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0] “박원순 혼자선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 비례대표제 확대와 의회 강화

참여사회연구소가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20>비례대표제 확대와 의회 강화

“박원순 혼자선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


최현 제주대학교 교수

 

얼마 전 남편을 잃은 아내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인터넷 공동구매 사기 행각을 벌였다가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빅토르 위고(1802~1885)가 묘사했던 굶주리는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쳐 20년 가까이 감옥에 갇혀야 했던 장발장의 비극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에 새삼 분노를 느낀다. 이 여인을 도대체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자기 가족도 제대로 돌보기 힘든 상황은 우리를 언제든 도덕적·문화적·정치적으로 타락하게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동료시민이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이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동료 시민의 전락은 자신에게도 치명적이다. 이 점을 우리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747이라는 허언을 간파하지 못한 다수 시민들의 선택으로 우리는 현재 모두 고통 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는 시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시민들이 자존감을 유지하며, 자신의 비판적 사고력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조건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복지국가는 시민에게 정치적·문화적으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만들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같아 보인다. “좋은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 되고 있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결국 정치적 참여의 결과인데, 현재는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정치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정치적 힘으로 만드는 시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무상급식을 통해 복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한나라당까지 몇몇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시민의 지지도는 여전히 낮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시민들의 고통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매우 이상한 것이다. 이렇게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요구로부터 정치지형이 괴리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민들이 정치적 무력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70~80%의 시민이 원하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허가하는 법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국회와 정당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참여가 줄어들고 있다.

 

물론 최근 시민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당선시키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해서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개인적 역량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정당과 국회가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시민의 참여는 기대만큼 상승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시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논의하고, 제도로 만들기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논의와 다른 정치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제도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먼저 비례대표제를 확대함으로써 시민들의 작은 요구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신생 정당을 활성화해야 한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정당을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정당의 민주화도 자극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당이 쉽게 생겨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기존 정당 역시 내부의 소수 분파들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은 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자극하여 시민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현재 선거법을 국회의원들이 만드는 상황에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은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방식으로 될 수 없다.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의석 수준으로 늘이는 것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비례대표제 확대는 국회만이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필요하다. 물론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들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이 무능하고 부패하고 비생산적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고 그들이 낭비하고 있는 예산이 막대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를 견제하고 예산을 감시할 수 있는 의회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인구 5000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을 500명 가량 선출해도 결코 많지 않다. 국회의원 1명이 10만 명의 시민을 담당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400조 원 가량의 예산을 쓰고 있는데, 국회가 1조 원도 되지 않는 예산과 400명도 되지 않는 의원으로 행정부를 감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회의원 세비 아끼려다 행정부의 예산낭비를 막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시민사회가 나서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을 늘이는 것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1215104431&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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