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25-06-26   15893

[연속칼럼②] 법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학살 사건 ‘들’

올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50주년이자 한국군 전투병 파병 6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에 베트남전쟁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는 새정부가 진실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베트남 피해생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응답하여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하며 7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싣는다.

[연속칼럼①] “내가 가진 건 기억과 진실 뿐” 두 베트남 학살 피해자 한국 찾는다
[연속칼럼②] 법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학살 사건 ‘들’
[연속칼럼③] 전쟁기념관 둘러본 베트남 학살 생존자 “내 기억과 왜 다른가”


처음 한국 법정에 선 하미마을 학살생존자 응우옌티탄

김남주 변호사, 민변 베트남전 진상규명 TF팀장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법정으로 향하는 하미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가운데)과 친구들 2025년 6월 18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법정으로 향하는 하미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가운데)과 친구들2025년 6월 18일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다낭시 하미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아래 탄)은 서울고등법원 법정에 섰다. 탄은 지난 6월 18일 처음으로 한국 법원에서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으로부터 입은 피해를 학살생존자로서 이야기했다. 자신의 대리인단과 자신을 응원해 온 시민들과 함께 법정에 들어 선 탄은 서울고등법원 제11-1행정부 판사들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말은 변호사들과 미리 상의해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 탄이 평소 생각해 왔던 내용들이다. 변호사들은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탄에게 요청했다.

탄은 자신의 변호사들의 요청이 무색해질 정도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겪은 끔찍한 비극과 고통을 60년 가까이 삭이는 동안 고민은 우물처럼 깊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탄이 자신의 고민 속에서 길어 올린 말들은 우물물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전쟁은 끝난 지 오래지만, 제 아픔은 아물지 않았습니다”

탄은 하미마을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하미마을 학살은 1968년 2월 24일 아침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군인들이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을 몇 군데로 모아 놓고 151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살해된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여성들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새겨진 그날. 탄의 집으로 들이닥친 한국군에 의해 마당 방공호에 숨어 있던 어머니와 남동생, 숙모와 두 명의 사촌동생이 살해되었다. 탄 자신은 귀,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전쟁고아가 된 탄은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식모살이를 하며 살았다. 탄은 재판부를 바라보며 힘겹게 살아야만 했던 ‘학살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통역으로 탄의 말을 전하던 응우엔 응옥투엔(한국 이름 시내)은 이 대목에서 울음을 삼키고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탄과 통역자가 어느 순간 함께 울먹이기도 했고, 숙연해진 법정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석에 앉아있던 필자는 탄의 심정을 온전히 전달받기 위해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열 번 이상 들은 내용이지만, 법정에서 다시 들으니 감개무량했고 변호사들의 마음 역시 함께 떨렸다. 재판부에도 탄의 마음과 함께 하는 자들의 떨림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탄은 한국 정부에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입은 고통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안타깝게도 매번 실패를 마주해야 했다. 탄은 2019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102명과 함께 문재인 정부에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 국방부는 탄의 청원에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확인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학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도가 담긴 거절이었다.

다시 문을 두드린 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미마을 응우옌티탄(왼쪽)과 퐁니마을 응우엔티탄(오른쪽) 두 탄은 베트남전쟁 피해자 103명의 일원으로 2019년 4월 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
▲하미마을 응우옌티탄(왼쪽)과 퐁니마을 응우엔티탄(오른쪽)두 탄은 베트남전쟁 피해자 103명의 일원으로 2019년 4월 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 ⓒ 한베평화재단

탄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가동된 뒤인 2022년 4월 25일 탄은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및 유족 네 명과 함께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듬해 5월 25일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의 신청을 각하했다.

대통령이 윤석열로 바뀌고 진실화해위원회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 김광동이 위원장으로 선임된 탓이 큰 듯했다. 탄은 크게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한국 법원에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린 각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탄은 또 한 번의 거절을 마주해야 했다. 1심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은 과거사정리법에서 정한 조사 대상에 하미마을 사건이 포함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탄은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에 1심 판결을 취소해 달라고 항소했다. 탄이 출석한 날 진행된 지난 18일 세 번째 변론기일을 끝으로, 항소심 재판이 종결되었다. 돌아오는 8월 13일에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다. 다양한 쟁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외국에서 외국인에게 가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 조사범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조사범위를 정한 법 규정에는 외국에서 진행된 사건 또는 외국인에게 가해진 사건을 제외한다는 내용이 없다. 과거사정리법에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을 진실규명 대상으로 한다’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해외입양사건과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에서 외국인 피해자의 신청을 받아들었던 적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현지에서 포로로 잡힌 국군을 두고 ‘자진 월북했다’며 낙인찍은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을 결정한 바 있다. 앞의 사건들은 모두 외국인에 대한 사건이고, 뒤의 사건은 외국에서 벌어진 사건임에도 진실규명을 했던 명백한 사실이 있다. 하지만 1심 판결은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과거사정리법 제1조에서 정한 목적에 “민족의 정통성 확립”과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문구를 끌어와 외국 사건은 제외된다고 해석했다.

새 대통령에 바란다, 1만 명 이상이 동참한 진실 규명 청원

만약 기대와 달리 2심에서도 거절당한다면 탄은 네 번째 좌절을 마주해야 한다. 탄은 더 이상 거절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판사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탄의 발언에 법정엔 숙연한 침묵이 흘렀고, 변호사들이 몇 마디 말을 보탠 뒤 재판이 끝났다. 피고 대한민국의 소송 수행자는 발언 기회가 주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심 재판에선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다양한 쟁점에 관해 심리를 진행했고, 피해생존자의 육성 발언도 들었기에 1심과는 다른 결론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두탄과 연대자들 2025년 6월18일 서울고등법원 앞 ⓒ 한베평화재단

이번 방한 일정에서 탄이 두드린 다섯 번째 문은 대통령실이었다.

탄은 지난 6월 23일 퐁니마을에서 온 같은 이름의 응우옌티탄과 함께 한국 시민들 1만 명 이상이 동참한 청원서를 새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서실 담당자와 면담 후, 베트남전쟁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 등 인권침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은 2015년이지만, 대통령실과의 면담이 성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한 상태에서도 대통령실이 면담에 응해주었고, 참여한 관계자들이 탄에게 공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관심과 공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탄은 두드린 문 안에서 들려올 목소리를 고대하고 있다.

탄은 아직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2025년 6월23일 용산 대통령실 방문 새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등 인권침해 진실규면 촉구 1만 명 청원을 전달하는 두 탄
2025년 6월23일 용산 대통령실 방문새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등 인권침해 진실규면 촉구 1만 명 청원을 전달하는 두 탄 ⓒ 더불어민주당 민형배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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