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치자금 과세에 대한 국세청의 입장
[기획특집] 세금으로 본 정치비자금 사건 ③
한나라당에 45억4000여만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등, 지난 대선 당시 SK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정당과 정치인에게 증여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주장에 대해, 국세청이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과세당국의 법해석이라고 보기에는 논리적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기존의 과세원칙에도 역행하는 것이어서 국세청 스스로가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과세불가 논리
한나라당 등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각 정당 및 정치인들에게 합당한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 국세청 관계자는 17일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나설 수 없다”는 말로 기존의 과세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돈의 성격이 대선과 관련한 정치자금이 아닌 뇌물로 최종판결이 날 경우 과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라며, “지금은 돈의 성격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과세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하지만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이 돈이 정치자금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자금인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국세청의 답변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세 및 법률전문가들 또한 “국세청의 이 발언은 불법적 이득에 대해 과세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국세청이 과세여부를 판단하는 과세관청의 고유권한을 검찰에 양도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즉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탈세혐의를 조사·과세해야 할 국세청이 이를 검찰수사에 의존한다는 것은 과세관청으로서의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구재이 세무사는 “국세청 업무가 탈세혐의를 조사하고 과세하는 일인데, 그걸 안 하면 뭘 하겠다는 것인가. 과세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국세청의 고유업무인데, 이를 검찰에 맡기겠다는 것은 국세청 본연의 정체성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국세청을 비판했다.
“돈의 성격이 분명치 않아서 지금 당장 과세할 수 없다면, 검찰수사 결과 불법정치자금으로 최종 결론 날 경우 과세할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국세청 답변 역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국세청 관계자는 “불법정치자금이라고 하더라도 귀속자가 정당이면 과세할 수 없다”며 이는 상속세및증여세법 46조 3항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러나 국세청이 법해석·적용을 그동안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
정당에 제공한 불법정치자금에 과세할 수 없다는 근거로 국세청이 제시한 상속세및증여세법 46조는 증여재산 중 비과세 되는 경우를 열거한 것으로, 이 조 3항은 ‘정당법의 규정에 의한 정당이 증여 받은 재산의 가액’에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를 두고 한나라당 등 기업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정당들이 ‘정당법의 규정에 의한 정당’이므로 받은 돈의 불법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돈의 성격이 합법적인 자금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법규정임을 외면한 주장이다. 따라서 국세청의 주장은 법조문의 문자적 표현에 집착한 나머지 과세를 포기한 것을 의미해, 불법정치자금 척결을 갈망하는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용대 변호사는 “조세특례제한법 76조에는 정치자금에관한법률에 의거, 적법한 절차를 거친 돈에만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불법적인 돈에는 과세한다는 말”이라며, 국세청이 근거로 든 상증세법은 합법적인 정치자금일 경우에 한해서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정치적 부담 회피가 진짜 이유
현재 많은 조세·법률전문가들은 불법적으로 취한 이득에 대해서는 빠짐 없이 과세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유독 국세청만 “검찰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고 발을 빼는 것은 돈의 성격이 단순 정치자금이 아니라 뇌물 등으로 밝혀질 경우, 이는 ‘대가성 있는’ 돈이어서 과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국세청의 이러한 논리는 참여연대가 지난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세풍 및 나라종금사건과 관련해 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상대로 국세청에 과세를 요구한 이래로 국세청이 한결같이 주장해온 말이다. 즉 뇌물의 경우 ‘대가성 있는’ 돈이므로 대가성 없이 주고받은 돈에 과세하는 증여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세청이 말하는 ‘대가성’의 의미는 세법에서 말하는 대가성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세법상의 ‘대가’란 경제적 반대급부가 있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풍 및 나라종금 사건으로 돈을 받은 사람들은 받은 돈에 대한 경제적 반대급부를 제공한 것이 아니기에 증여세를 과세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구재이 세무사는 “국세청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에 대가성 없는 증여란 어디에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노후를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해서 이를 대가성 있다며 증여세를 안 물릴 수 있는가”라고 되묻고, “국세청이 청탁도 대가라는 주장을 계속 고집할 경우 지금까지 국세청이 증여세를 과세했던 모든 사안이 무효가 될 뿐 아니라, 앞으로는 아무도 증여세를 납부할 필요가 없다”며 국세청 논리에 일침을 가했다.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무리한 법해석을 근거로 정당하지 못한 이득에 과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진짜 이유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과세를 시도함으로써 떠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중순, 나라종금 사건과 관련한 참여연대의 탈세제보에 대해 과세불가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국세청 관계자는 “한창 정치적으로 뜨거운 이슈에 개입하는 것은 국세청으로서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내심을 비춘 바 있다.
이렇듯 권력형 부정부패로 얻은 불법적 이득에 대해 국세청이 복지부동하고 있는 사이, 비자금 사건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나라종금에서 굿모닝시티로, 다시 현대, 그리고 SK로, 비자금은 기업과 정치인을 옮겨가며 그 추악한 실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국민들은 상실감에 주저앉고, 조세정의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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