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인? 노숙인?
거리생활을 하고 있거나 거리생활 경험 후 무보증월세 등에 거처를 두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노숙인쉼터나 부랑인시설에서의 생활 경험을 듣곤 한다. 한 사람으로부터 말이다. 지금도 한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각기 다른 시설에 머물고 있다.
노숙인과 부랑인의 가시적인 공통점은 무주거(無住居)다. 앞으로는 영어가 대세일 거라니 영어권의 홈리스(homeless)로 표현해 볼까? 어찌되었든 우리 사회는 이들 홈리스들을 부랑인이나 노숙인으로 부르며 점(·) 혹은 슬래시(/)로 묶기도 하고 가름하기도 한다. 왜일까?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의 부랑인정책과 노숙인정책을 더듬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부랑인정책 훑어보기
실직노숙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전 우리사회의 홈리스는 부랑인, 행려자 등으로 존재해왔고 이들에 대한 국가적 대응 역시 존재했다. 해방직후의 극심한 실업과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부랑화된 국민들에게는 외국의 원조나 선교사의 자선사업에 의한 시설수용보호로 응대했고,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면서 정신교육과 징벌적 강제노동을 부과했다. 국토개발이란 미명 하에 결성한 서산개척단이나 국토건설단 등은 이를 위한 것이었다.
1970년에는 사회복지사업법에 부랑인 선도시설을 복지시설로 포함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내무부 관할 하에서 신고와 단속, 수용은 이어졌다. 이후 1981년 부랑인보호사업의 주무부처에 보사부를 포함하여 현재의 부랑인시설 전체면적의 85%에 달하는 시설을 대대적으로 건립한다. 그러나 이는 당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정화사업이나 국제적인 체육행사 개최를 앞두고 벌인 대대적인 수용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1987년 대전 성지원, 부산 형제복지원의 인권참상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강제수용방침이 수정되었고 주무부서도 보사부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후 2000년에는 ‘부랑인복지시설운영규칙’을 제정하여 법적근거의 완비와 부랑인복지시설의 전문화를 꾀했고, 2005년 <부랑인및노숙인보호시설 설치운영규칙>으로 개정,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노숙인정책 훑어보기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과 도산 등으로 인해 대량의 노숙인들이 발생하면서 노숙과 사회구조적인 모순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인식된다. 이전과는 달리 민․관의 발 빠른 협력을 통해 긴급처방적 수준의 지원책을 마련하게 되는데 집중상담을 통한 대상자 구분, 급식과 임시숙소 제공, 일시적인 일자리 제공 등이 그것이었다. 이후 2000년에 들어서는 쉼터 내 노숙인의 심리적․신체적 상태를 고려해 재활과 자활쉼터로 유형을 구분하고 프로그램들을 공모, 실시하게 된다. 2002년에는 거리지원이 시작되어 상담보호센터를 설치하면서 일정정도 거리와 쉼터를 중심으로 하는 지원체계를 구축해갔다. 법적 기반 없이 운영되는 임시사업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2003년도부터는 법적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당해 7월 사회복지사업법 중 개정령 안에 노숙인 조항을 삽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부랑인및노숙인보호시설 설치운영규칙>으로 개정, 법적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합집합, 가름, 그리고 현실
부랑인과 노숙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사업을 수행하면서 두 단위는 각각의 당면과제를 안고 있었다. 부랑인보호사업은 부랑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제거, 타 분야의 비해 매우 낮은 질적 서비스수준 극복, 수용일변도의 정책 탈피, 대규모시설 내 시설생활자들의 혼합수용, 지역과 연계되는 전문적 프로그램의 부족, 현장지원체계의 부재 등의 해결과제가 있었고, 노숙인보호사업은 취약한 법적기반 극복, 재활 및 자활관련 프로그램의 부족, 쉼터의 전문화 및 유형화, 지역정착을 위한 주거확보, 현장지원체계 미흡 등의 해결과제가 있었다. 노숙인과 부랑인 보호사업 별로 안고 있는 과제의 표현이 다르기는 하나 어느 정도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2003년에 이르러 부랑인․노숙인 통합지원체계구축을 위한 연구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는 시설운영관련제도 뿐만 아니라 폭넓은 제도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 결과 개정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시행규칙’속에서 체계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충분한 교집합을 묶어내지 못한 수준에 대한 현장실무자들과 관련 전문가들로부터의 우려가 있기도 했다. 실제로 ‘거처(居處)’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부랑인시설은 생활시설로, 노숙인쉼터는 이용시설로 규정되었던 점도 그러했고, 동 규칙내 노숙인과 부랑인의 정의에서도 그러했다. 잠시 정의를 살펴보자면 노숙인은 ‘일정한 주거 없이 상당한 기간 동안 거리에서 생활한 사람’으로, 부랑인은 ‘일정한 주거와 생업수단 없이 상당한 기간 동안 거리에서 생활한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부랑인과 노숙인의 가름은 ’생업수단‘인 거다. 이 가름은 상당히 추상적이며 현실적이지도 않다. 현장에서 거리생활자에게 ’생업수단 있으세요?‘ 하고 물을 건가?
그래도 이 즈음이라면 소통의 여지는 있었다. 지방분권화의 대세는 부랑인과 노숙인보호사업 두 단위를 결정적으로 가르게 된다. 2004년 말 발표된 정부혁신지방분위위원회의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이 그것이다. 정비방안은 사회복지사업법 내에 함께 묶여진 부랑인및노숙인보호사업을 양분해 노숙인보호사업은 지방이양사업으로, 부랑인보호사업은 국고보조사업으로 편재했다.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및‘으로 연결해 한 지붕으로 들어갔나 싶었는데 대문을 따로 쓰란다. 결과적으로 그간 ’홈리스의 지역사회정착‘을 목적으로 추진되던 부랑인보호사업과 노숙인보호사업의 통합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되었고 특히 주거지원을 주축으로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던 노숙인보호사업에서는 더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각 지자체가 예산을 ‘알아서 쓰게’된 이후 노숙인보호사업의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간단한 예를 보자. 지난 해 9월 서울시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거리노숙인을 ‘일반노숙형’과 ‘부랑형’으로 나눌 것을 관할 4개 상담보호센터(거리노숙인 이용시설)에 지시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세부구별 기준’에 따르면 부랑인은 “위생상태가 불량하고, 취침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전염병 또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일자리가 주어져도 일할 의지가 없는 경우”니 구분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며, 예산편성을 고려한 미루기다
그리고 그를 가능하게 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의와 협력 부재다. 최근 발표되는 정책안들을 보면 새 정부는 복지분야에 있어서도 경쟁과 효율을 도모하는 듯하다. 이러한 기조 하에 가시적인 성과를 목표로 얼마나 노숙인과 부랑인을 가르고 골라낼지 사실 걱정이 더 크다. 오랫동안 국가는 부랑인과 행려자라는 이름의 거리생활자들을 격리수용해왔다. 그리고 예산과 효율을 앞세워 부랑인과 노숙인이라는 이름으로 가르는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가를 만큼 갈랐으니 이제는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묶어내는 작업을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2월호(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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