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12월 2024-11-28   13228

[이슈] 탄핵을 성찰하다

이관후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

Mathew Schwartz, Unsplash

박근혜 탄핵과 정당정치의 붕괴

헌정사상 처음으로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졌다. 이것은 한편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무능과 부패의 결과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정당정치의 붕괴를 의미한다.

5년 단임제 정부의 대통령이 임기 중에 권력의 남용과 단기적 지대추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반면, 이런 정부를 견인하여 총선과 지방선거,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주체는 여당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이 국정운영에서 그러한 역할을 보여주지 못할 때, 이를 견제하고 또 선거에서의 승리로 권력 균형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주체는 야당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실정이 이어지고, 그 결과가 촛불이라는 국면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여당과 야당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시 유승민 공천 배제 지시에 이어 김무성 당대표의 소위 옥새 파동은, 당정 분리라는 민주화 이래의 정당정치 원리가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탄핵 국면에서 여당의 분열을 야기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 개입은 탄핵의 중요한 사유로도 인정되었다. 야당 역시 정부・여당의 갈등을 토대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는 못했다. 그럴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당시 가을 내내 촛불 국면에서 야당은 국민의 뒤를 따라가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촛불은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에서의 ‘대표representation’의 정치가 위기를 맞자 ‘민주주의democracy’가 작동한 결과였다. 촛불은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났음에도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믿음이 여전히 확고하며,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한국의 시민들이 언제든 직접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민주화 이후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는 대체로 수용자인 국민(유권자)이 아니라 공급자인 정당과 정치인들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 공백 상태에서 선거와 정당은 존재는 하고 경쟁도 하지만 정치의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 정당, 언론, 제도는 말 그대로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이러한 정치의 부재는 곧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로 이어진다. 이것이 탄핵 국면에서 나타난 한국 정치의 민낯이었다. 정당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과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과연 문재인 정부와 그 이후의 한국 정치에서 어떻게 되었는가?

박근혜 탄핵과 경제적 불평등

87년 민주화는 독재로부터 자유를 쟁취했으나, 97년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를 강화했으며, 07년 보수정권의 수립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자유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를 지향했지만 동시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왜곡된 자유화의 길을 일관되게 걸었다.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단순히 최순실이라는 국정농단 세력과 대통령의 무능이 결합한 사건사적 의미를 넘어, 87년 민주화 이후 누적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응축되어 나타난 결과였다. ‘부자 되세요’ 이데올로기가 여야와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압도적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이 체제하에서 세습적 권력과 부를 활용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당시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이 공식화되었던 것은 한국 사회의 지배 이념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17년 대선으로 탄생한 새로운 정부의 과제는 단순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적폐 청산만으로는 부족한 것이었다.

촛불 당시 한국 사회는 약 한 세대 동안 이어진 무제한적인 자유의 확장이 강자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체제로 왜곡되고, 이것이 의회와 정당의 역량이 발전하지 못한 결손민주주의와 결합되면서 정부를 장악한 소수 권력자들의 사적 권력 남용이 극한에 달한 시기였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개인들의 욕구와 역량은 급속도로 상승했지만, 이것이 민주적이고 호혜적인 공동체의 형성과 단절되면서 물질적 부의 추구에 집중되었고, 사회적 재분배 기능이 약한 한국 사회에서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부에 대한 욕망과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는 노동조합에서 문화시장에까지 사회의 거의 모든 곳에서 ‘사회적·공동체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가족적’ 수준에서 추구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것은 사적 이익 추구의 극대화와 공적 고려에 대한 무시가 이제 국민 다중의 수준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최상층에서도 아무런 책임감이나 수치심 없이 추구될 수 있다는 적나라함이었다. 이것은 과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문재인 정부의 과제와 결과

촛불로 탄생한 정부의 과제는 대한민국을 어떤 정치 공동체로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서 국민적으로 공유된 비전이나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또한 정당정치를 복원하고, 연합정치의 틀과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를 정치적 구호로 내세웠을 뿐, 연립정부·연합정치를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당은 부동산 문제, 입시 문제, 코로나 상황에서의 재정 정책 등에서 정부의 경직성을 적절히 비판하고 대안적 방향으로 견인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들은 검찰 개혁과 부동산 정책에서 잘 드러났다. 기실 대한민국 역사엔 정권 교체 뒤 전 정부나 정치적 경쟁자에 대해 수사하는 오랜 관행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미 검찰과 청와대는 연립정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문 정부는 적폐 청산 이후 검찰 개혁을 전격적으로 추진했다. 검찰은 적폐 청산에 충성한 대가가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조직적 힘을 다해 이에 반발했다. 검찰 개혁이 불능에 부딪친 시점부터 정권 재창출 자체가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정치적·정책적 실책은 부동산 정책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대응, 남북 관계, 부패 청산, 노동정책, 의료를 비롯한 복지 정책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에서 보여준 정치적·정책적 무능력과 불신은 다른 성과를 모두 압도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그동안 학력과 인맥 중심의 사회적 지위 획득을 통한 소득 양극화에 더하여, 자산의 양극화라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막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사회경제적 문제를 제기했다. 코로나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과 그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청년-중장년 간의 세대 간 자산 양극화는 한국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낳고 있다.

시대 교체와 세대 교체

탄핵의 기쁨은 컸지만, 효능감은 적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실패는 국민들에게 촛불과 탄핵에 대한 회의감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고 이를 비판하는 시민사회가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국회나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광화문에 나온 시민들, 그리고 광화문에 나올 여유조차 없던 시민들이었다. 촛불 광장은 누구나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와 축제의 장이었다.

87년 이후 30년이 지나는 동안, 시민의 다수 구성원은 그 실질적 주체가 다음 세대로 넘어왔다. 87년의 20살 청년이 이제 50대가 된 반면, 지금 20-30대의 다수는 87년 민주화가 아니라 97년 외환위기의 영향 아래서 성장했다. 이들에게 80년 광주는 80년대 학번들이 4·19에 대해 가진 기억보다 더 멀리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젠더, 생태, 주거, 보육, 일자리, 협동조합, 대안문화, 예술 등 대단히 다양하다. 또한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박하다. 이 세대가 주도할 시민사회는 ‘깃발’로 대표되는 운동권 세대가 주도했던 시민사회와 사회적 배경과 의사소통의 수단, 문화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87년 민주화라는 정치적 변화가 이후에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분야에서 새로운 사회적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촛불 이후에는 한국의 시민사회를 뿌리부터 다시 다져가면서 완전히 새롭게 구성한다는 성찰과 계획이 필요했다. 그동안의 시민사회·시민운동이 엘리트 운동권 중심의 조직과 활동이었다면, 촛불 이후에는 새로운 세대의 수평적 리더십·팔로우십에 기초한 새로운 조직문화와 소통, 창조적인 실천의 주체들을 중심으로 완전한 재구성이 요구되었다. 과연 이러한 과제를 한국의 시민사회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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