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7-10   850

반대 | 재정건전화, 복지재정 확충의 족쇄이다

'재정건전화' ≠ '균형재정'

'재정이 건전하다'는 것은 이미 그 표현자체에 긍정적인 가치판단을 전제하고 있다. 건전한 재정을 만들자는 주장은 이미 주장 안에 '개념의 함정'이라는 오류가 내재해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과연 무엇이 '건전한 재정'의 실체이냐로 귀결되어진다. 현재 '재정건전화'를 부르짖고 있는 이들은 바로 그 실체가 '균형재정'이라고 답한다. 바로 이 점이 현재 '재정건전화' 논의의 가장 큰 허점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국민경제를 분석하는 거시경제학의 틀걸이를 제공했고 유효수요(effective demand)라는 개념으로 '불완전 고용'으로 대변되는 대량실업 상태의 해결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였던 경제학자 케인즈(J. Maynard Keynes)에게 있어서도 균형재정에 대한 집착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만일 균형재정에 집착하였다면 케인즈경제학의 기초는 설 수 없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1930년대의 대불황의 극복은 물론, 그에 힘입어 전개된 2차대전 이후 '경제성장의 황금시대'는 그 서곡조차 울리지 못한 채 서구 자본주의 경제권은 진작 그 조종을 울렸어야 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일국의 재정에서의 채권과 채무란, 특정시점에서의 정책이 지향하는 바와 경제성장의 수준과 유형, 사회구성원 간의 공감대 정도에 따라 다채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우선 근본적으로 국가채무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개인이나 기업에 있어서 채무란 곧 신용에의 위험을 낳는 것이지만 국가 채무의 경우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만일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마져 모두 저축만을 행하고 있다면 해당국가의 과잉자본은 이자율의 하락과 자본의 수익률 감소를 초래하여 결코 바람직한 경제적 성과를 낳지 못하게 된다. 국가채무는 민간부문의 재무상태와 연동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를 보인다.

물론 정부 스스로 부담하는 채무 규모가 큰 것이라면 그로 인한 재정 운영상의 부담 과중과 경직적 예산 편성에 의하여 해당 국가경제구조가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되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정부의 채무/GDP 비중이 이태리 119.9%, 일본 97.3%, 캐나다 89.8%, 미국 56.7% 등으로 매우 높으며 OECD 평균이 약 70%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국가경제가 아직도 선진국 반열에서 크게 추락하지 않은 것을 보면 채무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재정적자의 관리와 효과적인 활용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채무가 본격화된 것은 IMF 경제위기이고 당시의 국가 경제 상황에서 부실금융권을 막기 위한 적극적 조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물론 공적자금의 배분이나 집행과정에서의 효율성이 얼마나 관철되었느냐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 비판적인 지적사항이 있을 수도 있고, 또한 이러한 구제금융으로 인한 국채의 증대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으며 그렇기에 이러한 상태는 지극히 우려스러운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재정이란 국가의 정책적 목표를 실현하는 도구이지 재정 자체가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시점에서 국가재정을 통해 해결을 도모해야 하는 국가사업이 어떤 것이냐에 의하여 구체적인 재정 운용형태가 결정되어야 한다. 국가채무가 발생하였으므로 무조건 균형으로 돌리는 노력만이 유일하고도 정당한 재정운영지침이라는 말은 '재균형재정 만능주의'라고 명명할 정도로 현상을 과도하게 단순히 취급하는 것이다.

'재정건전화' = '재정구조의 적절화'

그런 의미에서 '재정의 건전화'란 '균형재정의 달성'이라기보다는 '재정구조의 적절화'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국가재정이 국민복리의 증진을 위해 쓰임새에 맞게 잘 쓰여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벽두에 서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미진한 부문으로 여겨지는 사회복지부문의 발전이야 말로 국가재정이 실현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 얼마마한 재정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느냐가 오히려 재정 건전화를 가름하는 주요한 기준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있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60년대 이후 오랜동안 지배력을 발휘하여 왔던 '경제성장 지상주의'의 틀을 벗지 못한 이들이 이제 다시 '균형재정'을 내세워 경제논리를 국가정책 및 국민경제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마치 균형재정만 유지된다면 경제는 제궤도에 이르는 것이고 따라서 국민경제는 정상화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국가채무를 걱정하지 않고 살았던 지난 40여년동안 국민들의 안정된 삶의 질은 가장 위협받아왔고 그 끝이 IMF 경제위기에 의한 국가경제의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위 '균형재정'을 누릴 때는 국민들을 시장질서의 폐해로부터 보호할 사회정책을 등한히 하더니만 이제 국가채무를 지는 때가 되고보니 다시 소위 '재정을 건전히 하고자' 또 다시 긴요한 사회정책을 전개하기 어렵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나온 40년간의 '개발재정'이 이젠 '균형재정'에게 대물림을 해주어, 재정의 균형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산 증가율을 경제성장률보다 낮게 하고, 세계잉여금 전액을 국가채무 상환에만 충당하며, 추가경정예산은 극단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면 논의될 수 없으며, 새로운 세출소요가 발생할 시에는 자체재원조달을 의무화하고, 예산절약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든지, 공공요금에 대한 재정 지원을 극도로 억제"하는 원칙을 법으로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속에는 아직도 인구의 7%가 빈곤선 아래에 있고 비정규직의 20%정도만이 사회보험에 포섭되어있으며 치매노인이나 탈선청소년, 희귀난치병에 떨고 있는 아동들, ……… ,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히 균형잡힌 예산의 뒷그늘에 놓인 문제로 치부되는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이들은 균형예산 안에서도 필요한 사업에 대한 적극적 지원의 여지는 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강변이라는 것은 굳이 여러말이 필요없다.

더군다나 그동안의 개발재정이 이러한 국민 개개인의 안정된 삶을 지지해주는 재정의 역할을 포기한 채 영위해 온 것인데, 이제와서 다시 균형재정을 위해 또 다시 국민 개개인의 복지 증진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유보된다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는 너무 잔인한 것이다. 이는 마치 노름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던 가장이 이제 노름빚이 있으니까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가족을 채근하며 또 다시 몰아세우는 형국과도 같다고 본다.

하나의 이데올로기, 균형재정론

단호하게 말하면 균형예산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지금까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하나의 집단세뇌된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 여기까지 온 것도 모자라, 균형예산을 맹목적으로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7월호(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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