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6-10   92818

[편집인의 글] 불편해도 탈시설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남기철 ㅣ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탈시설은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일반화된 규범이다. 사회복지실천의 일반적 원리로 정상화(normalization)와 통합(integration)이 강조된다. 거주시설에 복지대상자를 수용하는 것은 사회복지실천의 일반적 규범에 역행하는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전의 정부들도 탈시설은 국가적인 정책과제로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 영역에서 탈시설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불편한 ‘정서’가 나타나곤 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역사적으로 생활(거주)시설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일제 강점기 이후 곧장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국가의 현대적인 공공복지 능력은 사실상 전무하였고, 최소한의 보호가 필요한 대상에 대해서만 집단수용보호라는 ‘효율적’ 방법을 사용해 왔다. 사회복지생활시설은 우리나라 복지의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거주시설의 종사자 수는 전국적으로 20만 명이 넘는다. 사회복지생활시설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생각해 본다면, 그간 좋지 않은 처우를 감내하며 소외계층의 생존과 보호를 위해 헌신해 온 노력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기는커녕 이제 와서 그나마 복지 여건이 조금 나아지니까 시설을 매도한다는 섭섭함이 나타난다. 처음에 거주시설과 종사자의 노력도 없었다면 그야말로 생존할 수도 없었던 복지대상자들에게 국가도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또 일반 국민들이 모두 제 살기 바쁘고 아동,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퍼부으며 배제하고 착취할 때, 그나마 거주시설이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탈시설에 대해서(관념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옳은 것이라고 해도) 실제 현장의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을 잘 모르는 주장, 혹은 소수 과격한 사람들이 전개하는 탁상머리에서의 주장이라는 식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성은 거주시설(특히 그 소유자나 운영자)의 이해관계에 이바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거주시설은 자원이 부족할 때 효율적으로 보호하고자 불가피하고 헌신적인 선택으로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국가의 전근대적인 사회통제와 인권침해의 맥락 속에 존재한 어두운 역사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실무 종사자에게 소명의식에 따른 헌신이나 낮은 처우의 감내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상적인 근무여건을 보장한다면, 더 이상 시설에 수용해 보호하는 방식은 비용효율적이지도 않다.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복지생활(거주)시설에서 살고 있는 국민은 보건복지부의 시설통계에서 확인되는 경우에만 국한해도 노인복지시설에 약 26만 명, 아동복지시설에 1만 3천 명, 장애인복지시설 2만 5천 명에서 3만 명 사이, 정신요양시설 1만 명, 노숙인복지시설 7천 명, 한부모복지시설 2천 명 등 3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사실상 복지시설 거주의 성격과 유사한 상황의 요양병원이나 정신병원 사회적 입원자 수를 포함하면 그 수는 전통적 사회복지시설 입소거주자 수의 두 배 이상으로 커진다. 우리나라가 사회복지생활시설 입소자 수가 많고, 입소기간도 길고, 사회적 입소가 크게 문제가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사회복지생활시설 입소거주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동, 장애인, 노숙인, 한부모(모부자)복지시설, 정신요양시설 등의 입소거주자 수는 완만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노인복지시설보다 정확히는 요양원이라고 흔히 부르는 노인의료복지시설의 거주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 중 사회적 입원에 해당하는 노인의 수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최근 지역사회통합돌봄 정책을, 노인을 우선으로 해서 추진하는 맥락도 특히 노인에 대한 입원과 입소를 줄여 재정적 부담을 완화하려는 정부의 의도이기도 하다.

탈시설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그간의 노력과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회복지거주시설의 일부는 명백히 지탄받아야 할 일들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탈시설은 악행이나 사회악에 대한 단죄나 복수, 혹은 정의 구현과 같은 의미에서 논의되는 것만도 아니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거주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복지를 구현해야 할 때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국제규범에 반하는 궤변을 늘어놓는 일도 있었지만, 명백히 거주시설은 지역사회 주거가 아니다. 탈시설은 특정 직능이나 집단에 호의적이거나 적대적인 이유로 논의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사회복지를 위해서 또 전체 국민을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거주시설을 복지서비스의 기본 축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이다.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 경로의존성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다. 게다가 복지부를 비롯한 공공의 사회복지서비스 정책 관행, 그리고 사회복지생활시설의 큰 규모는 경로를 유지하려는 이해관계를 관성력으로 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탈시설 논의는 불편하기도 하고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편해도 계속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해관계에 기반한 관성을 돌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탈시설은 주장과 선언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과감하고도 세심한 정책과 현장의 노력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

이번 복지동향의 기획에서는 탈시설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김재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거주시설이 사회통제적인 집단수용의 역사적 문제를 노정해 온 측면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우리나라 집단수용과 심지어 국가폭력의 인권적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탈시설이 민주화의 완결적 과제라는 점을 제기하고 있다. 정선욱 교수는 과거 고아원에서 비롯된 아동양육시설에서 현재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들을 짚어보며, 시설에서 구조적 방임이 발생하기 쉬운 이유를 지적하고 있다. 이정하 활동가는 장애인 시설에서의 집단수용이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구조적 상황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였다. 특히 피해생존인에 대해 시설 간 전원과 같은 회전문이 아니라 탈시설 그리고 지역사회의 삶이 지원 조치로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용표 교수는 기득권의 재정적 이해관계가 정신장애인의 탈시설을 막고 있는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 재정구조 개혁이 탈시설의 기본전제라는 것이다. 송아영 교수는 최근 정부의 주요한 정책 기조로 이야기되는 지역사회통합돌봄이 탈시설과 궤를 같이하며 지역사회에서의 주거권 보장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다섯 개 원고는 서로 다른 영역과 주제에서 탈시설의 측면을 조망하고 있다. 또다시 반복되는 진부한 소재 혹은 이해관계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넘어 우리 모두가 탈시설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월간<복지동향>2026년 6월호(제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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