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11-15   875

[복지동향 169호] 편집인의 글

 

2012년, ‘우리들의 죽음’

 

주은선ㅣ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중략…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

 

1990년 방에서 화재로 죽은 어린 아이들을 기리며 정태춘 씨가 만들었던 ‘우리들의 죽음’이란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 추운 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많은 이들이 그 노래를 들으며, 그 아이들을 추모하며 가슴 깊이 울음을 삼킨 적이 있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일어나는 이곳이 절대로,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돌아가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2012년 동생을 돌보던 아이는 집에 화재가 나서 세상을 떠났다. 동생을 책임지고 있던 그 아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가 있는 동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는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미처 세상을 원망할만큼 자라지도 못한 그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간절하게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숨 쉴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을까?

 

도돌이표처럼 무고한 죽음이 다시 음표처럼 선명하게 찍힌다. 불과 얼마 전에 작은 화재로 장애인이 집에서 사망한 사건과 함께 그 진동은 더욱 크다. 뉴스는 과거의 일이 되어 묻히지만, 이 죽음(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이 죽음(들)은 묻는다. 당신은 무얼 했냐고.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이냐고. 정치건, 경제건 그 동안 한국 사회를 이끌고 왔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 안팎에서 한국 사회복지를 주도했다고 하는 실천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복지를 연구하고, 복지국가를 말하는 사람들도.

 

이번 호 복지동향은 복지예산에 대해 다룬다. 복지예산은 한 사회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연대적으로 자원을 투여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창이다. 이 투명한 창으로 들여다 본 현실은 과거와 다름 없다. 부끄럽다. 분야별 복지예산에 대한 진단을 보면, 한국이란 국가는 아이들에게, 노인들에게, 장애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자 자녀들인 자들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명확하다. 국민건강보다는 보건의료산업 육성이 예산의 초점이고, 전가의 보도가 된 ‘자활’의 논리가 빈곤층이건 장애인이건 가리지 않고 예산 편성에도 드러나 있으며, 소위 중산층이 무너지고 다시 대중이 빈곤한 시대에 기초보장 대상자 수는 오히려 줄었다. 10명 중 4.5명의 노인이 빈곤한 이곳에서 기초노령연금 급여는 몇 년째 제자리이다. 아동예산 역시 돌봄은 될 수 있으면 가정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가능한 한 사회적 지원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에 지배받고 있다. 시민이자 사람으로서의 삶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결여, 죽음에 대한 무감각은 여전히 ‘돈’에 관한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이건 사실 국가의 성격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자신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두 개의 죽음, 그리고 지나간 수많은 죽음들과 함께 답보 상태인, 심지어 거꾸로 줄어들기조차 하는 복지 예산들은 함께 살펴본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생존’이 아닌 삶을 보장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한 연대를 형성하는데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지, 복지를 ‘비용’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돈의 논리만으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가사의 마지막은 이렇다.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나도 이 말만은 그 분들에게 꼭 해드리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건 우리의 잘못입니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11월호(제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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