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하루 지구생각] 해마다 거대한 궤적을 그리는 쿠아카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란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사계절 기억책》 등 저

지난 8월 초순, 멀리 뉴질랜드에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수신인은 전북지방환경청, 발신인은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The Whanganui Kūaka Collective이다.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는 마오리 부족의 일원으로 쿠아카는 마오리 이름으로 ‘큰뒷부리도요’다. 큰뒷부리도요라는 새는 많은 사람에게 낯설다. 직접 본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러니 이 새에 대한 애정 역시 딱히 있을 까닭이 없다. 우리의 이런 무관심에도 개의치 않고 큰뒷부리도요는 해마다 봄이면 우리나라 서해 갯벌로 찾아온다.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가 터전을 일구고 사는 뉴질랜드와 호주가 출발지다. 9천km가 넘는 먼 거리를 보름 정도 날아서 온다. 그렇지만 목적지는 서해안 갯벌이 아니다. 서해안 갯벌에 내려앉은 큰뒷부리도요는 영양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하며 한 달여를 지내다 목적지인 알래스카 베링해 인근으로 다시 날아간다. 두 번째 여정 역시 6천km가 넘는 먼 거리다. 큰뒷부리도요는 그곳에서 짝을 만나 알을 낳고 품어 새끼를 기르며 여름을 보내고 9월 중순쯤 출발지로 돌아간다. 돌아갈 땐 우리나라에 들르지 않는다. 1만 2천km가 넘는 거리를 열흘 정도 쉬지 않고 날아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큰뒷부리도요는 일 년의 절반을 동아시아와 북미 그리고 오세아니아를 연결하는 거대한 삼각형 궤적을 그리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지낸다. 마오리족에게 큰뒷부리도요가 공동체의 일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를 가로지르며 지구에서 가장 먼 거리를 오가는 철새가 바로 큰뒷부리도요다. 기적 같은 일을 해마다 반복하는 새가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할 일 아닌가? 미처 몰라봐서 미안할 지경이다.
이러한 큰뒷부리도요의 여정이 난데없이 저 멀리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가 전북지방환경청에 편지를 보낸 까닭을 설명해준다. 마오리족은 쿠아카를 따라 뉴질랜드로 왔다고 여길 정도로 그들의 문화 깊숙이 쿠아카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전북지방환경청에 보낸 편지에서 ‘쿠아카가 인류 역사 이전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와 사람을 연결해온 존재라면서 쿠아카 서식지를 훼손하는 결정은 곧 마오리 문화유산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우리의 솟대가 떠오른다.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새를 보며 인류는 엇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걸 발견하면 반갑다. 큰뒷부리도요가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 알게 된 건 과학의 힘이다. 위성 추적 장치를 부착하고 이동 경로를 쫓아 밝혀진 비밀은 경이로울 따름이다. 수천에서 1만km가 넘는 거리를 멈추지 않고 이동하기 위해 충분한 영양 보충은 필수다. 최대한 칼로리를 축적하기 위해 이들은 심장, 신장, 소화 장기, 심지어 다리 근육까지 줄여가며 몸에 지방을 잔뜩 축적한다. 비행 근육을 키우고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기 위해 혈액은 더욱 농축된다. 그리고는 쉼 없는 날개짓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다. 이러한 이동 경로 가운데 우리나라 새만금 갯벌이 포함된다. 그 갯벌 대부분이 매립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수라갯벌에 공항을 짓겠단다. 만약 갯벌이 공항으로 바뀐다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쿠아카는 변해버린 공간을 목격하고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내려앉을 곳을 못 찾고 기진해 헤매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처참하다. 그러니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은 얼마나 다급했을까?
새들은 새들의 리듬으로 생을 살아간다. 우리 인간 역시 우리의 리듬으로 생을 살아간다. 두 종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갈등이 불가피하지 않다면, 굳이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공항을 짓겠다는 그 지역은 전 세계 새들이 이동하는 아홉 개 대표 경로 가운데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EAAF, East Asian-Australasian Flyway의 핵심 지역이다. 새들이 집중적으로 많이 오갈 수밖에 없다. 지난 연말 제주항공 참사가 빚어진 곳보다 조류 충돌 확률이 훨씬 높은 곳이다.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의 표현처럼 인류 역사 이전부터 새들은 그렇게 오고 갔다. 그렇다면 그 공간에 대한 선주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많은 지방 공항이 적자에 허덕이며 제 기능을 못 하는 마당에, 가까이에서 조류 충돌로 참사가 벌어진 마당에, 왜 굳이 그곳에 공항을 짓겠다는 건가? 지난 5월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국내외 과학자 10명의 의견서에 따르면 수라갯벌은 새만금지역에 남은 마지막 ‘자연’ 갯벌이다. 그곳에 국가 법정보호종과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수십 종 서식하고 있다. 공항이 건설된다면 그 지역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더구나 그 지역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한국 갯벌’의 핵심축이기도 하다.
아스팔트가 지글거리며 열기를 한껏 뿜어대던 팔월 하순 한낮에 대통령실이 올려다보이는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새만금신공항 취소판결을 바라는 탐조단체(한국탐조연합)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하준이도 참석했다. 새를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탐조를 시작한 하준이는 직접 쓴 손팻말에 황새 한 마리를 정성스럽게 그려왔다. 하준이는 마이크를 잡고 발언도 했는데, 자신이 직접 발언 내용을 쓰고 외워왔다. 보고 읽는 건 성의가 없는 것 같다며.
“저는 앞으로도 갯벌에서 많은 도요새를 보고 싶어요”, 하준이의 메시지는 간결했으나 마음은 간절했다. 그러나 도요새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그깟 새가 뭐가 중요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남아돌아 적자에 허덕이는 공항인가요? 먼먼 거리를 날아오며 완전히 지쳐버린 새들이 내려앉아 주린 배를 채울 장소마저 살뜰히 없애버리는 야박한 마음인가요?
새만금 신공항 취소 소송 1심 판결이 9월 11일로 예정돼 있다. 판결이 신공항을 건설하는 쪽으로 난다면 그 판결은 큰뒷부리도요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일까? 마지막 남은 자연 갯벌 정도는 남겨두는 자비심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다고 믿고 싶다. 어떤 항변도 할 수 없는 새들의 처지를 대신해 그들의 서식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인류보다 훨씬 먼저, 더 오랜 시간을 익혀온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먼 거리를 날아오느라 지친 새들에게 다른 경로를 찾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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