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30]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

[시민정치시평 130]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
: 2012년을 보내며

김균 고려대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

   
미련하게도 아직 대선 충격에서 못 벗어나 마음이 편치 못하다. 더해서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막막하다. 그래도 또 이렇게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회한의 한 해를 놓지 못해 미적거리고 있는데, 자연의 정연함은 어김없이 가을 다음에 겨울을 데려다놓았고 오늘 이 혹한 속에도 이미 새로운 봄을 예비하고 있다.

2012년을 보내며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어찌 한 둘이랴마는 내게는 그 중에서도 대한문 앞에서 농성 중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처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쌍차 문제는 지금껏 해법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해법을 찾기 위한 절차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조차도 없다. 삶의 억울함과 캄캄함에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아무도 내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절망에서 한겨울 칼바람이 몰아치는 철탑 위로 쌍차 노동자들이 올라가는데도 우리 사회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지도, 풀어주지도 못하고 있다. 이는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여유를 부렸다가는 하루하루의 생존을 건 경쟁에서 패퇴하게 되는 경쟁사회의 비극 탓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함께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노동 문제를 사회적 갈등과 비용의 문제로만 접근하면서 생존권으로서의 노동 문제를 푸는 사회적/도덕적 규율과 제도적 방식을 스스로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 생존권 문제를 풀 수 있는 사회적 차원의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양대노총을 비롯해서 노조 일반은 무력화되었고, 노조대신 노동을 대변할 사회세력도, 정치세력도 보이지 않고, 노동권을 보장할 법제도는 부족하고 그나마 있어나 태반이 미완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제외한다면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의 나팔소리만 요란했지 노동은 이슈화되지 않았다. 쌍차 문제는 이러한 우리 사회 노동 문제의 핵심 과제와 맞닿아 있는, 그래서 풀기가 쉽지 않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의 아픔이다. 대선 이후 벌써 다섯 명의 노조원의 희생이 발생했다는 사실 역시 노동 문제 해결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에 올해 그나마 희망적 요소는 경제민주화 논의와 12월 1일의 협동조합법 발효였다. 정치개혁이 대선 후반 쟁점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양대 선거에서 양당 공약의 기조는 하나같이 경제민주화였다.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 논의는 정치적 공방 차원에서 산만하게 전개되어 그 개념정의도 모호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로 구현될 것인가도 불명확했다. 더구나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을 다음 정부가 실제로 실천할 지에 대해서도 일단은 회의적이다. 이런 내용적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가 당위적 과제로 부각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대단히 긍정적인 청신호이리라 싶다. IMF 위기이후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한국사회를 황폐화시켰다는 인식,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시장주의의 과잉 때문이라는 진단, 사람은 빵과 시장경쟁 만으로 살 수 없으며 공정과 형평의 가치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반성적 성찰 등. 이런 것들이 경제민주화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는 사회적 공감대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경제민주화 논의를 신자유주의시대가 저물었다는 증거라고 한다면, 다음 시대는 어떻게 펼쳐질까가 궁금해진다. 시장이 좀 더 순화되고 비시장적 가치와 제도들도 조금씩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될까? 삶의 질이 조금 나아질까? 이런 희망을 가져도 될까?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는 협동조합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경제민주화의 정신은 시장경쟁의 규율이 약자와 강자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게끔 하고 시장에서 패배했거나 뒤처진 사람들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사회가 뒤에서 등을 좀 밀어주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장경쟁의 날선 모서리를 부분적으로 가다듬고 순화시켜서 시장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의 사정도 같이 챙겨주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면,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경제 운동은 시장 바깥에 시장 요소가 침투할 수 없는 방벽을 친 자율적 경제영역을 만들어 시장의 압도적 공세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시도를 가리키다. 비유하자면 자동차가 횡행하는 대로를 벗어나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사회적 경제인 셈이다. 비록 협동조합이 시장의 대안은 아니지만 경제적 동기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장과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 시장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치는 자립, 협동, 민주주의, 지역 등과 같은 시민사회적 가치이며 이는 시장으로 인해 인간의 본래적 삶에서 배제된 공동체적 가치들이다. 앞으로 협동조합 만들기가 자유롭게 되더라도 시장 속에서 협동조합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장 요소의 침투를 경계하고, 국가나 제도에 기대지 않고 공동체적 가치를 스스로 방어하는 작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 압도당해 버릴 것이다. 이 점에서 협동조합 만들기는 가치 교육의 연속이고 시민사회 운동인 것이다. 오는 해에는 협동조합운동이 민들레 꽃씨처럼 온 세상에 퍼지기를 희망한다.

옛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역할을 맡았던 스칼렛의 마지막 대사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를 우리 세대는 ‘내일에는 내일의 바람이 분다’로 알고 있다. 이 오역(?)을 희망의 사족으로 덧붙인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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