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다”
“없어도 철저히 없다”
강원도 철암지역에 관련된 글을 읽다가 발견한 글귀가 가슴에 쿵 하고 새겨졌다. 폐광된 탄광촌으로 희망이 없어도 철저히 없는 곳, 하지만 그 곳에서 사회복지현장실습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내 가슴은 왜 그리 뛰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겨울, 철암에 첫 발을 딛는 순간 내게 다가온 느낌이랄까 인상은 그냥 까맣다는 것이었다. 더없이 새까맣고 온 세상이 온통 까맣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 실습생들의 합숙소인 돌구지에서부터 철암 어린이 도서관까지 오가며 보이는 것은 곳곳에 쌓여진 연탄과 빈 집 사이로 부는 휑한 바람, 그리고 수마가 남겨 놓은 허물어지고 부서진 다리, 듬성듬성 다니는 차와 사람들, 혹여 바람이라도 샐까봐 굳게 닫은 상점의 문 등등이었다. 온기라고는 느낄 수도 없는 살풍경 그 자체였던 같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현실은 적막하다 못해 암울해 보일 정도였지만, 그곳에서 내 눈을 반짝거리게 한 것은 아이들이 뛰노는 희망의 소리였다. 아무리 황량하고 황폐하게 보이는 곳이라도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런 귀한 사실을 알게 해준 우리 철암 꼬맹이들은 정말 하나같이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하는 소중한 철암의 희망지기들이다.
불룩 나온 자신의 배가 부끄럽기는커녕 자랑스럽다며 자신의 올챙이배를 자랑하던 초등학교 1학년 한 꼬맹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 선생님께서 자신이 천사라서 등에서 날개가 나오려고 한다고 하신 말씀을 철썩 같이 믿고서는, 다른 선생님께 정말 천사가 맞느냐고 물어보며 눈을 둥그렇게 뜨는 정말 순수한 아이였다. 처음엔 선생님을 툭툭 치고 때렸는데, 칭찬을 해주면서 잘 한다고 하면 금새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장난치지 않던 그 꼬맹이가 새삼 보고싶어진다. 공부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렸던, 또한 꿈도 야무지던 한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들 철암을 떠나 다른 지역의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려 하지만, 자신은 지금 살고 있는 철암지역의 중학교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열심히 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고, 자신의 꿈인 건축가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포부를 예쁘게 말하였다. 비록 낙후되고 희망마저 없다는 철암에 희망지기 꼬맹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철암이란 곳에서 실습을 한다고 했을 때, 사회복지발달사 시간에 배웠던 1880년대의 인보관운동을 우리가 재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직접 지역에 거주하면서, 지역주민의 삶을 개선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뭉게구름 같은 꿈을 안고 실습에 임하였다. 실습을 마치고 난 후, 우리 광산촌 사회복지현장실습팀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폐광된 탄광촌의 한 지역 주민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철암이라는 곳에 거창한 개선방안이나 거대한 무엇인가를 제공해 준 것은 아니지만, 철암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철암의 아이들과 함께 한 여러 가지 활동들(내가 만든 크리스마스, 꼬마 산타가 전하는 사랑이야기, 집 뜰이 행사, 나 떠나갈래 캠프 등등)은 프로그램이라 이름을 내걸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려지는 시간이었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철암지역에 녹아들어 철암지역 아이들과 함께 한 복지, 어쩌면 복지라는 이름보다는 철암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복지학을 공부를 시작했던 초창기에 누군가를 위해 금방망이를 가지고 뚝딱 하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사람이 사회복지사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철암에서 실습을 하면서 사회복지사는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함께 돌파구를 찾고, 사람들을 이끌어 내며, 함께 풀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사회복지실천이다.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다고 책망을 들을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희망이고,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복지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어느 학문도 사회복지학을 따라 올 수 없게 하는 사회복지학의 매력이고, 이로 인해 사회복지학에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느껴진다. 내가 철암에서 만난 그 아이들의 희망의 눈빛과 말속에서 나는 사회복지실천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내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나는 희망의 사회복지사가 되련다.
월간 <복지동향> 2004년 04월호(제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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