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바우처‘의 도입, 과연 수요자 중심의 능동적 보육정책인가?
백선희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제는 능동적 복지이다. 김대중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노무현정부의 ‘참여복지’를 거쳐 국민은 이명박정부 안에서 ‘능동적 복지’를 맞이하고 있다. 능동적 복지를 통해 삶의 질의 선진화를 이루어 선진 인류국가로 도약한다는 비전과 전략이 발표되었다. 그 가운데는 ‘수요자 중심의 보육정책 개편’이 중점 과제로 포함되어 있고, 그것의 핵심은 보육바우처의 도입이다. 보육바우처는 과연 수요자 중심의 능동적 복지인가?
보육정책은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정책의 하나였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시킬 수 있는 생산적 복지정책이었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적인 참여복지정책이었다. 보육정책에 대한 관심은 정당을 초월하였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에 각 당은 앞 다투어 보육정책의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공립보육시설의 확충이나 보육료 지원의 확대에 이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통합신당보다 더욱 진보적으로 ‘무상보육’을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제시하였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특히 일 하는 여성들에게는 그 어떤 공약보다도 매력적인 것이었고, 실제로 많은 여심(女心)이 표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수위 활동을 거쳐 MB정부가 확정한 보육정책의 방향은 ‘무상보육’이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의 재편’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수요자 중심이 뭘 의미하는지 따질 필요도 없이 무상보육 공약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필자는 이러한 바꿔치기에 놀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당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무상보육(실제로는 의무보육)’을 주장했다는 것이 놀라웠을 따름이었고, 그래서 신뢰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낳기만 하십시오. 아이는 국가가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노무현대통령에 실망한 국민들이 또 다시 이명박 후보의 무상보육 공약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그 얼마나 실망하고 분노하게 될 것인가? 정책 의지를 갖고 추진은 했지만 달성하지 못한 것과(노무현정부 때 보육예산은 유래 없이 급팽창하고 보육정책은 확대되었다), 후보당시의 공약을 대통령이 되자마자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가 아닌가?
잠시 억울함을 뒤로 하고, ‘수요자 중심 보육으로의 재편’에 대해 살펴보자. 능동적 복지를 통해 삶의 질이 선진국 수준으로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수요자 중심의 보육’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이것은 공(公)보육과 함께 노무현정부 보육정책의 주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수요자 중심의 보육은 ‘수요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2005년 이후 보육예산 집행방식의 기조가 공급자인 시설에 제공하는 방식(시설별 지원)에서 수요자인 아동에게 보육료를 지원하는 방식(아동별 지원)으로 전환해 가기 시작하긴 하였지만 사실상의 큰 변화는 없었다.
수요자의 욕구는 서비스의 내용과 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노동시장의 다양화로 인해 기본 보육시간(오전 7시30분~오후7시30분)으로 해결되지 않는 야간보육, 24시간보육, 휴일보육 등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응하여 왔다. 또한 서비스 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다는 것을 반영해 보육교사 국가자격증제도를 실시하고 보육시설평가인증제도 등을 시행하여 왔다. 한편, 보육예산의 집행은 시설 운영비 지원 비율보다 보육료 지원 비율이 더 높았는데 이것은 의도적으로 시설운영비 지원을 줄였다기 보다는, 운영비 지원 대상이 되는 공공보육시설(국공립 및 법인)이 전체의 10%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동에 대한 보육료지원이 크게 급증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측면이 더 강하다. 어찌보면, 민간보육시설에 기본보조금이 지급되면서 보육시설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수요자 중심의 보육을 말하면서도, 현 정부의 대응책은 사뭇 다르다. 인수위의 백서나 보건복지가족부의 대통령 보고에 나타난 수요자 중심 보육의 핵심은 ‘전자 보육바우처의 도입’이다. 전자바우처는 신용카드와 같은 전자카드에 보육료 지원액을 미리 적립해 주어 이용자가 보육시설 이용시 마치 신용카드로 결제하듯이 지불하는 방식인데, 현재 정부에서 보육시설로 직접 지원하던 전달체계를 정부가 이용자에게 바우처(보육료 지원액이 입금되어 있는 카드)를 지원하면 이용자가 그것으로 보육시설에 지불하는 전달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전자바우처의 목적은 수요자에게 보육시설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이용자에게 국가가 얼마짜리 보육료를 지원해주고 있는지 명확히 인지(체감도 제고)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우처는 수요자 중심의 의미를, ‘수요자의 다양한 서비스 욕구를 고려하는 정책’에서 ‘소비자가 보육시설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정책’으로 바꾸어 놓았다. 현금과 비슷한 바우처를 무기로 소비자는 보육시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보육시설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무한 경쟁을 통해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거나 도태될 것이라는 기대에서이다. 과연 그러할까?
보육바우처는 다른 사회복지서비스 바우처와는 다르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보육정책에 미치는 파장의 폭이 매우 달라질 것이다. 크게 세 가지 형태를 예측해 볼 수 있다.
첫째, 보육바우처의 사용을 기존의 보육시설에서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지금도 수요자에게 보육시설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형태의 바우처는 선택권 확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행정만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
두 번째는 보육바우처의 사용을 보육시설에만 제한하되 영리법인의 보육시설 진출을 허용하면서 보육시설간 경쟁을 유발하는 방법이다. 영리법인의 도입은 한나라당의 보육정책 방향의 하나로 소개된 바 있다. 이 방식은 보육시설 공급량을 증가시켜, 경쟁을 유발하여 보육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영리법인은 진입의 전제조건으로 보육료 자율화를 요구할 것이고, 보육료 자율화는 보육료의 상승과 무한경쟁을 가져올 것이며, 대형 보육시설로 인해 소형 보육시설이 잠식될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형태로 고소득층은 비싼 보육료로 높은 질(?)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과 저소득층은 보육료 상승으로 인해 오히려 보육시설 선택의 폭이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보육료 자율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바우처가 보육료 자율화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보육바우처의 사용기관을 보육시설에서 유치원으로, 나아가서 사설유아기관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향은 유치원 또는 사설유아기관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보육시설로 진입하기 어려운 영리법인은 사설유아기관을 개설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전체 유아를 대상으로 한 시장은 크게 확대되면서 무한경쟁시대가 될 것이다. 수요자 입장에서도 가장 폭 넓은 선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보육’의 의미와 내용, 운영 주체, 국가 역할을 둘러싼 한바탕의 논란이 일어날 것이다. 보육과 유아교육이 같은 선상에 서고, 심지어는 보육과 사설교육이 같은 선상에 서게 된는 현실에서 보육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정부의 지원예산은 지금보다 최소한 2~3배 이상 증가하게 될 것인데, 예산 증가만큼이나 일하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의 지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사설유아기관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고, 보육정책의 실종이다. 또한 위 세 가지의 어떠한 형태이든지 영아보육을 위한 이용자 부담이 증가될 우려가 있다.
이처럼 MB정부가 도입하려고 하는 보육바우처는, 기존의 보육료 지원을 단순히 바우처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국민들에게 현금이 들어있는 카드를 손에 쥐게 함으로써 정책의 체감도를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선택의 폭을 넓히지 못한다. 그래서 정부가 선택의 폭을 넓히려 한다면, 영리법인의 허용이나 유아학원의 인정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보육료 자율화가 수면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육료 자율화는 서비스 비용의 이원화, 서비스 질의 이원화를 가져오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영유아들은 어릴 적부터 일등국민과 이등국민의 계층화를 겪게 될 것이다.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보육의 관리감독의 권한을 사실상 정부에서 소비자로 넘기고 있지만, 정작 보육시설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소비자는 좋은 선택을 하기 어렵다. 보육시설이 선택받기 위해 경쟁을 함으로써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눈에 보이는 인테리어와 화려한 교구교재로 보육료만 올라가고, 정작 중요한 부모와 아동의 욕구를 고려한 보육서비스, 보육교사의 자질, 건강과 안전상의 문제가 소홀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국공립보육시설마저 태부족인 현실에서 가난하고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영유아들이 인생의 출발선에서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
MB정부의 수요자 중심의 보육에는 전자바우처 이외, 보육료 지원 확대나 취약지역 중심으로 국공립보육시설을 확대한다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세 가지 3종 셋트는 저소득층은 주로 국공립보육시설에서 보호하고, 중산층 이상은 바우처를 갖고 시장에서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의 다름 아니다. 이쯤 되면, MB 정부의 수요자 중심으로의 능동적 보육정책이란 수요자의 다양한 육아서비스 욕구를 고려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수요자에게 시설 선택권을 준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으며, 능동적 복지란 정부가 능동적으로 보육문제에 대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장이 능동적(활성화)으로 작동하고 수요자가 능동적으로 보육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처럼 보여진다.
공보육의 실현 또는 육아의 사회화는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의 증가로 인한 가정 내 육아의 공백 그리고 저출산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우리 사회의 커다란 숙제가 되어왔다. 공보육이나 육아의 사회화는 정부가 ‘돈’을 지원하고, 그 돈으로 시장에서 재화를 구입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보육바우처가 자율화에까지 연결된다면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보육기관, 서비스 질 관리의 지도감독권까지 약화된다. 보육은 왜 공공서비스이어야 하는가? 보육서비스의 우선적 대상은 누구인가? 보육서비스는 무엇을 제공해야하는가? 보육의 기본을 다시 한 번 살필 필요가 있다.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4월호(제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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