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시민정치론_노동과 인정 – 새로운 관계규정을 위한 시도

시민정치론: 노동과 인정(認定)
새로운 관계규정을 위한 시도

악셀 호네트(Axel Honneth) / 강병호 옮김

지난 이백년 간 해방적 인간적 노동 개념을 옹호하려는 노력이 오늘날처럼 곤경에 처한 적은 없었다. 산업 및 서비스 분야에서 이루어진 노동조직의 실제적 발전은 노동의 질을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를 공허하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고용기회를 얻고자 분투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법적으로 거의 보호되지 않는, 아주 탈규제화된 노동조건 아래에서 일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지위에 따른 고용안정을 누렸던 사람들도 현재 급속히 조기퇴직과 외주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아마 어느 누구도, 현재 우리가 임금노동의 지위가 사회복지국가적으로 보장되던 짧은 국면의 끝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로베르트 카스텔(Robert Castel)의 진단을 부정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으로 보호되지 않는 파견 및 하청 노동 그리고 단기고용으로의 복귀 움직임은 지적 주의(注意)와 사회이론적 관심의 변화에도 엇갈리는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희망을 노동의 해방과 인간화에 걸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실망하여 노동세계로부터 등을 돌리고 생산과는 거리가 먼, 완전히 다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비판적 사회이론도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주로 정치적 통합 및 시민적 권리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 같다. 생산영역에서 그 동안 이루어진 성취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학문적 자식(子息)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학조차 한때 자신들의 핵심영역이었던 노동문제에서 많이 벗어나, 점점 더 문화적 변동과정을 자신들의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노동세계로부터의 지적 후퇴라 할 수 있는 이런 경향들은 서민 대중들이 실제로 느끼는 것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노동세계의 종말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모든 예측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생활세계에서 노동이 갖는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서민과 대중의 다수는 자신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일차적으로 조직화된 노동과정 속에서 자신들이 맡고 있는 역할과 결부시키고 있다. 노동시장이 전대미문의 규모로 여성들에게 열린 이후로 노동에 자신의 정체성을 결부시키는 사람들의 수는 오히려 훨씬 더 늘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중요성 상실이 이렇게 생활세계적 의미에서만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규범적 의미에서도 그렇다. 실업은 계속해서 사회적 낙인으로, 개인적 오점(汚點)으로 경험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관계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의혹과 불만을 사고 있다. 단지 생계를 보장할 뿐 아니라 개인적 만족을 주는 직장에 대한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이 갈망이 공적 토의와 정치적 대결의 장에서 더 이상 중심 주제가 되지 못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숨 막히는 침묵으로부터 노동관계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이제 최종적으로 역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경험적으로 틀린 것일 뿐만 아니라 거의 냉소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아마 사회적 생활세계의 경험과 사회이론의 지속적 성찰 사이의 거리가 오늘날만큼 벌어진 적도 없을 것이다. 사회이론에서는 사회적 노동 개념이 일반적으로 거의 그 의미를 상실한 반면, 생활세계에서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하게 당사자들의 곤란과 불안과 희망이 노동 개념을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물론 사회이론이 노동이란 문제영역으로부터 전향한 것은 단순히 기회주의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지식인 및 사회이론가들의 침묵에서 단지 서민 대중의 현실적 곤경을 계속해서 탐구하려는 의지의 결핍만을 짐작해 내는 것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판단일 것이다. 노동영역이 더 이상 연구대상이 되지 않는 데에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인식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현실의 노동관계를 염두에 둘 때 노동형태의 전반적 개선을 위한 모든 제안들은 쉽게 당위적 요구의 성격만을 띠고 말 뿐이라는 인식 말이다. 사회현실과 노동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 사이의 골은 깊어지고, 현실의 노동관계와 해방적 노력 사이의 간격은 크게 벌어져서, 사회이론은 자신들의 모든 이론적 노력이 헛되었음을 잠정적으로나마 고백해야 했다. 기회주의적으로 혹은 의기양양하게가 아니라 이를 갈며 비참한 마음으로 사회운동의 지적 대변인들은 사회적 노동의 영역으로부터 등을 돌렸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 의한 규제와 소외로부터 노동을 해방시키자는 이상이 현실에서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노동관계의 구성은 세계화되는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의 힘에 맡겨져야 하는 것이 되었다. 개념틀 차원에서 경제체계의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규제라는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표현에 의해 가장 분명하게 표시된 이러한 전환점과 더불어, 우리가 오늘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주하고 있는, 앞에서 묘사한 상황으로의 길이 마련되었다. 고용만이 아니라 노동의 질에 대해서도 염려하는 모든 이들의 곤경이, 비판적 사회이론의 어휘체계 속에서 더 이상 어떤 반향도 얻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이제부터 나는 앞에서 개괄된 개념적 발전방향이 다시 한번 돌이켜질 수 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회이론이 노동의 질적 개선을 위한 단지 유토피아적 전망만을 하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노동이란 범주가 어떻게 사회이론의 틀 안으로 편입되어야 할까? 이런 복잡한 문제에 다가가기 위한 첫 번째 걸음으로 나는 방법론적으로 외재적 비판과 내재적 비판 사이의 구분을 현존하는 노동관계의 비판을 위한 의도에도 적용하자고 제안할 것이다. 의미 있고 안정된 노동이라는 이상이 이성의 요구로서 사회 재생산 구조 자체 안에 자리 잡게 될 때에만, 우리는 규범적 요구가 더 이상 한낱 당위적 성격만을 갖지 않는 내재적 비판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I).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계속해서, 현대사회의 성과(成果)교환에서 사회적 노동이 인정조건과 결부될 때에만 내재적 규범의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보여져야 한다. 한낱 사적이고 자기충족적인 활동의 경계를 넘어선 모든 노동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조직화되고 구조화되어 있어야 한다 (II). 마지막으로 나는 현대 노동세계의 구성을 염두에 둘 때 노동과 인정의 이러한 구조적 결합이 어떠한 내재적 요구들과 결부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 마지막 단락에서 뒤르케임(Durkheim)으로부터 유래하는, 분업이 정의롭게 조직화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언뜻 보기보다는 보다 많은 규범적 추진력을 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III).

I.

산업혁명 이후로 사회적 노동의 새로운 구성을 위한 유토피아적 기획은 충분히 있어왔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적으로 활용되고 작업장 형식으로 조직된 임금노동의 형태는 모든 삶의 영역을 관통하고 주조하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그 시기 시대정신은 무엇보다 우선 생산영역에 규범적 기대를 걸었다. 이러한 해방적 기대를 추진하는 밑그림으로 작용했던 것은, 처음에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던 장인적(匠人的) 작업방식에 대한 기억이었다. 장인의 작업에서는 노동과정이 전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어서, 그는 익숙한 작업재료를 가지고 전체 작업과정을 창조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고, 작업의 끝에 가서는 완성된 산물 속에서 거울을 보듯 자신의 숙련된 기술이 객관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장의 작업은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조각조각 찢어져 있고, 자발적인 것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기에, 공장 노동자에게는 그런 전체적이고 온전한 경험이 전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세계관적 정향에 따라 장인적 활동의 모델에서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협동이란 특성이나 개인적 자기대상화의 요소가 강조되었다. 전자의 경우에 새로운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의 형태는 그것이 노동주체들의 창조적 협력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저주받을 만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달리 후자의 경우에는 자본주의적 노동 형식이 개인들의 능력을 대상화하는 유기적 과정을 조각 내서 그 자체로 의미 없는 개별 파편들로 나누는 것이 문제였다. 소외되지 않은 자발적 활동이라는 노동관에 미학적 생산모델이 새로 편입되자마자, 노동을 자본주의적으로 조직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은 추가적 탄약(彈藥)을 얻는다. 모든 인간 노동은 예술작품의 제작에서 본보기로 잘 들어나는 자기목적적 창조성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특별히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상속자들 사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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