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호] 권두언_문순홍,처음으로 돌아간 영혼,처음처럼 품어야 할 우리 내일의 희망

산다는 것, 그것은 결국 떠난다는 것이다. 쉴 고향을 찾아 처음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일상사에 분주한 나머지 잊고 있었던 것일까. 매일 아침 길을 나서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는 이같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늘 되풀이하고 있음을. 호호백발 머리 당신도, 아리따운 볼의 당신도, 연부역강(年富力强)한 당신도, 천진난만한 미소의 당신도 온전히 그대 인생의 몫을 갖고 결국 떠날 것이다. 그리고 흙이 되고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물이 되어 어디선가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시민과세계>의 둥지 안에서 동고동락해온 한 동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유한한 생명의 이 아픈, 비극적 진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문순홍 박사가 편히 쉴 곳을 찾아 저 세상으로 떠났다. 2005년 1월 28일 아주 늦은 한밤중에 편집위원들이 조그만 무리를 이뤄 빈소를 찾았을 때 우리는 오직 영정 안의 미소로만 우리의 동료 문순홍과 마주할 수 있었다. 생전에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의 고통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주 늦게 알게 된 그녀의 고통도 우리가 위로할 수준은 지나 있었다. 그녀가 한평생 추구해온 바로 그것, 그 ‘생명’이 이제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되어 있었다.

문순홍은 한평생 생태학과 녹색의 대안을 정립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데 온 열정을 다 바쳤다. 그녀는 통상의 환경론자와 달리, 녹색정치와 시민정치의 만남을 위해서도 큰 힘을 기울였다. <시민과세계>에서 우리가 같이 만나 모색했던 길도 바로 이 길이었다. 그녀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를 공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에서 권력과 투쟁 그리고 승리와 패배의 싸움판이 아니라 생명과 자치 그리고 승패를 모두 부여안는 살림의 판을 꾸리고자 했다. 그녀는 정치가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에서 ‘녹색정치’라는 말이 시민권을 얻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생태위기와 녹색의 대안>(1992), <환경논의의 쟁점들>(1994),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생태전략>(1995),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1995), <생명과 자치>(1996), <사회생태론의 철학>(1997), <정치의 재발견>(1998), <생태학의 담론>(1999), <한국의 여성환경운동>(2001), <생태학: 그 열림과 닫힘의 역사>(2002), <한국에서의 녹색정치, 녹색국가>(2002) 등, 그녀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책들은 한권 한권 나올 때마다 한국 환경운동과 시민운동에서 생명의 담론이 일어나고 대중화되는 데 큰 몫을 한 그녀의 분신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생명의 담론들’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그녀의 ‘생명 그 자체’에는 어떤 힘이 되었을까?

2002년 초 그녀에게 암이 선고되고 투병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무겁게 다가온 것은 단지 자신의 생명이 단축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이제 다가올 ‘내일’이, 오늘 자신이 하지 못할 일을 넘겨줄 내일 그 자체가 바짝 줄어들었다는 바로 그 경계의 담장일 터였다. 사실 생명의 길이는 아주 상대적이다. 우리는 하루살이도 병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하루 동안’ 아주 길게 잘살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병은 하루살이보다 이미 몇만 배나 긴 인생을 살아온 터인 인간에게서 내일을 빼앗아버린다. 단지 생물학적인 연명만 문제된다고 하면 우리는 줄어드는 우리의 생명에 그처럼 초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줄어든 생명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소중한 생명이고, 우리는 그것을 잘살면 될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더 잘살기 위해 우리 삶에 끌어들인 ‘내일’과의 관계가 예기치 않은 병이나 죽음이 오면 산산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아깝고 소중한 생명, 티없이 맑은 문순홍의 영혼이 육신의 죽음을 넘어 그녀와 우리가 함께할 내일의 희망으로 살아숨쉬게 할 책무가 산 자인 우리에게 있다.

꺼져가는 동료의 생명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작년 10월 우리 대한민국의 시민과 공화국의 생명과 직결된다고 믿는 두 가지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보는 기획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나는 아주 생물학적이고 물질적인, 그러나 우리 삶의 근본바탕이 되는 문제였다. 바로 경제가 최우선이라고, 국정 최고책임자가 거기에 신경 쓰기만 하면 당장 살아나기라도 하는 듯이 사방에서 개혁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민생부터 챙기라고 아우성치던 때였다. 그래서 과연 사태가 어찌된 것인지, 무엇이 대안인지 알아볼 심산으로 우리 편집진들은 한국사회경제의 다면적 양극화의 문제, 이른바 ‘경제를 살리자!’는 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었다. 다른 하나는 아주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 나와는 다른 타자를 타자로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자기몰입된 상태에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런 정신자세로 누천년을 지내온 서양정신의 영향을 아무 반성 없이 받아들인 결과라는 진단의 정확성에 관한 문제였다. ‘나르시스의 꿈’이라는 화두로 서양정신의 타자망각증을 찌르고 들어온 김상봉 선생의 거대담론이 면밀한 검토를 받아야 할 문제로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 두 문제 못지않게 주제의 긴장도가 높은 또 하나의 관심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이름을 걸고 17대국회에 진입한 ‘민주노동당’의 의정활동 6개월이었다.

‘나르시스의 꿈’을 주제로 한 특집은 보통의 잡지기획과는 달리 두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우선 화두를 던진 김상봉 선생이 이미 2004년 하반기에 <교수신문> 지상에서 영산대 장은주 선생과 벌인 논전의 결과를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정리하고, 그에 대해 장은주 선생뿐만 아니라 동서양 철학의 전공자들이 각기 자기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참여사회연구소와 민예총 문예아카데미가 공동주최하는 형식으로 1월 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토론회는 주최측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애초 토론자수를 다섯 명이나 잡았던 본래의 의도는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논변의 풍성함을 질적으로 보장하자는 데 있었다. 그러나 토론회 당일 몰려든 청중의 수는 주최측을 안심시키는 수준을 넘어 아예 경직시켰다. 행사장 안의 의자가 모자라 좌석을 더 마련하고도 결국 내내 서서 방청하는 분이 생겨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6시간의 발제와 토론 동안 단 15분 한차례만 휴식하고도 저녁 9시 가까이, 그것도 장소를 빌려준 측이 재촉해서야 ‘나르시스의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장은주(영산대), 김세서리아(성균관대), 박구용(전남대), 정세근(충북대), 김선욱(숭실대) 선생들과 김상봉 선생 사이의 논변은 인터넷신문들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고, <오마이뉴스>는 토론녹취문을 전문게재했다(지금도 검색하면 열람할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 article_view.asp?at_code=235538).

이행기 한국자본주의의 현단계를 짚어보는 일은 나르시스의 꿈을 파헤치는 일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호 주제기획의 취지는 그렇게 사람들이 목을 매달다시피 하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정말 책임 있는 분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다중적 양극화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적어도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관철되는 ‘시민경제’(civil economy)라고 하는 대안의 윤곽이나마 잡아보고자 한 것이다. 이정우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 장상환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장,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부교수, 이근 국제경쟁력연구센터 부소장(서울대),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박태주 노동교육원 교수,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교수, 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글은, 일단 내용의 참신성은 차치하고 한국 사회경제에 관해 각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이야기되는 담론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독자들에게 전체 조감도를 갖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고 확신한다. 정말 어렵게 만들어진 이 기획이 양극화의 함정에 빠진 우리 경제와 사회의 현단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시민적 대안을 모색하는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의 고언은 참으로 매몰차다. 이제 막 6개월이 넘어가는 원내활동을 보면서 소수정당으로서 정국을 선도할 수 있는 플레이에 무딘 민주노동당에게 “해체하는 것을 두려워 마라”는 질타를 날리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한편 교과서가 없는, 길 없는 한국적 진보의 길을 개척해온 민주노동당의 역사를 살피면서 당사자 장석준은 묻는다. 민주노동당은 ‘달리될’ 수 있을까. 다시 새롭게 대중의 자각과 활력을 촉진할 수 있을까. 창당의 기반인 조직노동자가 아니라 미조직ㆍ주변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노동운동의 혁신을 재촉할 수 있을까라고.

우리는 오늘 최선을 다하되 내일의 여분이 나올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내일’을 막아가면서 오늘을 사는 것은 결국 ‘오늘’도 없애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동료 문순홍은 살아생전에 수많은 내일을 만드는 오늘 하루하루들을 살았다. 그녀가 만들어놓은 내일은 다 어디 갔을까? 그녀의 죽음으로 없어진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죽음과 빈소에 있던 그녀의 미소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문득 깨달았다. 문순홍의 내일은 그녀의 육신의 죽음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일로 보태졌다는 것을.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간 그녀의 영혼은 처음처럼 안아품는 우리 내일의 희망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2005년 4월

공동편집인 이병천ㆍ홍윤기

이병천 · 홍윤기 / 공동 편집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