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5년 09-10월 2025-09-03   10461

[활동가의 책장] 퀴어, 젠더, 트랜스

정지원 사회인권팀 활동가

리키 윌친스 | 오월의봄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자기소개에 이 문장을 꾸역꾸역 넣었던 적이 있었다. 일상 대화에서도,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온라인에서도, 어린/여성/운동가를 무시하는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이는 성차별에 바로 대응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고,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함을 숨기려는 연기이기도 했다. 동시에 나와 당신,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성평등한 세상을 직접 상상하고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만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단결해 성평등한 세상을 건설할 수 있겠다는 희망찬 설렘이 샘솟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 이외의 성별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들의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계속 들렸다. 동시에 성차별과 성범죄를 작동시키는 근본적 원인인 여성 혐오에 맞서기보다,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혐오가 확산되는 흐름도 목격 중이다. 페미니스트들의 단결이 단순히 상상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설득하고, 함께 성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퀴어, 젠더, 트랜스》는 책의 1부 ‘모두가 맞물린 젠더 문제’에서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권리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 속 젠더 규범을 벗어나는 이들이 배제되었던 역사를 설명한다. 이어 성차별 극복에 고정된 성역할 전복이 필수적이기에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결합된 퀴어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부 ‘벽을 넘어’에서는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별 이분법 규범 해체를 위해 필요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결국 자기 해체까지 이른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이후 3부 ‘정체성 정치를 넘어’에서 사실상 성별이라는 개념 또한 구성된 것이고, 정체성의 유동성은 여성이 새로운 의미·존재양식·정치적 가능성을 누리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인 리키 윌친스는 젠더 고정관념에 맞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모두를 위한 젠더권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책을 읽고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의 선언은 규범을 벗어난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 대신, 함께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저항하자고 설득하는 제안이 될 것이다. 모두를 위한 젠더권 운동을 만드는 과정이 시끄럽고 불쾌하며 인정하기 싫더라도, 일단 부끄러움을 직시하면 그다음 펼쳐질 세상은 좀 더 평등에 가까워져 있을 테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선언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 용기를 얻길 바란다. 동시에 누군가가 당신을 향해 선언할 때,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모두를 위한’ 젠더권 운동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을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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