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와 복지부의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에서 그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된 주요 사항은 최소한의 의료보험료 인상, 상대가치체계의 도입 및 이에 근거한 의료보험수가의 인상이다. 여기에서는 이들 사항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내용, 이러한 결정이 가지는 의미,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재정운영위원회 결정사항>
의료보험료 인상
* 지역의료보험료 15% 인상
공단 재정위에서는 그동안 10차에 걸친 위원회 결과 2000년 12월 14일 참석위원 27명 전원일치로 지역의료보험료를 15% 인상하기로 하였다. 다만 농어민에 대해서는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하여 인상분의 23%를 삭감하여 실질적으로 약 6%만 인상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초 정부는 39%-20% 인상안을 제출하였다.
* 직장가입자 보험료율 3.4%로 조정
직장가입자와 공교가입자는 그동안 재정이 분리계리되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보험료율의 적용을 받아왔으나 2001년 1월부터 재정이 통합됨에 따라 단일 보험료율을 적용받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재정위는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을 기존의 2.8%에서 공교와 같은 수준인 3.4%로 상향조정하되 20% 이상 인상될 경우 초과분 전액을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안을 복지부에 건의하였다.
* 인상 배경
현재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의약분업 이후 수차에 걸친 의료수가인상과 과도하게 설정된 약국조제료이다. 그러나 이번의 지역의료보험료 인상은 의료서비스의 이용증가, 급여확대 등 보험급여비의 자연증가분에 대한 지출만을 고려한 것이다. 지역의 경우 매년 15% 정도의 자연인상요인이 발생해 왔으나 '99년 5월의 인상 이후 보험료의 조정이 없었으며 국고지원의 감소로 재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직장의 경우에는 지역과 달리 적립금이 1조원 가량 축적되어 있으나, 지역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 공교가입자와 같은 수준의 보험료율을 적용해야만 하는 법적인 문제, 통합의료보험의 대원칙하에서 기존의 적립금에 대한 기득권 주장 곤란 등을 고려하여 20% 정도 인상하기로 하였으며 양대노총을 제외한 전위원이 동의하였다.
* 인상의 전제조건
재정위는 지역의보료 인상을 결정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한 몇가지 전제조건을 의결하였는데 그 주요내용은 의료수가의 동결, 지역가입자에 대한 국고지원확대, 본인부담금 정액 적용 기준의 상향조정, 예방접종, MRI, 불소도포 등에 대한 보험급여 시행, 병의원 및 약국의 경영분석을 토대로 수가 및 약가 설정의 공정성 확보, 진료비 누수의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환자의 알권리 보장 등이다. 이들 전제조건 중 상당수는 당정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이다.
의료보험수가 동결: 보험재정중립 환산지수 채택
보험자대표와 의료계대표와의 2001년도 수가계약을 위한 환산지수에 대해서는 수가동결안이 채택되었다. 그동안 재정위에서는 정부가 수가인상의 근거로 삼고 있는 연세대 의과대학의 보고서에 대한 검토결과 원가보전율이 64.8%라는 보고서 내용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따라서 이 보고서에 근거한 수가인상 및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험료 인상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런데 재정위의 수가동결안은 수가계약단계에서 의료계에 의해 거부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최종결정은 복지부의 심의조정위로 넘어가게 되었다.
<심의조정위원회 결정사항>
상대가치체계 도입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상대가치체계가 보험재정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하여, 먼저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결과를 보아가며 전면적으로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정부에 의해 일언지하에 거절되었다. 상대가치체계의 도입 결정을 위한 회의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집단퇴장한 가운데 의료계와 정부측 위원 10명만이 남아 의결하였으나 의결정족수(11명)에 미달하였다. 명백한 법적 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상대가치체계를 밀어부쳤다.
의료수가 7.2% 인상
앞서 언급한 재정위의 수가동결안과 복지부가 제안한 7.2% 인상안이 심의조정위에 상정되었는데, 시민사회단체 및 재경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와 복지부 위원들이 합세하여 7.2% 인상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상대가치체계의 도입을 논의할 때, 시민단체와 재경부는 상대가치체계가 그 자체로 7.2% 수가인상 요인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복지부 담당국장은 재정중립이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복지부가 치밀하게 준비한 뒤 상대가치체계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심의위 위원들을 기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결정 치료행위의 상대가치 산정 및 급여화
보험급여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의료행위 중 400여개를 보험급여범위로 끌어들이되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100% 본인부담으로 하기로 하였다. 긍정적인 점은 현재까지 병원마다 임의대로 받고 있었던 진료행위를 급여화함으로써 가격이 일정하게 규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부당한 폭리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미결정 행위의 시장가격에 대한 판단 근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상대가치점수가 연세의대 보고서에 의존하였다는 점에서 이번에 결정된 상대가치점수도 원가보다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부담금을 낮추게 되면 곧바로 보험재정을 악화시키게 된다.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심사평가원은 이들 행위의 보험급여화와 관련된 근거자료를 거의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건을 제출하였다.
정부의 시행착오에 가려진 복지동맹의 가능성
의료보험료 및 수가인상 논의가 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의미는 우선 각 시민사회단체가 다양한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목표를 가지면서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전략적 제휴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보건의료동맹관계는 서유럽 복지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복지동맹의 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제도적인 측면으로 재정위와 심의위는 국민건강보험법의 시행과 함께 다소 새롭게 시도되는 의사결정방식인데 이번의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이 단번에 부각되었다.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운영위는 위원구성이나 운영에 있어서 정부내 위원회로서는 보기 드물게 민주성과 합리성을 가진 조직으로 발전되고 있다. 유럽의 사회조합주의적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낳은 최대의 수확이라고 생각된다.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을 대변하는 각 단체가 모두 참여하면서 각계각층의 국민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와 정의가 그대로 혼합되어 반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민간인 위원장이 선출됨으로써 회의운영상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각 단체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식하였고, 그 결과 이번 의보료 인상에 대해 사실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재정위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
이에 반해 복지부의 심의위는 국민건강을 위한 위원회임에도 불구하고 의약계 중심으로 위원구성이 되어있어, 국민의 정부에 국민은 없고 이익집단만 있는 형국이다. 그 운영에 있어서도 (적어도 지금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결과) 복지부가 과연 국민을 위한 조직인지 의약계 대변인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철저하게 국민을 들러리로 만들었다.
시민사회단체는 처음부터 심의위 위원구성의 편파성을 지적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의료수가 결정회의시에는 위원장(복지부 차관)의 기권을 요구하였으나 이 역시 거절되었다. 평소 중립을 지키겠다던 위원장은 막상 표결에 들어가자 의료계를 위해 자신의 한 표를 기어코 행사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이 나온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셋째, 정부 실패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복지부 관료들의 법치 불감증, 무원칙, 편파적인 심의위 운영으로 인해 의보수가는 또다시 인상되었고 최근에는 DRG시범사업 수가까지 인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동안 심의위 내에서 일련의 의사결정과정을 지켜보면 우리나라의 복지부는 이른바 포획이론(capture theory)의 전형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익집단과의 약속에만 관심이 있고, 국민들과의 약속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요즘의 복지부이다. 여기에 더하여 관료들의 한건주의와 개혁 집착증이 보건의료제도를 더 왜곡시키고 있다.
더구나, 개혁인지 개악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들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으로 단정짓고, 자신들의 유사한 생각을 서로서로 확인시켜주면서 더욱 외곬으로 가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동조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국민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넷째, 이상과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한 의료수가인상은 의약분업의 잘못된 가격구조와 함께 건강보험재정을 파탄으로 몰아갈 것이며, 금년에는 아마 의료보험료가 작년의 두배 이상 인상되어도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재정안정을 위한 후속조치 시급
국민건강보험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재정안정이다. 이를 위해 의료수가동결, 수가인상을 위한 목적으로 변질된 상대가치체계의 시행보류, 직장과 지역의보재정의 조속한 통합, 병원과 약국의 경영평가를 통한 적절한 수가조정, 경영투명성 확보, 진료비 누수방지를 위한 조치, 의약분업의 잘못된 가격구조 파괴 등 일련의 강력한 조치가 동시에 시행되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복지부의 심의조정위원을 재구성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폐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개혁이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운영하는 것도 사람이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아무런 비판과 검증없이 단지 자신의 재임중 치적으로 삼기 위해 단번에 도입하려는 한건주의를 혁파하지 않는 한 졸속개악과 시행착오는 반복될 것이다.
마치 내일 당장 떠나야 될 사람처럼, 단기간에 끝을 보고싶어하는 조급증, 특정 이익집단과의 지나친 밀월관계, 밀실협상 등은 복지부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2월호(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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