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5-06월 2026-05-06   54453

[이슈] 보편적 시청권의 재정립을 요구한다

중계 카메라와 촬영자가 찍힌 흑백사진
ⓒSean Benesh, Unsplash

사라진 올림픽의 열기, 지상파가 외면한 월드컵 중계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지나갔다. 주요 경기 소식은 포털 사이트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고, 대중들 사이에서 공동의 화제로 떠오르는 일도 드물었다. 이 식어버린 열기는 단순히 국민의 관심사가 다양해진 탓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JTBC가 단독 중계권을 확보하면서 더 이상 지상파에서 올림픽을 볼 수가 없었다. 이를 두고 언론과 여론은 곧바로 ‘JTBC의 독점’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상파가 마치 대안처럼 등장했다. 몇몇 의원실에서 급하게 만든 법안도 지상파가 보편적 시청권 대상 스포츠를 중계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올림픽 중계 실패가 월드컵에서 되풀이 되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통령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게 ‘보편적 시청권’이 갑자기 모든 이의 관심사항이 되었다.

그런데 월드컵 중계권 협상 결과는 그동안 진행되었던 보편적 시청권 논쟁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최종적으로 JTBC와 KBS로 결정이 났고 MBC와 SBS는 재무적 손실을 이유로 월드컵 중계전선에서 이탈했다. 최근 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력을 감안하면 시청률도 높지 않을 것이고, 광고 판매도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론 앞에서 보편적 시청권이란 명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상상력을 차단하는 프레임들

보편적 시청권과 관련해서 묘한 당위가 있었다. 첫번째가 지상파 우선주의다. 지상파만이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케이블이나 OTT는 자본의 논리에 복무한다는 이분법이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사실 관계를 외면한다. 대한민국의 유료방송 가입률은 이미 97%를 넘어섰다. 지상파의 직접 수신 가구 비중은 3% 미만이다. ‘지상파에 중계권을 넘기면 모두가 볼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더구나 지상파가 중계권을 보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양질의 시청 경험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지상파 중계시 중복 중계로 인한 선택권 감소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지상파란 단어가 가지는 무게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경기 중계에서 MBC와 SBS가 스스로 이탈함으로써 더 이상 이런 주장이 힘을 가지긴 힘들어 보인다.

또 다른 프레임은 ‘중계권 독점 자체가 악’이라는 단순 논리다. 독점을 막으면 보편적 시청권이 저절로 보장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공동 중계 체제였던 이전 올림픽에서도 시청률이 크게 높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중계권 분산이 오히려 중복 중계로 인한 시청자의 선택권 축소 등의 문제를 낳았다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중계권을 둘러싼 경쟁이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무기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전체 시장을 키우고 역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애써 외면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지상파냐 아니냐, 독점이냐 공동이냐의 형식 논쟁이 아니라 어떤 조건 아래서도 보편적 시청권이 확보될 수 있는 구조와 운용에 관한 문제다. JTBC의 단독 중계는 현행 방송법이 정한 보편적 시청권 규정을 법적으로 위반하지 않았다. Korea Pool 방식의 공동 중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공동체 공유 경험의 상실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면, 이는 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법 자체의 구조적 한계를 가리키는 신호다.

보편적 시청권이란 무엇인가

개념과 법적 토대

보편적 시청권Universal Viewing Rights이란 국민적 관심이 큰 체육 경기나 국가 주요 행사를 일반 국민이 과도한 경제적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적 권리다. 방송의 공적 책임과 국민의 알 권리를 결합한 이 개념은 2007년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식 도입되었다. 현행 방송법 제76조는 중계방송권 확보 시 국민의 시청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다른 방송사에게도 공정하고 동등한 조건으로 중계권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제도를 운영하는 핵심 기구는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ʻ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보장 대상 행사 지정, 중계방송권의 공동계약 권고, 분쟁 조정 등을 심의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방통위가 고시를 제정한다. 현재 고시에는 하·동계 올림픽, FIFA 월드컵, 아시안게임, WBC, FIFA 여자 월드컵 등이 포함되어 있다.

왜 보장해야 하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파편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세대, 젠더, 지역, 정치적 성향에 따라 나뉜 사람들은 각자의 필터 버블 속에서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잃어간다. 이 속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개별적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대한민국 공동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다.

스포츠는 승패를 초월해 공동의 기억을 생성하고 집단적 동질감을 확인시켜주는 사회적 접착제다. 이를 상업적 플랫폼의 유료 장벽 뒤에 가두는 것은 단순한 소비자 불편이 아니라, 공동체의 연대 자산을 잠식하는 일이다. 보편적 시청권이 ʻ채널 선택권’의 문제를 넘어 사회 통합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

핵심은 ʻ모두가 어디서나 무료로 모든 경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상론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중계권 시장이 존재하고 사업자의 투자 이익이 보호되어야 하는 한 시장을 완전히 배제하는 규제는 지속 불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최저선Bottom Line, 즉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유럽 주요국들은 이 방식을 오랫동안 실천해왔다. 영국은 이를 ʻ왕실의 보석Crown Jewels’이라 부르며 올림픽, 월드컵 전 경기, FA컵 결승, 윔블던 결승 등을 Group A로 지정해 무료 지상파 생중계를 의무화한다. 프랑스는 패럴림픽과 여자 월드컵을 포함해 포용성의 가치를 정책으로 구현하며, 이탈리아는 산레모 가요제까지 리스트에 넣어 문화적 자산을 보호한다.

이들의 공통 원칙은 명확하다. 시장의 진입과 투자는 허용하되, 리스트된 행사에 한해서는 무료 공영방송에 대한 서브 라이선스 제공을 의무화한다. 독점 사업자는 핵심 경기를 무료 채널에 양보하는 대신, 나머지 경기와 4K·멀티앵글 같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통해 유료 가입자를 확보한다. 이른바 ʻ상생형 부분 독점’ 구조다. 공공성과 상업성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설계다.

한국에서도 이 Bottom Line을 설정해야 한다. 단순히 어느 채널이 중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경기 범위), 어떻게(실시간·녹화·하이라이트), 어느 수준까지(가구 도달률)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법은 존재하되 보호는 없는 상태가 된다. 이번 밀라노 올림픽이 바로 그 상태였다.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Fauzan Saari, Unsplash

올림픽 vs. 월드컵

올림픽과 월드컵, 같지 않다.

2026 FIFA 월드컵미국·캐나다·멕시코 공동 개최의 중계권은 JTBC가 보유하고 있다. JTBC는 2019년 한국 내 중계권을 확보했고, 최근 KBS와 재판매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이로서 월드컵 중계는 JTBC와 KBS가 중계를 하게 되었고, MBC와 SBS는 이탈했다.

먼저 올림픽과 월드컵은 본질적으로 다른 시청행위를 보인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은 ʻ발견하는’ 스포츠다. 시청자들은 채널을 켜다가 낯선 종목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따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감동받는다. 그래서 접근성이 떨어지면 이 우연적 만남 자체가 사라진다. 무슨 목적 의식을 가지고 올림픽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 월드컵 축구는 ʻ찾아서 보는’ 스포츠다. 축구 팬들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시청 방법을 찾는다. 국가대표 친선 경기를 종편 채널이나 OTT 등에서 중계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JTBC 단독 중계로 인한 무관심의 문제는 적어도 올림픽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월드컵 중계권은 단독 중계냐 공동 중계냐보다는 중계권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에서 보편적 시청권이 어떻게 규정되고 중재될 것인지를 살펴보는 시금석이었다. 그러나 규제당국의 중재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수익성 앞에서 MBC와 SBS는 GGGood Game의 약자. 게임 포기 내지 패배 선언을 의미를 쳤다. 결과적으로 1,800여억원에 중계권을 사온 JTBC는 1,000억원 내외의 손실을 기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보편적 시청권을 주장해 온 지상파들은 스스로 발언을 뒤집었다. 유일하게 KBS만 손실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닌 방송사업자로 남았다.

과거 영국에서 WBDWarner Bros. Discovery가 중계권을 독점했던 사례가 있었다. 그 때 규제당국은 지독할 정도로 중재를 했고, 그 결과 제한적이지만 BBC는 중계권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중재의 기록들은 미디어법을 제정할 때 조항으로 들어가 오늘날 영국의 보편적 시청권 제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번 우리 규제당국의 중재는 힘이 없었다. 입으로만 한 중재였고, 제도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올림픽 중계로 인해서 발생한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시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보편적 시청권 제도에 대한 해법은 더 힘들어졌다.

진짜 문제: 개별 사업자가 아닌 구조.

현재 JTBC와 방송 3사 간의 갈등에서 각 사업자를 탓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갈등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구조적 문제가 보인다. JTBC가 2019년 중계권을 구매할 당시의 시장 조건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 방송 광고 시장은 반토막 났고, OTT로의 시청자 이동은 가속화됐다. JTBC가 당시 지불한 중계권료를 현재 시장 환경에서 회수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

방송 3사 역시 마찬가지다. ʻ보편적 시청권’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당사자로서, JTBC의 재판매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사의 광고 수익 감소를 감안할 때 높은 재판매 가격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결과가 도출되는 이 상황은,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일본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2026 WBC의 경우 넷플릭스가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을 때, 일본은 이를 제지할 법률적 근거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규제 공백이 만들어낸 결과다. 대한민국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규제 당국의 실질적 개입 권한을 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아무것도 못하고 보내버린 올림픽 중계나, 제법 노력을 했으나 실무적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사업자간 갈등 구조를 방치한 월드컵 중계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2년째 공석인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의 재구성이다. 위원회 없이는 어떤 제도 개선도 실행될 수 없다. 위원회가 구성되면 다음 과제들을 순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벤트 리스트의 유연화가 필요하다. 4년 주기로 리스트를 전면 재검토하되, E-스포츠, 패럴림픽, 여자 스포츠 종목 등 새롭게 형성되는 시민들의 관심을 반영해야 한다. 프랑스가 젠더 평등의 가치를 정책으로 구현했듯, 리스트는 시청률 수치가 아니라 사회가 지켜야 할 공동체적 가치를 기준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중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 고시는 대회 명칭만 규정할 뿐, 어느 경기까지를 실시간으로 중계해야 하는지, 녹화·하이라이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규정하지 않는다. 이 공백이 사업자 간 갈등의 온상이다. 독일처럼 ʻ자국 선수 출전 경기와 메달 결정전은 공영방송 우선 편성’과 같은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

디지털 환경으로의 확장도 불가피하다. 영국의 미디어법 2024가 BBC iPlayer의 실시간 재전송과 스마트 TV 첫 화면 내 공영방송 앱 우선 배치를 승인 조건에 추가한 것처럼, 한국도 OTT·스마트 TV 환경에서의 접근성 보장을 제도화해야 한다. 유료방송 가입률 97%의 현실에서 ʻ무료 지상파’만을 보편적 접근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미 낡은 프레임이다. 보편적 시청권의 보장 주체를 ʻ무료 공영방송’으로 재정의하고, 그 전달 방식을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방송법 개정의 방향.

현행 방송법은 사후 분쟁 조정에 치중되어 있고, 규제 당국의 사전 개입 수단이 미비하다. 법 개정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리스트 대상 행사에 대한 서브 라이선스 제공 의무를 법률 수준으로 격상시켜 집행력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고시 수준으로는 강제력이 약하다. 둘째, 규제 기관에 사전 승인권을 부여해야 한다. 중계권 보유자가 서브 라이선스 협상을 완료하지 않으면 중계 자체를 승인하지 않는 이탈리아·영국식 모델이 참고가 된다. 셋째, 과징금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중계권 계약 금액이 아니라 해당 사업자의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실질적 제재가 필요하다.

더 나은 질문이 더 나은 제도를 만든다

JTBC가 문제인가, 아니면 Korea Pool이 답인가. 이 질문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파편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조건 아래서, 어느 수준까지, 공동체의 공유 경험을 보장할 것인가.

보편적 시청권은 자본의 논리와 공공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최저선을 국가가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다. 그 선언이 법률에 명시되고, 규제 기관이 실질적 권한을 갖고, 사업자들이 그 틀 안에서 경쟁할 때, 비로소 스포츠가 사회적 접착제로 기능할 수 있다. 제도의 실패를 반복하거나, 아니면 더 나은 질문을 통해 더 나은 설계를 시작하거나. 그 선택의 시간이 가까이 와 있다.


필자 윤현식의 프로필 사진. '개헌'이 적힌 피켓 사진이다.

조영신 동국대학교 대우교수・미디어엔터연구소 C&X 대표

조영신 미디어산업평론가. SK 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을 역임하고 최근에는 《애프터 넷플릭스》(2025)를 출간했다. 동국대학교 대우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미디어 시장의 변화와 대응 전략을 시장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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