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5-10   64013

[편집인의 글] 지역이 운명이 되는 사회: 공간화된 불평등과 사회정책의 과제

김윤민ㅣ국립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은 더 이상 소득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점차 ‘어디에 사는가’라는 질문과 긴밀하게 결합되며, 삶의 기회와 조건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같은 사회 안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주 지역에 따라 교육의 질과 의료 접근성, 일자리 기회, 나아가 삶의 전망까지 달라지는 현실은 ‘지역이 곧 운명’이 되어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실제로 인구 이동, 산업 구조, 재정 여건이 결합되면서 특정 지역에는 기회가 축적되고, 다른 지역은 기회에서 배제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공간적 불평등이 의료, 노동, 교육 등 삶의 핵심 영역에서 상호 결합하며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의료 인프라의 지역 격차는 건강 수준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노동시장 참여와 소득 격차로 연결된다. 교육 기회와 자원의 지역 간 편차 역시 장기적으로 인적 자본 격차를 형성하며, 지역의 발전 역량과 재정 기반 차이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 간 불평등이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축적, 재생산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지역 간 불평등이 사회정책에서 정면으로 다루어야 할 핵심 의제임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격차의 결과를 사후적으로 보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차이를 발생시키는 조건과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지역을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삶의 기회와 조건이 축적되는 ‘맥락’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공간화된 불평등에 대응하는 사회정책의 방향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복지동향』 5월호에서는 지역 불평등의 구조와 쟁점을 조망하고 의료, 노동, 교육, 재정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지역 간 불평등을 입체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개별 영역의 현황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평등이 어떻게 축적되고 상호 연결되는지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먼저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지역 격차를 단일 지표로 환원할 수 없는 다차원적 문제로 규정하며, 소득·자산뿐 아니라 교육, 건강, 환경, 공동체 등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이러한 격차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형성된 구조적 산물이며, 수도권 중심의 자원 집중이 장기적으로 고착화된 결과임을 지적한다. 나아가 부동산 중심의 자산 격차와 인구 감소가 결합된 ‘지방소멸’ 문제를 핵심 위기로 제시하며, 개별 지역 지원을 넘어 수도권 일극 집중 구조를 재검토하고 모든 지역 주민의 기본적 삶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 차원의 공간 전략 전환 필요성을 제기한다.

박건희 평창군 보건의료원장은 지역 의료격차를 ‘거주 지역이 기대수명을 좌우하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진단한다. 기대수명과 치료가능사망률, 응급의료 접근성 등에서 나타나는 격차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제도와 구조의 결과이며, 특히 행위별 수가제,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악순환, 수도권 원정 진료로 인한 지역의료 붕괴, 지자체의 낮은 재정·정책 권한 등이 이러한 격차를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임을 지적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 중심의 일차의료 강화와 지역 기반 통합적 건강관리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건강권이 지역에 따라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는 의료체계 개편을 넘어 지역사회 전반의 삶의 조건을 함께 개선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방소멸 문제를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라 비수도권 청년, 특히 청년 여성의 유출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양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대기업 본사와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된 ‘공간분업 구조’ 속에서 비수도권이 주변화된 결과로 설명한다. 이로 인해 비수도권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도 소득과 기회가 외부로 유출되는 구조에 놓이게 되고, 청년층의 이탈은 가속화된다. 특히 청년 여성은 비수도권 노동시장의 제조업 중심 남성 편중 구조와 사무·전문직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진입 가능한 일자리가 제한되며, 저임금의 돌봄·서비스 직종에 집중되는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양 교수는 문화·관광 개발이나 기업 유치, 메가시티 전략과 같은 기존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며, 비수도권 청년 문제를 “남아도, 올라가도 괴로운” 이중 구조로 진단한다. 결국 지역 재생산의 핵심은 청년이 체감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 창출과 노동조건의 실질적 개선에 있음을 강조한다.

김범주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교육격차를 대학 진학 결과로 환원하는 시각을 비판하며, ‘지역’을 격차의 결과가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중학교 단계에서 지역 간 학업성취 격차가 확대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입시 단계가 아닌 초기 학습 단계에서의 성취 보장과 교육 조건 개선이 중요함을 제시한다. 동시에 교육 내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지역 간 기회 구조의 격차가 고착되는 ‘지역 식민화’ 문제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홍근석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 간 재정격차를 인구·산업 집중과 지방재정 구조가 결합된 결과로 분석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세입 기반 격차가 공공서비스 수준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인구 유출을 심화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재정격차를 수직적·수평적 차원에서 구분해 접근할 필요성을 제시하며, 지방재정조정제도의 정교한 개편을 주요 과제로 제안한다.

이번 기획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역 간 불평등은 개별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구조 속에서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복합적 문제라는 점이다. 따라서 대응 역시 단편적인 정책 보완을 넘어, 지역을 ‘정책 단위이자 생활 조건의 총체적 맥락’으로 인식하는 통합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공약 역시 단순한 개발 중심 논리를 넘어, 의료·노동·교육·재정 등 삶의 핵심 영역에서의 지역 격차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담아야 할 것이다. 지역 간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은 특정 지역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에서 제시한 분석과 제언이 지방선거를 계기로 보다 책임 있는 정책 논의로 이어지고, 지역 균형발전과 사회적 형평성 제고를 위한 실질적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월간<복지동향>2026년 5월호(제3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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