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02-10   1936

생산적 복지정책의 과제

지난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발표된 생산적 복지 선언은 그동안 '생산'에 중점을 두는가 아니면 '복지'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다. 따라서 지난해 11월에 '삶의 질 향상 기획단'에서 발간한《천년을 향한 생산적 복지의 길》(DJ Welfarsim)에서 '생산'에 중점을 두는 생산적 복지정책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생산적 복지를 구성하는 세가지 축으로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통한 분배, 국가에 의한 재분배적 복지 그리고 자활을 위한 사회적 투자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시혜적인 복지로부터 탈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생산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방안과 실행계획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정치적 구호로 그친 복지정책 발표와 같은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논쟁보다 안정적인 복지재원의 확보와 복지제도의 효율화를 통한 사회복지의 실질적인 확충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계층과 경제위기 이후 실업과 빈곤의 위기에 처해 있는 계층에 대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보호대책을 생산적 복지의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 비용효과인 실업대책과 빈곤대책 나아가 사회복지정책을 지속적이고 일관성있게 모색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생산적 복지를 실효성있도록 추진하기 위한 핵심과제는 복지재원의 확충과 복지제도의 내실화로 요약된다. 또한 복지제도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우선 실업대책의 재정비와 국민기초생활보장에 생산적 복지철학을 실천하는 구체적 정책개발 그리고 사회보험제도의 개혁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복지재정 확충

생산적 복지의 성공적인 추진을 통해 기존복지제도의 낭비적 요인을 제거하고 효율화를 추진하더라도 우리의 복지수준은 여전히 저조하다는 점에서 복지재정의 확충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외환위기 결과 커져가고 있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줄여나가는 가운데 복지재원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재원조달의 기본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기초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되 정책의 장기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기본원칙하에서 일관된 사회복지정책을 수행함으로써 안정된 재정구조하에 최대의 복지서비스 공급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우선 경제성장단계별로 적합한 복지재정 규모를 설정하고 이를 각 복지부문별로 추정된 재정수요에 배분하되 우선순위별로 재원배분을 하는 거시적인 기본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거시적 재원조달의 기본원칙과 함께 다음과 같은 미시적 재원조달의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재원조달의 기존사고의 틀을 탈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재원조달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기존의 복지제도 운용에서 지출의 효율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각 사회복지부문별 중복지출 요인을 제거하고 통합운영을 통한 지출감소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보험제도에서는 보험요소를 적극 도입하기 위해 급부를 갹출에 연계하여 정부의 재정지원을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정부는 기초보장을 담당하고 추가적인 보장은 보험요소를 도입하거나 사회보험제도에 부분적으로 민간화(priatization)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요구된다. 아울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기능 및 재정의 배분을 재검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조세정의 실현을 통한 복지재원의 확충방안을 좀더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DJ Welfarism 자료에서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각종 세제개편 방안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만 이를 복지재정 확충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과표양성화를 통한 세수증가를 막연히 복지재원 확충에 활용한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는 재정이론상 바람직하지도 않고 실현가능성도 없다. 과표양성화를 통한 재원을 복지지출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목적세가 갖는 재정의 경직성을 초래하고 아울러 과표양성화를 통해 추가적으로 마련된 세수입의 증대를 측정한다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과표양성화를 통한 복지재정의 확충은 자영자의 소득파악을 통한 국민연금제도의 재정건전화와 사업장가입자의 불이익 축소를 통해 다소 실현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정도이다. 세제개편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으로 조세제도와 복지제도의 정책혼합(policy mix)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업대책과 복지대책의 조화

근로의욕과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일을 통한 복지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생산적 복지의 기본방향에는 부합한다. 그러나 공공근로사업이 무조건 일을 통한 복지라고 간주하여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좀더 근본적으로 실업대책과 사회복지대책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업대책은 실업자의 고용가능성을 높이는 교육과 훈련, 고용창출 그리고 일자리와 실업자를 연결하는 정보망의 확충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지대책은 실업여부에 관계없이 기초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모든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실업자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업자에게 우선적으로 지원을 제공한다면 형평을 잃게 된다.

그동안 실업대책으로 마련된 재원은 일단 마련해 놓고 나서 어디에 쓸 것인가를 생각할 정도로 낭비요인이 컸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각종 실업대책 사업별로 지출소요를 면밀히 조사하여 지출규모를 결정하고 이를 위한 재원확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확보한 재원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 것인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각종 제도 중에서 실업대책으로 활용가능한 것이 있는지, 만일 있다면 어떻게 실업대책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과정도 요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동안 확보된 재원의 상당부분은 실업대책보다 사회안전망 구축에 사용되어야 한다.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예산에 현재 마련된 실업대책예산의 상당부분을 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실업으로부터 생계곤란의 고통을 받는 저소득 근로계층을 위해 생활보호대상자의 자격요건을 완화하거나 공적부조 수혜액을 상향조정하여 지원함으로써 사회복지체제 내에 실업대책을 흡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실업으로 궁극적으로 겪게 되는 생계곤란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는 사회복지체제의 확충으로 가능한 것이다. 또한 여러 경제적 요인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는 소외계층을 그 소외원인별 그리고 계층별로 적절히 분류한 뒤 각 대상자의 수요에 부합하는 생활안정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적자재정기에 어렵게 마련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원래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기 위해서는 목표 효율성(target efficiency)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목표 효율성은 각종 복지프로그램이 원래 대상으로 선정된 수혜대상자에게 얼마만큼 기대했던 혜택이 돌아가는가를 측정하는 지표이다. 이러한 지표를 기초로 우리의 실업대책 프로그램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목표 효율성을 측정한다면 바람직한 실업대책과 복지프로그램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국민기초생활기본법 제정의 기본방향과 운영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0년 10월부터 시행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하에서의 공적부조 확대가 갖는 문제점은 이미 지적하였듯이 근로의욕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사회복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생산적 복지의 취지에 부합하는 비용효과적인 제도도입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복지제도와 조세제도의 조화가 필요한데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EITC(Earned Income Tax Credit)의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 EITC는 부(負)의 소득세(NIT : Negative Income Tax)의 일종으로 면세점 이하의 소득계층에 대해 현금급여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기존의 공적 부조를 상당부분 대체하는 것이다. 즉, 실업자와 빈곤층이 급증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난국에서는 복지수요의 증대가 상당히 클 것이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공적 부조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부의 소득세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부의 소득세 도입은 세출을 세입과 연계한다는 차원에서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는 복지지출의 효율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NIT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면세점 부근의 근로자들이 갖게 되는 근로의욕의 저하효과는 적용대상금액을 초기에는 낮게 설정하여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보험개혁

사회보험은 복지와 보험의 두 가지 기능이 혼합된 개념으로서 개별 사회보험 프로그램이 복지기능과 보험기능을 적절히 발휘할 때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보험의 보험기능을 무시한 채 복지기능만을 강조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생산적 복지의 이념을 바탕으로 할 때 사회보험이 갖는 보험기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4대 사회보험제도는 공적 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그리고 고용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4대 사회보험제도 모두 보험기능이 지나치게 미약한데 이는 재정불안 요인 심지어 재정위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사회보험제도가 갖는 보험기능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회보험을 통해 복지혜택의 증대를 기대하고 있을 정도이다. 한편 정치인들은 그동안 선거가 있을 때마다 사회보험의 재분배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앞다투어 발표하였다. 이로부터 우리의 사회보험은 그 재정이 극도로 불건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증대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엄청난 국가부담이 되고 있다. 사회보험채무를 포함한 국가채무의 경우 약 400조 가까이 되어 GDP 대비 80%에 육박할 정도이다.

현재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 교원연금 등 4대 공적연금제도 모두 심각한 재정문제를 안고 있다.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이미 적자가 발생하여 일반회계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공적연금제도의 재정위기는 구조적인 결함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가입자가 평생 동안 납부한 보험료보다 퇴직 후 받게되는 연금수급액이 평균 두 배 이상에 달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파산이 당연한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공적연금제도의 개혁은 불가피하며 그 방향은 국민연금제도의 개혁을 통해 궁극적으로 통합·운영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제도, 산재보험제도 그리고 고용보험제도 역시 제도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고 이는 국가재정에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의 효율화가 생산적 복지정책의 주요과제가 되어야 한다.

사회보험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다. 각종 이익집단의 강한 반발을 무마시키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지대한 정치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좀더 솔직하고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생산적 복지 선언을 하면서 사회보험의 근본적 개혁방향을 포함시켰어야 한다.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는 노력은 당장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국가적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고 미래세대의 엄청난 부담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보험을 당장 개혁하지 않을 경우 현재 30대 이하 세대가 퇴직하게 되는 2020년경부터는 이들 세대의 부담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 정부는 솔직히 설명해야 한다. 이익집단 역시 현재의 중장년층의 손해를 줄이고자 개혁을 반대하기보다 미래에 이익집단의 핵심세력이 될 세대의 희생에 주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맺 음 말

생산적 복지는 21세기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이 되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생산적 복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알맹이 없이 미사여구로만 그친다면 우리의 복지수준은 모든 복지제도는 갖추고서도 형편없이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갖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복지제도를 생산적이고 실효성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특히 IMF 사태로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본 계층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임시방편적인 정책보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을 신중히 그리고 투명하게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보기좋게 생산적 복지정책을 포장하기보다는 당장 보기는 싫더라도 두고두고 그 정책이 담고 있는 내용물이 취약계층에게 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좀더 자신있고 솔직하게 국민들을 설득하는 정책결정 담당자의 자세가 요구된다. 아울러 정권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그리고 선거가 아무리 자주 실시되더라도 지금 마련하는 생산적 복지정책의 일관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안종범 /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00년 02월호(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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