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의 현재와 미래
박종익 l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인”이란 영화 이후에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일반인들은 보통 헌법을 잘 읽어보진 않지만 여기에는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대하여 잘 적혀져 있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 제2항은 보다 구체적으로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性的) 지향, 병력(病歷)을 이유로 한” 일정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정신보건법 제3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신질환자는 “정신병․ 인격장애․ 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 정신장애를 가진 자”로 정의하고 있다.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18세 이상 74세 이하 성인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27.6%로 우리나라 국민의 1/4이 넘는 사람이 소위 “정신질환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손보험가입에 대한 차별은 물론 여전히 거의 모든 영역에서 분명하게 혹은 암묵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이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수용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는 물론이고 거주이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 등이 치료라는 명목 하에 자주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에 근거하지만 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이 점점 그들을 경원시하고 소외시키는 분리정책으로 이어져 온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처음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야 우리나라는 비로소 정신보건에 대하여 국가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용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미허가시설에 불법적인 입원이 성행했고, 입원한 이후에 면회나 통신을 무조건적으로 제한해서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경우가 종종 발생했으며, 일단 입원하면 십 년 이상씩 갇혀있는 경우도 허다했고, 입원 이후에 강제노역이나 구타 등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는 시설도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거의 법의 사각지대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신보건법의 제정으로 인하여 그나마 입퇴원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기준은 만들어진 셈이며, 헌법에 보장된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선언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행해지는 입퇴원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치료에 대한 결정권을 조금씩 인정하는 방향으로는 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도 정신보건정책이 어느 정도 탈원화를 통한 지역사회로의 통합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정신보건법 제4조 제2항에 의하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질환의 예방과 치료 및 재활을 위하여 정신보건센터와 정신보건시설을 연계하는 정신보건서비스전달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그동안의 수용정책에서 벗어나 탈원화를 통한 지역사회로의 복귀를 활성화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실제로 2014년 현재 전국에 있는 정신보건센터의 수는 200여개로 양적인 성장을 한 것은 분명하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사회 정신보건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들이 퇴원 이후에 지역사회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림 1>은 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신보건법의 제정 이후에 오히려 3배가 넘게 정신병상의 수가 증가했는데, 일부 비인가시설이나 요양시설이 정신병원으로 양성화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말하면 정신보건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요양원과 같은 미인가 시설의 양성화, 정신보건법상 최소 의료인 수의 강제화, 유명무실한 처벌조항의 현실적인 한계 등이 오히려 정신병상의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지난 10여 년간 정신과 병상 수는 매우 빠르게 증가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병상수의 증가는 왜 발생한 것인가?
여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혼재되어 있다. 일단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는 7가지 질환에 대하여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행위별 수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을 위하여 전체국민의 3%에게 의료급여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의료급여는 1종과 2종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종은 본인부담금이 전혀 없이 일부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만 환자가 지불하면 된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 의료급여는 유일하게 일당정액제 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일당정액제는 제공된 서비스와는 전혀 무관하게 하루에 1인당 얼마씩 지불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정신장애인은 의료급여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기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보험환자와 비교했을 때 65% 정도의 수가에 해당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급여 환자는 서비스제공의 차별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부담금이 없다는 혜택이 정신과 환자의 경우에 장기입원의 비율을 증가시키고, 퇴원한 이후 다시 재입원하는 악결과를 유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집에서 직접 돌보아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되고 사립정신병원은 오랫동안 입원시킬수록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공모적인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환자의 의지에 반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으며, 불필요한 병상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 측면이 생긴 것이다.
병상의 증가는 주로 민간이 운영하는 사립정신병상의 폭발적인 증가에 기인하고 있다. 최근 의료기관인증제의 의무화와 의료급여적정성 평가 등의 도입으로 인하여 정신병상 운영으로 인한 경제적 유인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그동안 정신병원의 신설이 돈이 되는 장사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울러 장기입원을 억제하기 위한 정신보건심판위원회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퇴원한 환자들의 상당수도 다시 재입원을 하는 소위 ‘회전문 현상’이 병상증가에 기여한 바가 크다. 결국 병상수의 증가는 만성정신장애인들의 입원을 계속적으로 조장하게 되면서 소위 ‘수용화증후군’이란 부작용을 확산시키고 회복에 대한 의지를 약화시키면서 장기입원을 가속화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림 2>는 정신보건법의 제정 이후에도 평균재원기간이 별로 줄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사회로의 복귀가 가장 빨리 회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수많은 외국의 연구결과에 역행하는 장기입원이 일반화되면서 정신장애인의 인권침해는 필연적인 부산물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의 평균 입원일수는 평균 251일이며(정신요양시설의 경우 3,539일), 시설 유형에 따라 66~267일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최근 몇 년간 오히려 더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평균 재원기간이 10~35일 수준인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따라서 정신장애인들의 사회적 역할수행을 구조적으로 저해하는 장기입원은 그들의 인권실현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며, 탈수용화와 지역사회 정신보건 서비스의 도입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기입원 및 수용위주의 서비스체계를 조장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기입원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외국의 선행연구에 의하면 재원일수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은 수 십 가지에 이르나 평가방법이나 적용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요인상호간의 작용으로 인하여 일관된 결과를 도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2008년 장기입원과 관련된 인권위원회 보고서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신의료시설의 종류 및 의료보장의 형태였다. 즉 대학병원에 비해서는 정신병원이, 국립정신병원보다는 사립정신병원이 더 재원기간이 길었으며, 의료보험보다는 의료급여 1종이 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시 말하면 임상적인 중증성과는 무관하게 경제적인 요인에 의하여 장기입원이 결정되고 있었으며, 이는 정부의 정신보건정책이 수용위주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정신보건정책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그동안 수많은 학자나 인권옹호자들은 장기입원을 지양하고 지역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외국의 정신보건정책을 보면 총론적으로 당연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서 보자면 정부가 이런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거나 못하는 이유를 보다 미시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정신장애인의 장기입원에서 지역사회 서비스로의 전환은 어느 한두 가지의 요인을 개선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점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인가?
첫째 제도 혹은 시스템적인 요인이다. 호주나 이탈리아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성공적인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지방자치제도가 이미 잘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각 지방에 가장 적합한 지역사회 정신보건 시스템이 재정적인 뒷받침과 맞물려서 효과적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반면 우리나라처럼 중앙집권체계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재정이나 의료비 지불제도 또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체계가 어느 정도 유기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지금의 지역사회체계로는 탈원화가 이루어지더라도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에 너무나도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각 시군구에 한 개씩 있는 정신보건센터가 중앙정부가 50%의 재정을 지원하는 유일한 지역사회재원이다. 지방정부의 허약한 재정을 감안할 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의 배정을 통하여 탈원화를 위한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인 요인이다. 보건경제학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시장경제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특수한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여전히 수요와 공급은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이다. 특히 한국처럼 정신병상의 상당수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민간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으며, 건강보험의 경우에 상당한 자기부담금을 내야하는 독특한 의료비지불체계를 가진 나라에서는 시장경제의 원칙이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공급자는 최대한의 이익을 얻고자 할 것이고, 소비자는 최소한의 지출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신병상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문제는 시장의 운영메카니즘이 환자를 짧은 시간 내에 빨리 회복시켜서 퇴원시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정신병원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되 가능하면 신속히 회복되지 않고 오래 병원에 머무는 것이 최대한의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점이 바로 장기입원의 중요한 유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신보건 서비스의 질적인 저하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게 되며, 의료급여 지불제도의 일당정액제 하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가족의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대가 환자가 점점 만성화되면서 차츰 체념으로 바뀌게 되는데 입퇴원이 반복되고 사회 적응에 실패하게 되면 결국은 병원에 그냥 두는 것이 비용효과적으로 가장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것 역시 무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장기입원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현재 주어진 제도적 하에 최선은 아닐지라도 불가피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정신보건 서비스는 입원치료보다 비용효과면에서 우위에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혹은 형이상학적인 요인이다. 누구나 차별의 타파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님비(Nimby)현상으로 인하여 보호관찰소나 치료감호소를 지을 수 있는 곳은 한국땅 어디에도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은 차별 속의 차별을 당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이나 정서적인 만족감 같은 간접 혹은 무형의 비용이 국가의 정신보건정책에서 중요한 요소로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아울러 장기입원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인식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는 정부가 해야 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참고문헌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보고서. 보건복지부. 2012.
OECD Policy Brief. OECD. 2008.
최정규, 장홍석, 이명수, 홍진표, 박종익. 국내 정신보건시설의 재원기관과 관련된 정신사회적 요인. 신경정신의학 2013.
WWeisbrod BA, Test MA, Stein LI. Alternative to mental hospital treatment. II. Economic benefit-cost analysis. Arch Gen Psychiatry 1980.
월간 <복지동향> 2014년 6월호(제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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