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9-10   728

그것이 사회주의라면

얼마 전에 일본에 출장을 다녀왔다. 본래의 출장 목적은 아니었지만, 덤으로 노인 보건복지시설을 볼 기회가 있었다. 외부 사람들에게 보일 요량으로 일부러 잘 꾸민 것도 아닌, 일본에서는 그저 평범한 시설들. 그러나 일본에서 매번 느낀 충격과 일종의 좌절감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편리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이나 저 수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맥빠진 질문들이 이어졌다. 세 발 자전거로 자동차를 뒤쫓고 있는 한심한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제 사나흘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이런 생각들을 채 털어 버리기도 전이다. 그런데 갑자기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며칠 현실을 떠나 있느라 내가 좀 이상해졌나. 자동차의 꿈이 채 깨기 전인데, 우리에게는 세 발 자전거도 과하다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서이다. 다름 아니라 거대 야당의 정책위원장이라는 분이 또 사회주의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이다. 현정권의 복지정책이 '사회주의' 정책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적' 정책인가 뭐 그런 쪽이란다.

사회주의적 정책이란 것이 무얼 두고 한 이야기인지 그리 정치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알아들을 도리는 없으나, 그게 현 정부 집권 이후의 복지분야 정책을 두고 한 소리라면 기껏 기초생보법 제정이나 의약분업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짐작이 맞다면 혼란스럽다. 이게 무슨 이런 저런 '주의'의 혐의를 받을 만한 것인지.

여당이 아니라고 내세운 논리는 좀 궁색하니 그만두자. 전에 여야가 다 합의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고 과거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가장 사회주의적이 아니라고 하는 할 만한 국가들이, 이런 표현법을 빌리자면, 우리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로 치면 의료보호 쯤 되는 미국의 메디케이드 적용인구가 전체 인구의 10%나 된다는 것,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 혹은 사회주의적 복지정책을 펴는 국가인지, 원.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일본은 작년 4월부터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개호보험'을 시작하였다. 일본 국내에서는 복지정책의 후퇴니,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이 가중되니 하는 소리들이 있었던 모양이나 우리 잣대로는 참 배부른 소리이다. 시작하면서 한 해 동안 약 4조엔(우리 돈으로 약 40조원)의 지출을 예상했다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는 그만 두더라도, 전체 지출의 반은 국가가 부담한단다. 이것 참, 이건 도대체 무슨 '주의'란 말인가.

지금은 좀 뜸해졌지만 한때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우리말로는 '국제표준' 쯤이나 될까. 보건과 복지라고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표준이 왜 없을까. 그렇다면 유감스럽다. 야당의 정책위원장이 무엇이라고 하시든, 아무리 따지고 뒤지고 별 잣대를 다 들이대어 봐도 우리 복지 수준은 스탠다드 이하이다. 경제수준이 다르다고? 우리 경제수준과 비슷하거나 우리 이하인 나라와 비교해도 상관없다. 결과는 꼭 같으니.

혹시, 야당 정책위원장께서 복지에서는 전세계적인 표준과 사회주의가 동의어인 것으로 알고 계셔서 그런 것이라면? 그러면 고백할 것이 있다.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불러도 개의치 않는다.

김창엽/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관리학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9월호(제35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