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지역균형발전 빙자한 재벌 규제완화 소원수리법, 초광역특구법 철회하라
기본 법제와 공공성·사회적 합의 허문다면 지방균형발전도 요원
재벌 특혜부터 노동·주거·의료·환경 규제완화 총망라
정부여당은 어제(10/20), 3대 메가프로젝트를 뒷받침할 입법으로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초광역특구법안)」을 발의했다. 초광역특구법안에는 지역균형발전과 전략산업육성을 명분으로 노동시간, 지주회사 규제 완화부터 영리병원 설립의 법적 근거 마련, 주택공급·환경영향평가 규제 완화까지 방대한 특례가 담겼다. 그동안 사회적 논란으로 제동이 걸렸던 규제완화 과제들을 총망라해 특구라는 이름 아래 한꺼번에 허용하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 재벌과 기업을 위한 규제완화 소원수리법이다. 특정 재벌의 투자 편의를 위해 경제력 집중 억제 장치를 허물고 영리병원 허용을 비롯해 노동·주거·의료·기후환경 분야의 법적 규율까지 후퇴시키는 입법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참여연대는 정부여당이 초광역특구법을 철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담은 입법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
초광역특구법안은 성격도 목적도 다른 법률의 예외를 하나의 특구법에 쌓아 올렸다. 이 법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 법제와 사회적 원칙을 기업의 필요에 따라 골라 적용할 수 있는 ‘예외’로 취급한다는 데 있다.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지주회사 규제부터 노동시간 제한, 주택공급 원칙, 의료기관 개설 요건, 환경 규제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입법취지와 사회적 논의를 거쳐 마련된 제도들이 이 법안에서는 모두 산업 육성을 위해 완화하거나 배제할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각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와 예외를 허용할 때 발생할 문제를 충분히 따지기보다 특구지정과 투자 촉진을 앞세운 방식이다. 특구라는 이름만 붙이면 법적 원칙과 사회적 합의마저 비켜 가며 기업이 요구하는 예외를 끝없이 늘려 특구를 ‘규제 무법천지’로 만들 셈인가. 특구 지정과 관련해 지역에 필요한 지원은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유치를 위해 다른 법률의 절차나 기준까지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초광역특구법안은 관계기관 의견조회나 환경영향평가 등 필수적인 검토 절차를 지나치게 단축하여 사업의 졸속 추진을 부추긴다. 신청권자인 지방자치단체가 특구 계획을 수립할 때 관계기관의 의견을 듣지 않고 곧바로 주민 공청회를 실시하도록 하고, 관계기관에는 특구계획 검토와 의견 제출에 단 15일만 부여한다. 전략환경영향평가나 재해영향평가 등 별도 협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협의기간을 충분히 두지 않고 연장 규정조차 두지 않았다. 지역사회와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개발사업을 이처럼 서둘러 추진해서는 안 된다.
특정 재벌을 위한 맞춤형 특례는 초광역특구법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초광역특구법안은 일정한 요건에서 지주회사 손자회사가 설립하는 증손회사의 지분 보유 의무를 100%에서 50% 이상으로 낮추고, 금융리스업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에도 예외를 둔다. 여기에 공적 기금의 출자까지 결합한다. 특정 재벌의 반도체 투자에 맞춰 경제력 집중 억제 장치를 풀어주고 투자 위험까지 공적 자금으로 나눠 부담하는 구조로 명백한 특혜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특정 투자구조에 맞춘 법률상 특례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그동안 의료영리화를 비롯하여 국민 건강을 손상할 우려가 있어 추진되지 못했던 규제 완화 과제를 총망라하여 담았다. 시행령을 통해 의료기관 개설 주체를 달리할 수 있도록 하여 영리법인의 병원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의료광고, 첨단재생의료, 의료기기 허가·심사에 관한 특례 등 초광역특구의 보건의료 기반을 조성한다기보다는 ‘보건의료 규제완화 특구’를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동안 의료 공공성 훼손과 환자 안전 문제로 제동이 걸렸던 정책들을 지역산업 장려의 명분 아래 숨겨 다시 추진하려는 것이다. 국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산업정책에 대한 찬반 이전에, 특구에서 일하고 살아갈 사람들의 건강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특례는 정당화될 수 없다.
노동 분야에서도 그동안 노동·시민사회가 반대해 온 규제완화 과제를 대거 포함시켰다. 일정한 고소득 관리·전문직 노동자에게 노동시간·휴게·휴일 등에 관한 특례를 적용하고, 근로시간 정산기간을 확대하며,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최대 4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거부동산 분야에서도 기존 주민의 권리와 주거 수요는 뒷전이다. 특구 개발에 따른 대규모 이주가 예상되는데도 갈등 소지가 많은 이주대책에 관한 사항에 관한 규정은 없고, 주택법상 공급 규정을 배제하면서 대체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사업시행자도 아닌 특구기관(토지수요자)에 토지수용권까지 부여해 제멋대로 토지수용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문제다. 특구의 정주 환경 개선을 내세우지만, 특구에 새로 들어올 기업 종사자들의 주택이나 생활 기반 시설 수요에만 우선순위를 부여할 가능성이 높고 기존 원주민이나 인근 지역의 주거환경 및 생활기반 시설 개선, 지역 주민의 공공임대주택 등 공공주택 수요 해결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권을 후퇴시키고 원주민의 삶을 밀어내고 주택공급과 토지수용에 관한 규제 완화만 앞세우는 것이 대체 누구를 위한 지역발전인가.
덧붙여, 반도체 및 AI 분야에 치우친 국가 정책 방향과 기조 자체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은 AI 등 첨단산업에서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동시에 AI 기술이 가져올 노동시장의 변화와 일자리 위협, 알고리즘 편향과 통제 없는 개인정보 활용, 인간 통제 실패에 대한 우려까지 함께 갖고 있다. 반도체·AI 산업이 몸집만 부풀린 양적 팽창된 상황에서 과잉투자와 시장 변동이 산업과 금융 전반에 미칠 위험도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초광역특구법안은 기업에 각종 규제완화와 재정·세제 혜택을 쏟아부으면서도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시민들의 노동권과 안전, 공공성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의료법이 제한하는 부대사업을 더 열어주고,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유해화학물질 이름을 가려주고, 화장품의 성분과 용량 기재를 생략해주고, 살아있는 동물의 세포를 채취해 동물 학대를 허용하는 것이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지역이 발전하고 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길인가. 기본 법제와 공공성, 사회적 합의와 원칙 훼손하는 초광역특별법 철회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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