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04-10   1089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과 관련된 보수, 기득권층의 저항이 도를 넘고 있다. (표빠짐)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보법)이 오는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고 현재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입법예고 중이다. 이 안은 기보법의 근본정신인 수급권자의 사회권 보호와 거리가 멀어진 채 완성되어 입법예고 되었는데, 이는 기보법의 시행이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 재정적자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는 시장론자들의 힘에 밀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ㆍ기득권층에서는 기보법의 생계보장 정책이 수급권자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킬 수 있으므로, 복지병의 예방을 위하여 최저생계비와 실소득의 차이의 40%만을 생계비로 지급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기보법의 근간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재정적자를 메꾸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세계잉여금의 생활보호 예산으로의 전입 노력도 거의 무산시키고 있다. 그러면 과연 입법예고 중인 시행령과 시행 규칙에 보수ㆍ기득권층이 우려할 만큼의 수준 높은 생활보호가 보장되어 있는가? 본고에서는 이를 상세히 살펴보면서 이들의 주장을 비판하고자 한다.

복지병이 번질 가능성이 있는가?

복지체계가 제대로 구축된 선진국에 만연된 이른바 '복지병'이 번질 우려가 짙다는 점을 들어 보수ㆍ기득권층의 일각에서는 부의 소득세를 거론하면서 최저생계비와 실소득의 차이의 40%만을 생계비로 지급하고 점차 50%까지 올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복지병의 논리는 "복지제도를 확충할수록 근로의욕을 감퇴시켜,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학문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이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주장이며, 일각에서는 서구 신자유주의자들의 조직적인 선동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백 번 양보하여 이러한 가정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기보법을 포함한 우리 나라의 복지예산의 수준은 저소득자들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킬 정도로 높은 수준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현재 입법예고 중인 기보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의하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권자에게는 조건부로 급여를 주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은 자활급여의 성격이 원래의 기본욕구의 충족권리에 따라 주어지는 보충적 급여임에도 불구하고 생계비 지급을 위한 조건부 급여로 전락시켜 법의 기본정신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에는 노동을 조건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의 생계비 지급을 박탈하는 규정을 위헌으로 판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병의 방지와 근로의욕의 고취를 위하여 조건부 급여가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도입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권자는 직업교육, 공공근로, 자활사업 등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비를 수급할 수 있고, 알선된 작업장에서 일하지 않을 경우에는 수급권이 박탈되도록 규정되어 복지병의 발생은 원천적으로 방지되었다.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는 모두 거택보호대상자가 될 수 있는가?

기보법이 시행되는 올해는 사실상 우리나라 복지제도 발전의 원년이 되는 해로서 이 법이 시행되기만 하면 현재 보호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현재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들은 생계비지급 대상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보법 시행령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현행 한시적 자활보호대상자 선정기준보다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예컨대 현행 자활보호대상자 선정기준에 적용되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생계를 같이하는 2촌 이내의 혈족'으로서 생계를 같이하지 않는 부양의무자의 경우에는 소득과 자산조사를 하지 않고 단지 이전소득만 조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기보법 시행령 초안에는 부양의무자 규정이 훨씬 강화되어 가구의 소득이 급여신청가구와 부양의무자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합산한 금액의 120% 이상인 2촌 이내의 혈족이 한 가구라도 있거나 100-120%사이의 부양능력 미약가구가 둘 이상인 경우에는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인력이 부족하여 타 지역에 사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부양의무가구가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면 무조건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한다면, (새 법이 초안대로 시행된다면) 급여대상가구가 줄어들고 현재의 자활보호대상자도 많이 탈락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한편 재산기준을 살펴보면, 작년까지는 지난 몇 년 동안 해마다 재산기준을 백만원씩 올렸었다. 그러나 작년에 비하여 올해 저소득층의 전재산으로 평가되는 전월세보증금의 시장가격이 많이 인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재산기준은 거택보호대상자의 경우 작년과 같은 2,900만원, 자활보호대상자의 경우 4,400만원으로 작년과 동일하다. 이렇게 재산기준에 시장가격 인상분을 적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혜대상자를 줄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 입법 예고 중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재산기준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자활보호대상자가 없어지기 때문에 재산기준은 2,900만원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많고, 그렇게 될 경우에 현재 보호를 받고 있는 많은 자활보호대상가구가 탈락될 것이 우려된다.

최저생계비와 실제 소득의 차액이 생계비로 지급되는가?

기보법에는 최저생계비와 실제 소득의 차이가 생계비로 지급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입법 예고 중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보호수준이 훨씬 낮아질 수 있는 조항을 여기 저기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조항이 '추정소득의 적용'이다. 우리 나라 저소득층은 대부분 정식으로 세금이 보고되는 직종에 종사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수급권자의 소득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기보법 시행령 초안에는 "조건부수급자의 소득을 조사할 수 없으나 주거 및 생활실태 등으로 보아 소득이 없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주당 2일의 근로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전직의 임금, 유사직종의 평균임금 및 최저임금 등을 고려하여 그에 해당하는 소득을 산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하였다. 따라서 주당 45시간의 근로시간 중 16시간의 소득은 실제 소득여부에 상관없이 추정ㆍ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36% 정도의 생계비가 삭감되어 지급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최저생계비 자체가 낮추어져 있는 문제도 있다. 현재 거택보호가구의 70%와 자활보호가구의 33%가 1인 가구이며 거택보호가구의 16.6%와 자활보호가구의 23%가 2인 가구로서, 생보자가구는 식구수가 적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올해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928,398원인데, 예산을 절약하자는 의도에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저생계비를 계측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다음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족수가 적은 가구의 가구균등화지수를 낮게 설정하여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각각 21%와 20% 낮추었다. 이에 따라 많은 가구들이 수혜대상에서 제외되고 수혜수준도 낮아졌다.

<표 1> 보사연과 타연구자의 가구균등화지수 차이

* 통계청 자료를 이용하여 보사연과 같은 방법으로 필자가 추정한 지수

공공부조정책의 사각지대는 없어지는가?

많은 사람들이 기보법이 시행되면 근로능력이나 취업여부에 상관없이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기만 하면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 예고 중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초안에는 가구의 정의를 '생계를 같이하는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함께 기재되어 있는 2촌 이내의 혈족'으로 내리고 있다. 따라서 등재된 주민등록지에 거주하지 않는 노숙자, 쪽방거주자, 비닐하우스촌 거주자, 이혼 절차가 진행 중인 별거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자,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하여 주민등록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자들은 모두 공공부조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사실 최하위 계층의 사람들 중에는 성격파탄, 방랑벽, 정신질환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건사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많고, 반 해체 상태의 가정이 많은데 주민등록표에 집착하여 대상자를 선정하게되면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예산에 맞추어 대상자와 보호수준을 정하는 현행 제도는 개선되는가?

선진국의 경우 복지예산에 관한 한 쓰다가 부족하면 잉여금을 사용하거나 통제 없이 차입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수혜 대상자를 예산상의 이유로 탈락시키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확보된 예산의 범위 안에서만 지출이 가능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보호수준이 극히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99년 1/4분기 도시가계조사자료(통계청)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전 도시 가구의 21.8%가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을 위한 소득과 재산 기준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4.2%만이 생활보호 혜택을 받고 있었다. 이렇듯 많은 가구가 수혜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대부분 예산부족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10월부터 제도를 시행하기로 해놓고서 예산책정과정에서 대상자수를 작년의 192만명보다 40만명 정도가 적은 153만명으로 책정하고 예산도 올해보다 4.1% 축소했는데 이러한 결과는 재경부에서 재정적자를 우려하여 복지부에서 책정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소된 예산으로는 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은 커녕 현행 생활보호법상의 수급권자도 누락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동안 논란이 되어 오던 세계잉여금의 생보 예산 전입 가능성도 거의 희박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복지제도는 사실상 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기준에 상관없이 예산이라는 단일 기준에 맞추어 수혜대상자를 선정하고 수혜수준을 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입법예고 중인 기보법의 시행령과 시행 규칙의 초안은 기보법 본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수급권자의 권익보호 측면에서 많이 미흡하다. 그러나 이 초안조차도 부정수급이나 복지병에 대한 보수ㆍ기득권층의 지나친 우려와 재정지출의 증대로 인한 국민경제의 부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적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확정을 보지 못하고 연기되어 있는 상태이다.

외환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금융권에 쏟아 부은 94조의 돈이나 작년에 대우사태의 해결을 위하여 쏟아 부은 67조의 돈은 궁극적으로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여유자산이 있는 층의 자산보호를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모아둔 재산이 있고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위계층은 IMF 사태 와중에도 오히려 재산을 늘였고 소득도 높아졌으며 현재도 그러한 추세에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의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소득분배구조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수ㆍ기득권층도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의 도입을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적 시장론자들은 노동시장, 복지, 조세, 부동산 등의 제 분야에 걸쳐서 정부에서 소득재분배정책을 내놓으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제동을 걸고 있다. 이들의 반격으로 무산시킨 대표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이 주식의 양도차액과 60평 이상 호화주택에 대한 과세 부과 시도였다.

그리고 이제는 기보법을 주 타겟으로 삼아 부의 소득세 운운하면서 최저생계비와 실제소득의 60%를 깎자고 주장하고 있다. 성장에 좀 지장이 있고 단기적으로 재정적자를 조금 감수하더라도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소외계층의 생존권보호를 위한 예산은, 국민적 합의에 의하여 통과시킨 기보법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보장되어야 한다.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복지수준의 향상이 실업흡수 효과와 유효수요의 증대를 가져와 경제성장에 보탬이 됨을 입증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사회권의 보호가 바로 사회적 통합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며 이에 따라 기득권층도 편안히 잘 사는 연대의 사회로 가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튜정순 / 경원대 행정대학원 강사

월간 <복지동향> 2000년 04월호(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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