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건설적인 위한 논쟁을 위한 스웨덴 이야기
최근 스웨덴 보수당을 필두로 한 우파연합의 집권소식이 우리나라 일간지와 주요 방송의 맨 앞자리를 화려하게 장식한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노벨상의 나라’로만 막연히 알려져 왔었고, 복지천국의 대표적인 나라로만 간간이 회자될 뿐이었던, 그래서 우리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나라의 정권교체 소식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들인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도 더 떠들썩한 뉴스거리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성장이냐 분배냐의 이념논쟁이 이러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는 새로운 국가비전으로서 ‘스웨덴모델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현 정부의 정책들이 자리하고 있다.
GDP 대비 40%에 육박하는 돈을 복지에 쏟아 부으면서도 경제적인 성공도 함께 구가해온 나라 스웨덴은 미국식 시장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매우 드문 예외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스웨덴을 하나의 모델로 고민하는 것은 결코 부자연스런 일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무거운 국민부담을 고스란히 둘러멘 채로는 국가간의 경쟁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21세기의 세계화시대를 견뎌낼 수 없는 모델이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충정도 당연히 이해가 간다. 오히려 외국의 지식인들이 우리의 논쟁을 볼 때 의아하게 생각할 일은 다른데서 찾을 수 있다. 스웨덴 모델과 관련된 최근 우리사회의 논쟁이 서로간의 대화가 아니라 각자의 독백으로 흘러버리는 허위논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한쪽에서는 미국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스웨덴을 마냥 부러워한다면 나라를 둘로 쪼갤 것인가?
스웨덴을 이야기하건 미국을 이야기하건 우리에게는 그냥 꾸어다 입을 수 있는 ‘기성복’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는 모두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의 옷을 제대로 지어입기위해서 우리보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나라들을 잘 살펴볼 필요는 있지만, 멋진 옷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지 그들의 옷 모양을 그대로 베껴서는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만다.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우리의 복지국가 논쟁을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선진국의 전략을 잘 알아야 한다. 미국은 매우 친숙한 모델이라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지만 스웨덴은 조금 다르다. 스웨덴 모델을 조금 더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공과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에 스웨덴 모델의 과거와 현재를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
20세기 중후반,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부러워마지 않았던 스웨덴모델의 발달은 양차 세계대전 직후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생산과 복지를 훌륭하게 조화시켰던 복지국가 스웨덴의 황금기는 1980년대 후반까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집권 사민당에게 이 기간은 명실상부한 축복의 시기였다. 양차대전의 태풍은 발트해의 스웨덴연안을 비껴지나갔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시궁창’으로 불리던 스웨덴경제가 한번에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의 비참함을 눈앞에서 바라본 스웨덴 국민들은 ‘서로 양보하며 함께하는 평화로운 세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고, 초토화된 유럽대륙의 전쟁복구를 위한 경제특수는 철강과 목재의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스웨덴 경제에 초유의 붐을 선사하였다.
비록 양차대전 무렵의 스웨덴 상황이 억세게 좋은 국운에 바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시기 이미 장기집권의 초석을 다진 집권 사민당은 생산과 복지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이미 작성하였고, 매우 실용적인 정치수완을 발휘하며 하늘이 준 엄청난 국운을 십분 활용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경제가 매우 견실하게 발전했던 황금기에도 사민당의 정책노선이 생산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창설을 목표로 했었다는 사실은 기특한 일이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황금기는 공명정대한 조세질서 확립을 위한 세제개혁에서 시작되었다. 투명한 조세가 없이는 복지국가가 필요로 하는 엄청난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복지개혁의 물꼬는 주택 및 고용 프로그램을 사회정책시스템으로 제도화하는 데서 트여졌고, 현금급여도 보편적인 정액급여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시작되었다. 전후 복지지출팽창의 주요원인이 되는 소득에 비례한 급여 프로그램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실시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 진영이 자신들만의 이해타산에 집중하지 않고 양보와 타협을 우선시한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할 사항이다.
거의 모든 국민이 납세자이면서 동시에 복지국가의 수혜자가 되는 방식으로 복지국가의 개혁이 이루어진 까닭에 엄청난 수준의 세금을 내면서도 조세반동은 매우 적은 것이 스웨덴 복지국가의 특징이다.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는 공공복지부문의 명실상부한 팽창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 때가 바로 스웨덴 모델의 범위가 현금으로 주어지는 급여인 소득보장을 넘어, 개별적 욕구와 생산성 향상에 동시에 부응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사회서비스의 영역을 포괄하게 되는 시기이다. 이후 스웨덴 ‘복지이상향’의 풍요의 시대는, 1980년을 목전에 두고 두 차례 세계를 강타한 오일쇼크가 자본주의 황금기에 종언을 선포할 때까지 계속된다.
만약 복지수준에만 관심을 두고 스웨덴 모델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동전의 한 면만 보는 것이다. 정작 스웨덴 사람들이, 특히 1932년 이후 거의 줄곧 정권을 담당해온 사민당 정부가 자부심으로 삼는 것은 복지발전과 함께 경제적인 성공도 함께 일구어내었다는 점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이 지속가능한 힘의 원천은 분배정의의 실현에만 몰두하지 않은데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스웨덴의 지도자들이 분배라는 것도 결국은 걷힐 세금이 있어야 하고, 조세수입은 성장의 과실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자본주의적 시대정신을 인정한 실용주의적 인간형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웨덴 복지모델은 금전적인 사회보장정책 이외에도,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육아·양로서비스 등의 사회서비스정책과 무상교육이나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 등과 같은 인적자본 육성정책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인적 자본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성장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스웨덴의 복지모델이 생산적인 이유는 다양한 사회서비스정책들이 인적자본의 양성과 배치를 효과적으로 해내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세금만 내고 나면 국가의 규제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한 기업 환경도 성장친화적인 제도적 요소이다.
스웨덴 사민당이 누렸던 황금기의 단꿈도 1990년대 초반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산산이 깨지고 만다. 이제, 경제적 범세계화의 탁류 속에서 생존을 위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해진 것이다. 본격적인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한때 실업률 10%를 넘어서는 등 전통적인 완전고용정책의 종언이 가시화되기에 이른다.
가장 먼저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각종 사회보험급여의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높아 일할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점이었다. 90%에 육박하기도 했던 실업급여나 질병급여는 실제로 결근율을 엄청나게 높인 전력이 있어, 80% 이하로 하향 조정되고 동시에 기업의 조세부담은 낮추는 조치가 행해졌다.
최근 스웨덴 복지국가의 개혁경로는 좌우파의 교차집권을 통하여,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가장 특기할 것은, 이미 사회적 권리가 되어버린 복지프로그램들을 인정하는 분위기인 자유당이나 농민당이 내놓는 완만한 삭감안들이, 보수당의 감세조치 지지 혹은 세금인상 반대와 동시에 집행되어 궁극적인 재정불균형 악화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는, 국민절대 다수가 고세금에 기반한 복지국가의 유지를 여전히 찬성한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보수당이 스웨덴 모델의 전면적인 폐기를 선언했다면 집권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외신을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다.
비록 우파집권을 통해서도 대규모의 복지국가 재편드라마가 연출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것이 이후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전반적 방어로 귀결되지도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유는 최근의 상황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속적 경제성장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스웨덴모델의 가장 큰 특징인 완전고용의 성취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재 스웨덴 우파연합의 개혁안에서도 대규모의 민영화(privatization)나 복지의 전면적인 삭감은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은 높은 성장률과 조세부담률을 조건으로 하는 ‘복지고속도로’이다. 마치 고속도로에서는 모든 운전자가 비슷한 속력으로 법규를 지켜주어야 하듯이, 성장과 분배의 모든 요소가 경이롭게 조화로울 경우에만 가능한 복지국가가 스웨덴모델이다. 상당 수준의 경제성장이 있고 복지의 제공도 성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에만 멋들어진 쾌속질주가 가능한 고속도로가 스웨덴 모델의 요체이다.
이 고속도로도 경제적 범세계화의 화두인 ‘무한경쟁’ 속에서는 노란불이 켜진 사거리에 도달하였다. 이번 우파연합을 선택한 스웨덴 국민들의 고민은 다음 고속도로로 이어질 파란불을 켜기 위한 복지개혁을 위해 약간의 다이어트는 감수해야 하는데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성장우선이냐 분배우선이냐를 놓고 말들이 많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떠한 복지국가를 선택하더라도 생산적인 복지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복지국가는 이상이 아닌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가 현실인 이상,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는 복지국가가 모든 국민의 복지를 위해 생산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스웨덴 모델이 자랑하는 ‘생산적’ 복지는 소모적인 현금급여보다는 육아, 양로, 교육 등에 대한 생산지향의 사회서비스를 통해 구현된다. 이러한 사회서비스 지향의 정책노선이 생산적인 이유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통해 새로운 생산성을 창출하고 출산율을 높임으로써 차세대 인적자본을 양성하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 지식인들도 한국형 복지국가의 비전과 설계도를 보다 전향적인 시각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할 사실은 미국도 일본도 그리고 스웨덴도 아닌 우리만의 복지국가를 어떻게 일구어가야 할지를 근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기댈 곳이 ‘사람’밖에 없다면 사람에 투자하는 복지국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어떨지, 최근 스웨덴 관련 논쟁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월간 헌정 11월호에 기재된 글입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6년 11월호(제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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