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호] 북리뷰 2_마르크스의 『자본』에 보내는 오마주

로버트 브레너, 『붐 앤 버블』

1998년 『뉴 레프트』(New Left Review)지에 『불평등발전과 장기침체: 호황에서 정체까지 선진자본주의 경제 1950~1998년』이라는 방대한 논문(국내에서는 재작년 말 『혼돈의 기원』(이하 『기원』)으로 출판되었다)이 발표되었을 때, 세간의 반응은 다소 의외로 나타난 바 있다. 우파적 성향을 지닌 언론들이 호평을 보냈던 반면, 좌파이론가들은 대체로 인색한 대접을 했던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기원』의 후속작인 『붐 앤 버블』(이하 『버블』)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현상을 되짚어보게 할 뿐 아니라, 저자 자신이 오랫동안 기울였던 노고의 완결판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평자 역시 『기원』을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논란―분석틀의 타당성(대표적으로 경쟁과 이윤율저하의 인과관계)이나 그것을 세계경제에 적용함에 따르는 문제―으로부터 브레너 교수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그가 『기원』에서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에 대한 답을 『버블』에서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버블』은 90년대 말 미국경제가 누렸던 호황을 주식시장에서 형성된 대중의 기대심리와 연방준비위원회의 정책이 중첩된 불가피한 결과로 설명한다. 이로써 브레너는 과잉설비→가격하락→이윤율저하→위기라는 『기원』의 평면적 도식을 보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때도 70년대 이후 자본간 경쟁에 따른 과잉생산이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그의 핵심 명제는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한 톤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버블』에서 묘사되는 경기의 순환적 하강이 단순한 실물적 차원의 설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시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연준의 저금리정책이 신용팽창을 야기하고, 주식시장에서의 자산효과를 통해 호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쇄과정으로서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브레너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거품에 기초한 호황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는 장기하강을 극복할 수도 없고 심화되는 정체상태를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라는 그의 전망은 거품이 꺼지고 나서 겪게 되는 후유증의 심각성과 세계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버블』은 『기원』에서 이미 제시된 주장을 보다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제시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평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부정적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버블』이 기본적으로 『기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버블』에 대해 섣불리 근본주의의 잣대를 들이대고 분석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대한다. 왜냐하면 『버블』은 『기원』에서의 주장을 재평가할 수 있는 부분 역시 만만치 않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85년의 플라자합의와 그로부터 10년 뒤 이루어진 역플라자합의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세계경제의 이해관계는 경기의 순환적 상승과 하강을 통해 상호 보완적이 아닌 모순적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버블』에서 전개되는 주장(특히 4장과 6장)은 환율조정이 위기의 근본적인 해소수단―자본주의가 과잉투자로 향하는 맹목적 경향에 대한 제동장치―일 수 없다는 극히 마르크스적인 사고의 발로로 볼 수 있다. 브레너는 그러한 사고에 기초해 모순성의 배후―과잉생산―를 지적했으며 『기원』과 『버블』을 관통하는 논리―불균등발전론―를 더욱 정치한 형태로 다듬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버블』의 강점은 무엇보다 금융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실물분석을 보완한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역사상 최초라 일컬어지는 미시시피 버블 이래 호황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금융과 실물 부문의 괴리를 해명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풀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브레너는 버블현상의 본질이 “주식시장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있음을 강조하는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현대의 거품현상이 금광개발이라는 환상 속에서 주가가 폭등했던 18세기 초의 상황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태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오늘날 통신부문(TMT)에서 시현되는 첨단기술에 대한 맹목적 신뢰로 전환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 브레너는 주가상승이 이윤율하락을 은폐한다는 또 하나의 마르크스적인 논리를 추가한다. ꡔ자본ꡕ을 접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그것이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는 좀처럼 착안하기 어려운 발상이라는 평자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브레너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테면 “주가가 관련기업의 이윤과 무관하게 폭등”할 수 있다는 주장 같은 것은 “시장―특히 금융시장―이 ‘최고를 알지 못한다’”는 효율성 시장가설에 대한 정면비판의 관점에 설 때만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황이 거품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려는 정책적 시도(예를 들어 연준의 개입)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는 『버블』의 주장은 마르크스의 『자본』 3권에 나오는 자본주의의 경기부침에 대한 묘사를 연상케 한다. 이렇게 볼 때 금번 완결된 브레너의 2부작은―비록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마르크스의 『자본』에 부치는 경건한 오마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요컨대 우리는 현대첨단산업의 확장이―거품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에서―과거 철도붐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과 그 시대에 마르크스가 선사했던 교훈들을 아울러 한번쯤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브레너 교수의 작업을 단순히 학술적 흥미에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차제에 한국사회의 현실을 냉철히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배인철 / 한국도로공사 전략경영실 경영연구그룹 책임연구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