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공익활동가학교 30기] 멈춘 시간은 다시 흘러야만 하니까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강의와 토론, 직접행동 기획에 그치지 않고 사회운동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의제를 더 깊이 이해하는 탐방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과 강의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듣고 질문을 이어가기 위함입니다.

이번 탐방은 사회적 참사를 주제로, 기억과 책임,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장을 마주하며 느낀 고민과 다짐을 담은 참가자의 후기를 전합니다.


멈춘 시간은 다시 흘러야만 하니까

청년공익활동가학교 30기 참가자 정하루(라스)

10년도 더 전에 산 책을 아직도 전부 읽지 못했다. 그 책 이름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 13명의 이야기를 기록한 『금요일에는 돌아오렴』이다. 계속 울고 울다가 지쳐서 40페이지를 끝으로 책을 덮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너무나 무거워서 더 이상 책을 펴지 못했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희생자 상당수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이었다.

나는 그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재난, 참사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요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제 나는 20대 청년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그 아이들도 지금의 나처럼 20대 청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역시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할로윈을 맞아 놀러 나왔던 청년들이었다.

나는 그날 이태원에 놀러 가지 않았다.

누구나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손에 마이크를 든 사람이 왼손을 들어 질문을 하고 있다.
사람의 뒤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라고 적힌 화면이 켜져있다.
2026.01.27._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현황과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이미현 공동상황실장 ©청년참여연대

우리는 10.29 이태원 참사와 유가족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별은 알고 있다〉를 시청했다.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에서 이태원 참사 1주기를 기점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이태원 참사는 예견된 재난이었다. 참사 당일 오후 6시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수많은 112 신고가 있었음에도 경찰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매년 할로윈마다 이태원에 대규모 인파가 몰린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날 역시 위험이 예상되었지만 충분한 인력은 배치되지 않았다.

결국 오후 10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었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SNS를 통해 참사 당시 상황을 공유하는 게시글과 사진,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SNS상에서는 참사 현장과 희생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불확실한 정보와 헛소문도 빠르게 퍼졌다. 마약이 유통되었느니 맨 뒤에서 누군가 밀었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루머 게시글, 참사 현장 사진과 영상들은 삭제되었지만, 참사 현장이 가십거리처럼 소비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느낀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가『금요일에는 돌아오렴』을 끝까지 읽지 못했던 것처럼 〈별은 알고 있다〉를 시청하면서도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마주하기 무서웠던 것 같다. 하지만 무섭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난을 마주하지 않을 수는 없다. 몰랐던 이야기가 많았다. 마주하기 무섭다는 이유로 모르고 있었다. 159번째 희생자는 10.29 참사에서 살아서 나왔으나 지속적인 2차 가해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서울시청 앞 유가족들도 알지 못한 채 처음으로 만들어진 분향소는 희생자들의 사진 한 장 없는 허울뿐인 추모 공간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너무 슬프고 마음이 무거워서 엉엉 울게 될 줄 알았다. 많이 울었다. 하지만 마냥 슬픈 감정만 든 것이 아니었다. 10월 29일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타임라인을 지켜보며 슬픔과 동시에 화가 났다.
왜 아직도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는지, 왜 이렇게 쉽게 잊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독립적인 재난조사기구 설치, 피해자의 권리 보장, 기억과 추모 공간 조성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진상규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영화를 시작하는 말은 “잘 다녀와”라는 인사였다. 그만큼 우리는 집을 떠났다가,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인사를 일상적으로 주고 받는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 참사로 159명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 즐거운 기억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놀러 갔다가 죽어서는 안 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말을 기억한다. 그러게,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는 운이 좋게 그 날 그 자리에 없었을 뿐이다. 참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결코 ‘남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제서야 와닿았다.

참가자가 직접 찍은 이태원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집' 간판
2026.01.27._참가자가 직접 찍은 이태원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집’ 간판 ©정하루(라스)

참여연대가 있는 곳에서 겨우 7분 남짓 떨어진 거리에 별들의 집이 있다. 경복궁역 6번출구 바로 앞이다. 경복궁역은 내가 공익활동가학교를 다니면서 매일 지나다니던 곳이다. 그런데도 그 날 별들의 집에 가기 전까지 이태원 참사 추모 기억공간이 그 곳에 늘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나 가까이 있었는데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나 외에도 대부분의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참여자들이 ‘별들의집’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주변 지인과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경복궁역에 별들의 집이라는 이태원 참사 추모 기억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분노는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왜 사람들이 모르게 되었는지에 화가 났다. 왜 이렇게나 이태원 참사가 빠르게 잊혀져가고 있는지, 왜 여전히 진상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왜 책임자들은 제대로 처벌 받지 않았는지, 이태원 참사 추모 기억공간이 왜 더 널리 알려지지 못했는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나고 답답했다.

우리는 별들의 집에 방문해서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유가족 분들을 만나뵈어 직접 목소리를 전해 들었다.
청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모습이 자식들이 떠올라 반갑다고, 보라색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뭉클하다고 하신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작은 리본 하나가 실제로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전달해주셔서. 작은 실천으로도 지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연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원 참사 상징 색깔인 보라색 천이 깔린 책상에 모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가 중앙에 앉아있고 참가자들이 발언 중인 사람을 함께 쳐다보고 있다.
2026.1.27._10.29 이태원참사 임시 기억·소통공간 ‘별들의집’에서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청년참여연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단은 내가 조금 더 앞장서서 알리면 어떨까. 주변에 목소리를 내고,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기억하고 함께할 것이다. 별들의 집은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니 또다시 방문하고자 한다. 여러 번. 그때는 조금 더 천천히,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메시지를 남기고, 자료도 읽고, 쉬기도 하고, 그저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10년째 40페이지에 멈춰있는 내 책처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시간도 멈춰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멈춘 시간은 다시 흘러야만 한다. 그 멈춘 시간이 최대한 짧게 이어지고, 곧 다시 시간이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다시 시간이 흐를 것이라고, 알아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 기억과 추모, 애도 그 이상으로 참사에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놀러 갔다가 죽을 수도 있는, 운이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생명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서서 연대할 것이다.

그렇게, 10년 만에 책을 다시 펼 용기를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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