연장하거나, 농번기 등을 이유로 사실상 유예하는 경우가 있었다. 단속과 계도, 예외와 유예가 반복되는 동안, 가설건축물 숙소는 ‘임시’라는 이름으로 상시화되었다.
현장에서는 편법이 구조화되어 있다. 농장주가 행정기관에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신고해 인력을 배정받은 뒤, 실제로는 불법 또는 기준 미달 숙소에 거주하게 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서류상으로는 자율적 선택이나 별도 임대처럼 처리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업장 인근의 가설건축물로 안내되는 방식이다. 노동자는 선택권이 없고, 행정은 형식 요건 충족 여부만을 확인한다. 결과적으로 제도는 ‘없다’라고 신고된 기숙사를 사실상 묵인하는 모순적 구조가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 건축법 위반 여부를 단속할 권한은 지자체에 있지만, 지역 농가의 반발과 인력난 우려,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부담이 작지 않다. 강력한 철거 명령이나 사용중지 조치를 내릴 경우 농번기 인력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가 반복된다. 그 사이 책임은 중앙과 지방 사이에서 분산된다. 노동부는 “건축법 소관은 지자체”라고 하고, 지자체는 “고용 구조 개선은 중앙정부 소관”이라고 답한다. 권한은 나뉘고, 책임은 흐려진다.
이 구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용허가제가 본격화된 이후 약 20년 가까이, 농어촌과 산업단지 주변에서는 가설건축물 숙소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계절마다 단속과 보도가 이어졌고, 대책이 발표되었지만, 근본적 전환은 미뤄졌다. 그 사이 이주노동자들은 계속 입국했고, 같은 형태의 숙소에 머물렀다. ‘임시’라는 말은 1년이 되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었다.
결국 문제는 법의 공백이 아니라 집행의 의지에 있다. 가설건축물을 주거로 쓰지 못하도록 명확히 하고, 대체 가능한 공공기숙사 모델을 확대하며, 위반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는 정책적 결단이 없다면, 현장의 편법은 계속될 것이다. 속헹 씨의 죽음 이후에도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비극이 제도의 전환점이 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20년 가까이 반복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고 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사이, ‘임시’로 시작된 공간은 누군가의 일상이 되었고, 권리는 예외가 되었다.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문제를 몰라서 방치해 온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감당하지 않기로 선택해 온 것인가.

사람이 온다, 안전은 기본이다
우리는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온 것은 ‘인력’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들은 세금을 내고, 사회보험료를 내고, 한국 사회의 산업과 농업을 지탱한다. 국익의 계산식에는 그들의 기여가 명확히 반영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과 안전 역시 국익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전한 주거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열악한 가설건축물을 ‘현실적 대안’이라 부르는 순간, 국가는 인권의 최소선을 스스로 낮추게 된다. 이주노동자의 빈곤과 질병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가 만든 결과이며, 따라서 사회보장의 책임 역시 공동의 몫이다.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다.” 이 문장은 수사가 아니다.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할 사실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이 진정으로 ‘통합’을 말하려면, 통합의 대상은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주거권은 그 최소한의 시험대다. 2026년의 우리는 묻고 있다. 우리는 사람을 불러놓고,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가.
월간<복지동향>2026년 3월호(제3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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