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 2026-07-02   43611

[시민평화포럼 논평] 상대를 인정하는 첫 걸음, 국호 호명

적대적 두 국가를 넘어 평화공존의 두 국가관계로

한반도는 정전협정 체결 73년이 다되도록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북관계는 교류와 적대 사이를 출렁이며 반복해 왔다. 2023년 말 북측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웠고, 올해는 헌법에 영토조항을 새로 넣었으며, 당규약에서 민족과 통일의 언어를 걷어내고 남측을 ‘대한민국’으로 호명한 바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한반도 평화공존과 상호존중을 위한 선언’이 제기되고, 남과 북이 서로를 각자의 공식 국호, 곧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있다. 오늘(7/2) 7대 종단의 원로 지도자들이 함께 하는 한국종교지도자원로회의는 ‘한반도 평화공존과 상호존중 선언’을 발표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한의 공식 국호를 존중해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도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통해 북측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을 3대 원칙으로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이 선언의 취지에 지지를 보내며, 서로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데서 평화공존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

서로의 국호를 부르는 문제에 주목하는 까닭은, ‘무엇이라 부르는가’가 곧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하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안정적 평화공존이 성립하는 출발점은 상대를 부정하거나 흡수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체를 그대로 인정하는 실체적 상호인정에 있다. 서로를 정식 국호로 호명하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가장 분명한 상징적 행위이다. ‘북한’이라는 방위(方位) 중심의 호명이 통일을 앞당기거나 분단을 완화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는 상대를 비가시화하고 대결과 분단의 구조를 되풀이하는 데 기여해 온 측면이 크다. 남측이 북측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존중하고 적대를 넘어선 관계의 가능성을 먼저 열어 보이기 위해서다. 이 호명은 닫힌 문을 여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정식 국호를 부르는 일이 곧 북한의 두 국가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상대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분단을 영구히 굳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 인정은 오히려 적대로 굳어 버린 관계를 평화로운 공존으로 바꾸고, 흡수가 아니라 두 국가가 나란히 협력을 쌓아 가는 남북연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우리가 끊어내려는 것은 분단의 현실이 아니라 서로를 부정하며 반복해온 대결의 관성이다.

이러한 상호인정은 난데없는 파격이 아니라 남북이 이미 밟아 온 역사 위에 있다. 남과 북은 1991년 함께 유엔에 가입했고, 정상회담 합의문을 비롯한 여러 문서에서 서로의 공식 국호를 쓴 전례도 있다. 헌법의 영토조항은 흡수의 근거가 아니라 실효적 관할이 미치는 범위를 전제한 규정으로 평화통일조항과 조화롭게 읽힐 수 있으며, 국제법에서도 국호를 부르는 일이 곧 국가승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서로의 이름을 애써 피하던 동·서독이 1972년 기본조약을 계기로 각자의 국호를 공식적으로 쓰며 긴장 완화의 물꼬를 텄듯이, 우리가 서로를 제 이름으로 부르는 일도 남북관계기본법과 남북기본조약으로 이어져 낡은 적대의 법제도를 공존에 맞게 고쳐 가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는 우리 사회 내 진영 사이의 다툼거리로 소비될 것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와 숙의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평화공존은 남과 북이 마주 앉아 푸는 과제인 동시에, 그 합의를 우리 사회가 흔들림 없이 이어갈 수 있느냐에 달린 과제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뒤집히고 어렵게 이룬 합의가 손쉽게 번복되어 온 지난 경험은, 평화공존의 지속가능성이 결국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합의에 뿌리내려야 함을 일러 준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호 호칭 문제를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공감대를 넓히는 열린 대화의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며, 이 변화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조치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존중해 부르는 상호주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일은 사소한 형식이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태도의 근본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로의 이름을 존중하며 부를 때, 우리는 대결로 얼룩진 지난 80년을 넘어 평화공존의 새로운 관계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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