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로부터 12년, 재난참사와 산업재해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낸 「생명안전기본법」이 2026년 6월 2일 공포되어 오는 12월 3일 시행됩니다. 이 법은 일상과 일터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 곧 안전권을 모든 사람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안전 정책을 사후 수습에서 예방과 권리 보장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질지는 시행령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고가 안전사고에 포함되는지, 누가 안전약자로 보호받는지, 어떤 법령과 사업이 안전영향평가를 받는지, 기업은 어디까지 책임지는지, 그리고 안전에 관한 정보를 시민이 어떻게 알고 정책 결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 모두의 안전을 좌우할 핵심 사항 상당수가 대통령령에 위임되어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9월 23일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법 시행까지 남은 기간은 두 달 남짓이며, 입법예고 기간은 시민 누구나 공식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공개 창구입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6조제2항도 안전 관련 법령을 만들 때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인 참여와 안전 정보접근을 차별 없이 보장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9월 30일(수) 오전 10시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법예고안에 대한평가와 함께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안전권, 예방하는 국가, 책임지는 국가와 기업,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 독립적 조사를 담은 시행령을 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 기자회견문
모두의 생명과 안전, 국가의 책임이다!
생명안전기본법의 취지를 온전히 담은 시행령을 제정하라
참사는 반복되어 왔다. 우리는 가슴 아픈 참사를 겪었고, 일터에서 쓰러진 죽음을 수없이 보았다. 그때마다 사회는 멈춰 서서 애도했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다고, 규정은 지켜졌다고, 책임질 사람은 없다고. 그리고 또 다시 참사로 인한 죽음이 뒤따랐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끝까지 밝히지 않았기에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바뀌지 않은 자리에서 다음 참사가 일어났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그 말이 더는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법의 취지는 분명하다. 안전하게 살 권리를 모든 사람의 기본권으로 세우고, 국가와 기업에 그 권리를 보장할 책무를 지우는 것이다. 사고가 난 뒤에 수습하는 사회에서 사고를 막는 사회로 가는 것이다. 참사의 진실을 독립적으로 밝히고, 피해자가 그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2년 동안 거리에서, 광장에서, 국회 앞에서, 서명대와 토론회 자리에서 시민들이 한 줄 한 줄 쌓아 올린 뜻이 바로 그것이다.
법이 선언한 권리를 현장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시행령이고, 법이 보장한 권리를 구체화할 수는 있어도 줄일 수는 없다. 그러나 입법예고된 시행령안에는 법이 열어 둔 문을 좁히려는 대목이 적지 않다. 사망과 실종을 초래한 사고만 안전사고로 보아 크게 다치고 살아남은 사람을 법 바깥에 두고, 목격자에게는 “현저한” 피해를 요구하며, 안전약자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세 단어에 갇혔다. 정보는 “요청하면” 준다고 하면서 정보공개법의 비공개 사유를 그대로 끌어왔다. 이대로라면 법은 선언에 머물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몇 개의 문구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 법의 취지대로 시행령을 만들라는 것이다. 안전권이 모든 사람의 권리라면, 피해자와 안전약자의 범위는 사람을 걸러 내는 체가 아니라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그릇이어야 한다. 한국어 안내방송을 알아듣지 못한 이주노동자도, 보호자 없이 혼자 있던 청소년도, 스스로 시설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사람도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국적과 체류자격은 안전권의 자격 심사가 될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의 책무가 이 법의 기둥이라면, 기업의 범위에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사고는 도급과 위탁으로 이어진 사슬의 맨 끝에서 일어난다. 원·하청과 협력업체, 위탁운영자, 다중이용업소 운영자, 플랫폼사업자, 소상공인도 모두 그 책임 안에 들어와야 한다. 예방이 이 법의 목적이라면, 안전관련기준은 기술적 관리의 목록이 아니라 안전권 보장의 조건이어야 한다. 안전지수에는 안전약자가 놓인 위험과 대피 여건이 담겨야 하고, 안전영향평가의 결과와 이행계획은 공개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는 우리가 열망해온 독립적, 상설조사기구이다. 이전 정부의 25개 조사기구와는 위상이 달라야 한다. 조사위원회가 안전사고와 관련한 책임있게 조사하여 안전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사역량을 축적하고, 전문성을 확보한 위에 법이 예정한 역할을 충분히 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독립적인 조사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시행령으로 확보해야 한다.
진실을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가 이 법의 약속이라면, 정보는 묻기 전에 먼저 주어져야 한다. 조사의 진행상황과 원인에 관한 정보는 청구가 없어도 제공되어야 하고, 국민생명안전위원회와 생명안전종합계획에도 피해자와 시민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부터 그러해야 한다. 입법예고 기간에 노동자와 안전약자, 지역주민과 피해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제출된 의견의 처리 결과와 반영 사유를 공개하라.
시행령은 대통령령이다. 국민생명안전위원회의 위원장도 대통령이다. 정부는 법을 공포하며 후속 조치에 철저를 기하겠다던 약속이 시행령에서 좁아지지 않도록 손봐야 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시민들이 만든 법이다. 입법예고 기간에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시행령에 반영하기 위하여 정부와 꾸준히 협의해 갈 것이다. 우리는 시행령이 법의 취지를 온전히 담을 수 있게 마지막 순간까지 시민들과 함께 행동할 것이다.
2026년 9월 30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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