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식ㆍ황경식 편,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유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은 야심에 찬 기획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열 명으로 구성된 필자들이 자유주의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 전문가들이며 이들이 1년여 동안 월례토론회를 통해 얻은 학제적 성과물이라는 점도 그 무게를 더해 준다.
제일 먼저 올린 이근식 교수의 글은 이 책 집필자 전체가 학문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방향을 개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유주의를 “모든 개인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시민사상”(13쪽)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는 민주주의, 경쟁적 시장경제 및 법치주의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기반으로 우리 사회를 자유주의적으로 개혁하고자 한다. 이러한 자유주의는 그 안에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장하는 평등주의적 이념과 비판의 자유와 관용 등의 원리 그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망라하는 근대적 정신적 유산이 갖는 보편타당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포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논점은 서구자유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보다 나은 대안적 논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다른 글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시도하는 서구 다문화주의 해석방식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박정순 교수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주의적 기준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 혹은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에 바탕한 시민공동체적 이념”(178쪽)을 제시하는 황경식 교수의 논점도 세계시민 모두의 인권과 인간적 삶의 보장이라는 논점을 최소한의 보편적인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헌법과 자유주의』를 쓴 안경환 교수의 글도 자유주의에 공화주의적 요소를 보완하고 있는 미국헌법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정종섭 교수도 『자유주의와 한국헌법』이라는 글에서 대한민국헌법은 공동체적 가치와 국민의 복지를 포함하는 자유주의적 헌법임을 논의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서구의 지적 전통에 의거해서 다양한 색채를 띠고 등장하는 자유주의 사조들에 대한 역사적 탐구도 이 책에서는 곁들여지고 있다. 시민들의 자유를 증진시켜 주고 자율성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참된 자유의 원칙’을 제안한 래즈(J. Raz)의 논점을 소개하는 서병훈 교수의 글이나 프랑스혁명 이후의 공화정과 자유주의의 내적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의 귀족적 반민주성과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 월러스틴의 입장을 재비판한 글 그리고 하이에크의 경제적 자유주의 내지는 시장중심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공동체적 시장규제를 옹호하는 폴라니의 이중시장논의가 갖는 장단점을 적시한 글도 우리는 접할 수 있다. 마지막 글인 조우현 교수의 글은 개혁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21세기 한국의 경제정책, 사회정책의 방향전환을 제안하는 매우 구체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주제와 영역에서 접근하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한 해석은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유지하고 있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벤담주의적 자유주의로 풀어쓰고 있는 고세훈 교수의 글을 제외한다면 그외의 글들은 시장중심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시장정합적인 사회제도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생존과 기본권 그리고 행복을 고려하지 않은 시장자유주의는 그 사회적ㆍ세계적 적실성을 상실해 왔다는 역사적 경험과 세계시민을 단위로 하는 21세기형 새로운 자유주의의 재구성을 염두에 두면서 세계시민공동체적 요소를 도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세부적으로 고찰해 보면 글들 사이의 일관성이 보이질 않는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 아래 장기적인 기획을 통해서 조율된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다. 글쓴이 각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독자적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의도의 공통성이 보이면서도 글에 따라서는 국가중심의 자유주의를 선호하는 글들과 세계화를 그 대상으로 하는 글들이 섞여 있다. 또한 특정 시대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자유주의의 모습을 그린 글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자유주의 일반에 대한 체계적인 입문서 혹은 연구서라고 보기는 힘들다.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보충되리라 기대해 본다. 좀더 아쉬운 점은 글들이 서구 근대자유주의 사상의 흐름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어서 한국의 자유주의자나 자유주의 사상과 체계에 대한 평가 없이 기본적인 자유주의 구도를 통해서 한국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매우 현학적이며 형식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개혁내용들도 이를 이끌어갈 개혁주체가 형성되어 있는지, 이것이 자유주의적 범주 안에서 상호 보충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결여된 채 다만 논리적인 일관성과 현실적 설득력을 덧붙이기 위해서 몇 개의 개념틀을 접합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유경쟁과 시장논리의 획일적인 전사회화, 폐쇄적인 연고주의, 자본과 정보의 탈국가화, 국가적 세계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정치와 경제의 지역블록화, 환경오염 등의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자유주의만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자유주의란 사상의 자유와 인권의 존중 그리고 인간행복추구권을 껴안는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자기강화를 통해서 스스로 평형감각을 갖고서 이념의 중심 축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주의가 진정 이러한 덕목들을 기본적인 것들로 놓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다시금 자유주의자로 거듭나는 꿈을 열대야 속에서도 다시 꾸게 될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