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12월 2024-11-28   12972

[여는글] 연말을 마주하는 방법

NEOM, Unsplash

한 해의 마지막 달 앞에 서면 새삼 겸손한 자세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회고, 성찰, 반성, 평가 등 방법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런데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완결과 완성에 이르렀는지, 예상하고 목표한 바에 얼마나 다다랐는지가 중심입니다. 기대를 갖고 시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당연히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일보다 훨씬 많습니다. 하고자 했던 일들이 담대한 도전이었고 전과는 다른 과업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돌아보는 방향도 다르게 가다듬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새롭게 시작한 일들,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저는 엉뚱하게도 ‘피크민’이라는 걷기 게임이 빠져 10월부터 하루에 2~3만 보를 걸으며 아마도 살면서 가장 많이 걸었을 하루, 한 주, 한 달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보로 한 시간 안에 닿을 수 있다면 겸사겸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종종 10킬로미터 남짓한 퇴근길을 걷다 보니 동료들이 조선 시대 관료의 삶이냐며 놀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버스, 전철, 자동차로 다닐 때는 보지 못한 장면과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이토록 많은 감각을 너무 빠르게 지나쳐 왔던 게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집 앞과 옆에, 동네와 동네 사이에, 길과 길 건너에 아담하지만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작고 귀한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와볼 수 있을까 하며 계획에 없던 골목으로 접어들고 지나가는 계절이 아쉬워 일부러 먼 길을 돌며 더 걷고 싶은 마음은, 올해 만난 가장 인상적인 힘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내년에도 이어갈 일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난가을, 후배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마침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 멀지 않아 그때 살던 집들을 차례차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이웃한 친구네도 가보았는데, 우연히 만난 친구 어머님은 십수 년이 흘러 이름을 바로 떠올리지는 못하셨지만 이내 저를 알아보시고는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반가움과 감사함에 저도 소매로 눈가를 연신 훔쳤습니다. 어머님은 친구의 소식을 전해주시며 오늘 연락하고 시간 맞으면 꼭 만나고 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시절 막역했던 사이지만 친구를 만난 지도 어머님을 뵌 때와 다르지 않은데, 꼭 붙잡은 손길과 함께 마주친 촉촉한 눈망울 덕분에 어색함을 잊고 오랜만에 휴대폰에서 친구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당연히 늘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고 웃으며 만나 즐겁게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저장된 연락처에서 잊고 지낸 얼굴을 찾아보았습니다. 때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잊지 않고 만남을 이어가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해가 아니라 훨씬 긴 시간으로 삶을 돌아보고 그려보려 합니다. 기한을 정해 무엇을 꼽는 일이 때로는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올해는 21세기가 시작된 지 25년, 그러니까 사반세기가 마무리 되는 때이니 각자의 21세기를 정리해 보기에 맞춤한 시기겠습니다. 저는 대략 생애의 절반을 20세기에 보내고 절반을 21세기에서 살아왔는데,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아마 전체 삶의 3분의 1은 20세기에, 3분의 2는 21세기에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20세기에는 없다가 21세기에 생긴 것들, 20세기에는 익숙했지만 21세기엔 자취를 감춘 것들을 떠올리며 그 과정에서 삶과 시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피니, 현재에 익숙해져 존재마저 망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한 해 한 해가 아니라 세기라는 긴 호흡으로 자신과 주변을 조망하게 됩니다. 변화를 꿈꾸며 계획을 세우지만 대체로 뜻대로 되지 않은 까닭은, 어쩌면 1년이라는 단기적 시야에서 모든 걸 바꿔보려는 과욕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세기를 넘나드는 긴 안목으로 방향을 잡고 하나씩 쌓아간다면, 21세기의 반세기가 지날 즈음에는 엄청난 변화가 실현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이번 12월에는 회고, 성찰, 반성, 평가의 내용에 앞서 올해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지 각자의 방법을 떠올리고 나눠보면 어떨까요. 왠지 ‘평가 기준의 다변화’라는 회사 언어가 머릿속을 스치는 듯하지만, 저의 착각이겠죠?

부디 여러분께도 새롭게 시작한 일들, 내년에도 이어갈 일들, 긴 시간으로 돌아보고 내다보는 것이 청명한 연말연시를 마주하는 방법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말이죠.


박태근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온라인 서점에서 MD로 책을 팔고, 여러 매체에서 책을 알려왔습니다.

〈월간참여사회〉 ‘읽자’ 코너에서 필자로,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하다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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