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글 :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자격이 있는 사회
김보영 l 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아무 죄 없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이 몇 달 동안 가슴아파한 것은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집단적 책임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해결되기 보다는 그대로 묻어버리려는 사람들에 이해 잊힐 위험에 처해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비단 이 사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태어나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 커야할 아이들이 방임이 되거나 학대를 받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과 대책은 요원하기만 하다.
최근에는 특히 한 TV 프로그램에서 집중 조명하여 국민적 공분을 낳았던 이른바 ‘칠곡 아동학대 사건’이 있었다. 9살 여자 어린이가 자신의 부모의 폭행으로 사망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친언니에게 자신이 폭행했다는 거짓진술을 시켜 소년법원까지 인계되었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또 울산에서는 8살 아이가 수년 동안 폭행을 당해오다가 소풍을 가고 싶다고 했다가 또다시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사건들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오히려 그 다음이었다. 이러한 비극 뒤에도 무엇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도 없었고, 그러기에 근본적인 대책도 수립되지 않았다. 신고의무와 처벌을 강화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었지만 정작 이동학대에 개입해야 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에 50개에 불과하고 상담원 1인당 거의 100건 정도의 사례를 관리하는 현실이다. 피해아동을 보호할 시설도 부족해 도로 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부족한 인프라는 그대로인 채 신고의무와 처벌만 강화한 대책으로 벌써부터 그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다.
이러한 겉핥기식의 대책은 영국 유학시절 보았던 영국의 사례와 정말 대조가 되었다. 2003년, 영국은 아동과 관련하여 10년만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모든 아이는 중요합니다(Every Child Matters)’라는 개혁정책이 출범하였다. 2004년 아동법(Children Act 2004)로 법제화된 이 개혁은 영국의 모든 아동들이 어떠한 배경과 환경에서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즐기며 성취하고, 긍정적인 기여를 하며, 경제적인 북리(well-being)를 성취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이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학교, 아동센터, 아동복지기관, 보건의료기관 등이 지역사회에서 협력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구축하였다. 이 개혁은 정부가 바뀐 지금도 방향만 수정된 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대대적인 개혁은 2000년 2월, 빅토리아 클림비(Victoia Climbie)라는 코르티부아르 출신의 9살 여자아이가 자신의 고모할머니와 그의 남자친구의 학대로 인하여 128건의 상처를 안은 채 죽음에 이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큰 충격에 빠진 영국에서는 가해자들을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으로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은 물론 2001년 4월, 독립적이면서 영국 최초로 광범위한 조사권을 부여한 공공조사(Public Inquiry)를 발족시켰다. 2년 가까이 진행된 이 공공조사는 보고서를 통해 4개의 런던 구의회 사회서비스국과 2개의 경찰서, 두 개의 병원, 그리고 한 개의 특수아동기관이 관여된 이 사건에서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12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어떻게 실패하였는가를 세세하게 밝혀내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대적인 아동정책 개혁이 추진된 것이었다. 한 아이의 비극적 죽음이 영국 아동정책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아이의 비극적인 죽음이 이어졌고,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그러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겠지만 어떻게 막을 수 있었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한 바 없이 그저 신고의무와 처벌만 강화한 게 전부일 뿐이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학대하던 부모가 마음을 바꿀 리는 없으며 인프라가 태부족한 상태에서 신고의무만 강화한다고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과연 우리 정부가 이런 비극을 근본적으로 막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영국 유학시절 아이를 낳았을 때 몇 주간 간호사가 우리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였다. 그 간호사가 아이에게 여러 가지 검진과 예방접종을 해주면서 이리저리 아이의 몸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집안 환경을 유심히 살피고, 수유 횟수와 심지어 심리적 상태, 부부간 관계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불쾌할 수도 있었지만 사회정책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내 이것이 이들의 촘촘한 아동보호제도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영국이 그렇다고 대단한 아동복지국가도 아니다. 2007년, 유니세프(UNICEF) 보고서에서 선진국 중 영국이 아동복지 최하위국가로 발표해 영국에서 큰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그 나라의 아동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이를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세계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사회의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과연 우리사회는 우리의 다음세대를 이어갈 자격이 있는 사회인가. 이번 복지동향에서는 이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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