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검찰개혁 2009-06-25   1752

[앗, 검찰에게 이런일이 3] “검찰은 스스로 자기혁신을 팽개쳤다”


‘사정의 칼’ ‘검찰총장의 직할부대’ ‘검찰의 꽃’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칭하는 세간의 말들입니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이 직접 지정하는 사건을 수사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일을 합니다. 그만큼 ‘크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다루는 곳이죠. 실제 중수부가 맡았던 사건들을 살펴보면 당시 가장 이슈가 되었던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권력층과 연관된 대형비리는 대부분 중수부가 수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검사들이 선망한다는 대검 중수부, 그러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소개드릴 기사는 1997년 6월 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당시 한보비리를 수사하던 중수부가 대통령 차남인 김현철 씨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자 거센 비판이 일었고, 결국 중수부장을 교체하는 일까지 있었지요. 그때에도 중수부 해체론이 대두되었다고 하네요.


중수부 ‘수사권’ 논란 (※ 내용 발췌)
[한겨레] 1997-06-16


중수부 ‘해체론’은 이번 사건 내내 시빗거리가 됐던 검찰의 정치적 독립 문제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논의의 진원지가 김기수 검찰총장이라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15일 검찰 고위 간부들에 따르면 김 총장은 지난 3월 당시 최병국 중수부장을 교체하고 난 뒤 “한보사건을 처음부터 서울지검이 맡았다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수시로 ‘중수부 직접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는 것이다.


대검의 다른 고위 관계자도 “일본에서 다나카 총리와 가네마루 총리를 잡아넣은 것은 최고 검찰청의 수사부가 아니라 도쿄지검 특수부였다”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장의 지휘로부터 한발짝만 벗어나도 검찰 수사가 정치적으로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현정부 출범 초기인 93년에 ‘21세기 기획단’에서 ‘21세기 검찰 발전구상’을 내놓으며 중수부 수사 체제에 대해 비판하는 등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비슷한 취지의 주장이 몇차례 나왔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



또 하나의 기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월간중앙 2001년 1월호에는 “검찰은 스스로 자기혁신을 평개쳤다”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는, 1999년 당시 기획예산위원회가 작성한 <법무부·검찰청 경영진단 보고서>가 검찰에 의해 무력화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검찰은 스스로 자기혁신을 팽개쳤다 (※ 내용 발췌)
[월간중앙] 2001년 1월호


어쩌다 국가권력의 마지막 보루라는 검찰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검찰 탓이다. 개혁을 외면한 검찰이 스스로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인 1998년 11월 당시 기획예산위원회(위원장 진념 현 재정경제부 장관)는 제2차 정부조직 개편을 위해 17개 중앙 행정부처에 대한 경영진단에 착수했다. 용역비만 45억여원이 든 대역사(大役事)였다.


당연히 법무부와 검찰도 포함됐다. 두 기관에 대한 경영진단 기관으로는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대우경제연구소가 선정됐다. 중앙 행정부처 경영진단 프로젝트는 각 부처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어서 비공개로 추진됐다. 보고서의 방향을 미리 알아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각 부처의 관료들과 이를 숨기려는 민간 경영진단팀 간에 숨바꼭질도 벌어졌다. 그리고 이듬해 3월 경영진단 보고서가 나왔다. <법무부·검찰청 경영진단 보고서>는 1999년 3월15일 기획예산위원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중간에 ‘실종’됐다.


다른 행정부처는 경영진단 보고서대로 제2차 조직개편 작업에 착수했는데, 법무부와 검찰은 열외였다. 조직적으로 저항했고 마침내 조직을 ‘보위’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고, 정부의 개혁 요구마저 조직의 힘으로 깔아뭉갠 검찰은 그 자체가 이미 권력기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검찰이 확보한 권한은 타 기관에든 민간에든 단 한개도 내어줄 수 없고, ‘자리’를 줄일 수도 없으며, 직급·호봉도 낮출 수 없다고 주장했고 마침내 이를 관철시켰다. (중략)

물론 보고서는 요즘 검찰 개혁과 관련해 거론되는 쟁점들에 대해서도 ‘대안’까지 제시해가며 주요하게 다뤘다. 그 제안을 요즘 검찰 개혁의 쟁점 위주로 요약하면 이렇다. ▷중립적 인사가 참여하는 검찰청 인사위원회 구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해체, 공직자조사비리처 신설 ▷대검찰청 축소, 지방검찰청 강화 등. 민감한 사안들을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당초 기획예산위원회에서 중앙 행정부처에 대한 경영진단 프로젝트를 발주한 배경 자체가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십상인 행정부부터 구조조정하겠다는 취지였다. (중략)

검찰은 <법무부·검찰청 경영진단 보고서>가 나오자 기민하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찰 특유의 조직 방어 기제가 순식간에 작동한 것이다. 철저한 구조조정과 환골탈태를 요구한 경영진단팀의 결론이 자신들이 원하던 방향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법원과의 형평성을 무기로 다른 행정부처와 달리 ‘독자적으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섰다. 검찰 개혁이 아니라 사법개혁으로 전선을 확장시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박상천 법무장관이 총대를 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의 전략은 성공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의 대상에서 법무부와 검찰만 떼어내 사법개혁 차원에서 조직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조직이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김영준 전 감사원장·이하 사개추로 약칭함)다. 사개추는 1999년 12월21일 사법개혁안 최종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개추의 권고는 검찰 손으로 넘어가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기사는 “흥미로운 것은 검찰이 개혁을 요구하는 경영진단 보고서를 발로 걷어찰 즈음, 역설적이게도 검찰 위기의 싹이 쑥쑥 자라났다는 사실”이라는 말로 뒤를 잇습니다. 대전법조비리 사건으로 시작하여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항명사태, 소장파 검사들의 집단반발로 발전한 ‘검란’이 터졌고, 사상 최초로 특별검사제도을 수용해야 했습니다(옷로비 사건,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으로 김태정 법무장관, 박주선 청와대 법률비서관, 진형구 대검공안부장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검찰개혁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중수부 폐지, 상설특검, 재정신청제도 확대,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 등, 이미 다양한 방식의 개혁안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지금 또 한번의 기회를 놓친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 시리즈 기사 목록
[앗, 검찰에게 이런 일이 1] 대통령 전화 받고 수사한 대검 중수부
[앗, 검찰에게 이런 일이 2] 대검 중수부의 굴욕, 97년 한보그룹사건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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