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급조된 메가 전력수요, 핵발전 확대의 명분이 될 수 없다. 12차 전기본 전력수요 다시 검증하라

오늘 정부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재전망 토론회에서 발표한 2040년 수요전망에 따르면,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 24.3~24.6GW, 데이터센터 11.9GW의 추가수요가 최대전력에 반영됐다. 전력소비량으로는 첨단산업 168.5~170.5TWh, 데이터센터 84.9TWh가 추가수요로 반영됐다. 최근 4월 정부가 내놓은 수요전망과는 규모 자체가 다른 수치다. 최대 전력수요의 경우, 지난 6월 말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이후 그 규모는 첨단산업과 데이터센터의 경우 36GW를 넘어섰고, 불과 몇 달 만에 지난 4월 전망 대비 약 28GW나 급증했다.

정부는 수요산정의 취지를 설명하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우 메가프로젝트를 반영해 기업 투자계획을 재조사하고, 투자 권역과 규모, 정책의지의 구체성을 근거로 그 수요를 “전량 반영”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지난 6월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의 막대한 전력수요가 국가 전력수요 전망에 본격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이날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해졌다”고 강조하며,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을 위한 전력을 국가의 전략과제이자 안보자산으로 준비해야 하고, 나아가 재생에너지와 ‘일부 원전’을 섞어 에너지믹스를 구성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아울러 구체적으로 12차 전기본에 신규 대형 핵발전소와 SMR 추가 건설을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2035년 이후 활용을 목표로 한 비경수형 SMR·MMR 등 이른바 ‘4세대 원자로’의 조기 도입까지 추진하겠다는 방향까지 제시했다. 아직 상용화와 경제성, 안전성, 핵폐기물 문제 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차세대 원자로 기술까지 급증한 전력수요를 뒷받침할 공급수단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과 함께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여기서 제시된 막대한 전력수요를 국가 수요전망에 반영한 뒤, 이를 충당하기 위해 핵발전을 포함한 공급 확대에 나서겠다는 것이 이번 12차 전기본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전력수요를 어떻게 검증하고 줄이고 관리할 것인지보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수요폭증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부터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신규핵발전소저지와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은 이러한 그릇된 수요전망 접근, 그리고 이것이 신규 핵발전소 확대 및 노후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미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고, 이를 공급하기 위해 핵발전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산업계가 요구하는 전력수요를 먼저 확정해 놓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핵발전소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계산하는 것이 국가전력정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의 계획은 시장 상황과 기술 변화, 기업의 투자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이 확정된 수요이고 무엇이 잠재수요인지, 중복되거나 과도하게 산정된 수요는 없는지부터 검증해야 한다. 아직 건설되지 않은 시설의 전력사용량을 확정수요처럼 반영한다면 수요는 부풀려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력 부족’은 다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명분이 될 수밖에 없다. 수요를 부풀리고, 부족을 만들고, 그 부족을 핵발전으로 채우겠다는 방식은 오히려 핵산업계의 이익만 반영할 뿐이다.

더구나 신규 핵발전소는 정부가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반도체·AI 산업의 전력수요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도 될 수 없다. 정부는 2020년대 후반부터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를 본격 가동하겠다고 하지만, 신규 대형 핵발전소는 부지 선정과 인허가, 건설과 시운전을 거쳐 실제 전력을 생산하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산업의 전력수요가 발생하는 시점과 신규 핵발전소가 가동될 수 있는 시점부터 맞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불과 3개월 만에 급조된 전력수요 전망이 10년 이상이 걸리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전망에도 없던 수십 GW의 수요가 몇 달 만에 추가되고, 이를 근거로 수십 년 동안 가동될 핵발전소 건설을 결정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전력정책인가.

그럼에도 막대한 산업 전력수요를 12차 전기본에 먼저 반영한다면 신규 핵발전소뿐 아니라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까지 ‘첨단산업수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정당화될 것이다. 노후핵발전소의 안전성과 설비 노후화보다 “전력이 부족하니 계속 돌려야 한다”는 산업계의 묻지마식 투자계획이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까지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그 부담은 다시 핵발전소 소재지역의 지역사회가 떠안는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핵발전소 지역은 더 많은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을 감당하고, 생산된 전력을 산업단지와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또 다른 지역에는 초고압 송전선로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기업의 메가프로젝트를 위해 핵발전소와 송전망, 핵폐기물의 위험과 비용을 지역에 떠넘기는 방식은 결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발전소를 몇 기 더 지을 것인가’를 계산하는 일이 아니다.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에서만 36GW를 넘어서는 막대한 추가 전력수요가 과연 필요한 수요인지부터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 산업계의 성장과 투자 논리가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후목표를 전제로, 에너지효율과 수요관리를 통해 전력수요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특정 산업과 지역에 집중된 전력수요를 어떻게 분산할 것인지가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폭주하는 메가프로젝트의 전력수요가 핵발전 확대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12차 전기본은 산업계가 요구하는 전력을 무한정 공급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기후목표에 맞춰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전력수요의 한계를 정하고 관리하는 계획이어야 한다. 급조되고 부풀린 전력 수요로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이룰 수 없다.

2026년 8월 20일
신규 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 사회를 위한 전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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