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지 문제를 학문적으로 공부해 본 일은 없다. 그러나 참여연대에서 열심히 일하는 실무자와 각 위원회에서 봉사하시는 전문가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인간의 삶을 한층 더 편하고 모두가 고루고루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참여연대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던 일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시민단체를 대표해서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 자리가 관련 부처의 차관들, 노동조합 대표와 경제인 대표, 경영인 대표, 이권단체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국민연금의 기금을 운영하는 결정을 한다고 이해를 했었다. 그러나 노령의 인간으로서의 문제, 노후복지문제, 고령화 시대에 알맞은 제도적 전환, 국민건강차원에서의 노인병 문제 등등 보다 본질적인 고령화 시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은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연금제도를 개선하여 연금을 내는 사람들이 노후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을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을 이루었다.
일단 시간이 없었다. 결국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런데 재정문제에서조차 중심은 국민이 아니었다. 관계부처간의 입장도 재정경제부에서 무엇인가를 주장하면 그에 거의 수긍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해보지 않은 문외한으로서는 왜 경제부처의 발언권이 그렇게 거의 절대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재정에 관한 이야기는 제일 마지막에 하는 일인 줄만 알았는데, 참인간답게 살기 위한 국민의 삶 특히 노후의 보다 나은 삶을 생각하는 따뜻한 공기는 연금운영과 재정관리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나는 이와 같은 숙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기금운용위원회에 나가고 있다.
오늘은 우리들의 건강문제와 직결된 의료체제의 비인간성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 싶다.
어린 시절에 다섯 살 아래 동생이 겨울에 장작을 패다가 손가락이 잘려나가 정도로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다. 급한 마음에 손가락을 싸매고 동네 병원에 갔을 때 장로님인 의사선생님은 동생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시고는 소독한 다음에 손가락을 꿰매셨다. 그 손가락은 완전하게 자라지 않았지만 불편함이 없이 구실을 하고 있다. 그 장로님의 환자를 대하는 정성스러운 마음과 성실한 태도를 보고 의사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1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원인도 알 수 없는 병과 투병하는 아내를 간호하면서 미국, 일본, 중국, 한국, 스위스, 싱가포르의 의료서비스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귀국 후 S병원에서 10여 년 간 도움을 받아왔는데, 아내가 운명한 다음 응급실 책임자는 사인을 '폐병'이라고 간단히 적어 버렸고, 가족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영안실에 가는 시신은 결국 도살장에 가는 짐승이나 다를 바 없이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나는 의료계 전체에 대한 분노를 느꼈었다.
물론 훌륭한 선배의사들도 여러분 만났다. 직접 가정을 방문해 간호하는 사업은 너무도 고마운 제도였다. 그러나 의사들에게 국민건강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의 병으로 인해 병원 출입을 10여 년 간 하면서 기쁘고 감동되었던 일보다는 분개와 규탄의 심정이 수십 배였음을 가끔 헤아려 본다.
환자 자신은 오죽했겠으며, 과연 병원이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곳인지? 결국 가치관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래 전 S병원에서의 일이었다. MRI라는 것의 결과를 놓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불치의 병이니 여기서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다른데 가서 알아보시고 다시 올라면 오시오." 불치의 병은 침으로 고친다는 주변의 건강론자들의 말을 듣고 침을 맞았다. 나의 처는 어느 정도의 침에 대한 신암심 같은 것이 생겨나는 듯했다. 침술의사는 병원약을 다 끊어야 한다 했다. 그렇지만 약을 계속 먹었다. 얼마 후 MRI를 하라고 권유했던 박사에게 가서 침맞은 이야기를 했더니 환자와 보호자를 세워놓고 고함을 치며 알만한 사람이 무식한 짓을 한다며 호통했고, 나와 아내는 거의 추방당하다시피 쫓겨났다. 알고 보니 그는 나의 중학교의 새까만 후배였다. 이런 와중에는 국민건강의 원리는 찾아볼 길이 없었다.
국민의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변화가 필요하며, 그 제도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계도 결국은 부품을 갈아 끼우는 고급화된 '카센터'같은 것이 되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육아에서부터 직장의 안정, 자녀교육, 평생건강, 노후 대책 등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우리들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들의 숙제, 우리 부모들이 말없이 남겨놓은 숙제,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의 숙제가 되어버릴 것들에 대해서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운동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꾸준히 애쓰고 있는 사회복지계 종사자 여러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생각을 가지고있다.
이 분들이 2001년 한해 동안에도 많은 일들을 하시고 우리 사회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참된 복지사회로 한 발짝 앞으로 가는 일에 큰 기여할 것을 확신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2월호(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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