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종 (다함께 janghj@counterfire.or.kr))
이명박 인수위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어떤 안이 채택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인수위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된 3가지 안은 모두 ‘더 내고 덜 받는’ 개악(改惡)안이다. 따라서 조만간 지난해 연금 개악 당시 벌어진 논란과 반발이 재현될 듯하다.
사실 노무현 정권 5년은 ‘역주행 5년’이었다기보다는 이명박의 앞길을 닦아 준 5년이라고 하는 게 적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명박 당선의 일등 공신이 바로 ‘배신자 노무현’ 아닌가.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일이지만 노무현은 2002년 대선 당시 ‘재정 안정 때문에 국민연금을 용돈 연금으로 만드는 것은 앞뒤가 바뀐 논리’라며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에 반대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연금 개혁의 논리를 이처럼 잘 반박하는 말이 또 있겠는가?물론 막상 당선 뒤에는 정 반대로 행동해서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유행했지만 말이다. 새로 당선한 이명박이 노무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 깜빡이를 켜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이명박 인수위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먼저 세우고 이에 복지 정책을 끼워 맞추려 한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의 화려한 복지 공약들을 실제로 어떻게 추진할 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대로라면 그 공약들은 “경제 성장하면 비정규직 써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에 발을 맞출 듯하다. 따라서 이명박이 추진할 연금 개혁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국민연금 문제를 다루는 시민․사회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곤란하게 여기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사람들이 연금 제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이 ‘연금 폐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의 목표와 전술을 제시하려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글이 그런 토론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길 바란다.
먼저 도대체 사람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적게 내거나 안 내고 많이 받는 연금을 원한다. 여론 조사 등에서 연금 폐지를 원한다고 답한 사람들이 연금을 받기 싫다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사실 누가 이를 부정하겠는가. 따라서 제일 먼저 대중의 바람대로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것이 가능한지 살펴봐야 한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으니 정당한 요구도 아니라는 식으로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 불합리한 시장 지상주의 체제에서 불가능한 요구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이라면 그 논리의 끝은 노무현과 이명박이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복지
사회의 부를 직접 만들어낸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업주들과 부자들이 그 대부분을 독차지하는 것은 이 체제가 가진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결함이다. 그리고 연금을 포함한 모든 복지 제도의 본래 취지는 사회적 재분배를 강화해 이런 결함을 부분적이나마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 1퍼센트가 전체 사유지의 50퍼센트 이상을 독차지하는 반면 10년 동안 아파트를 지어 온 노동자가 집 한 채 갖지 못하는 현실, 천문학적 액수의 부를 가진 자들이 힘 안들이고 돈을 벌어들이는 반면 수십 년 동안 은행에서 일한 노동자의 통장에 빛만 늘어가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려면 현직에 있을 때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한 모든 노동자들은 최대한 그 부담에서 해방돼야 한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누구나’ 나중에 받을 만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가진 자들의 편을 드는 것밖에 안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복지 국가들에서도 대부분의 복지 제도들이 실제로는 노동자들 자신이 낸 세금으로 유지됐고 원래 취지인 재분배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민주노동당의 구호는 사회적 재분배의 정신을 가장 잘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원칙 하에 가능성 여부를 따져 볼 수 있다. 가능성은 두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그렇게 해서 연금 제도가 지속 가능한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주․부자들에게 모든 보험료를 내도록 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스웨덴 사례를 보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90년 연금 개혁 이전에 스웨덴 노동자들은 연금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소득비례 연금 보험료율이 현행 한국 연금 보험료율보다 높은 13퍼센트였지만 실제로는 고용주들이 이를 전액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주류 정당․정치인들과의 협상도 필요하겠지만 이들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고 무엇보다 양보하도록 강제할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 스웨덴을 비롯해 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 복지 제도들이 안착되는 과정에는 항상 이 거대한 힘을 행사하거나 혹은 행사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럴듯한 정책 구상만으로, 혹은 노동자들이 먼저 양보해 그들의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지난해 연금 개혁 과정에서도 봤듯이 항상 뒤통수를 맞을 뿐이다.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같은 노동자 대중조직의 구실이 대단히 중요하다.
전자의 경우 연금뿐만 아니라 모든 복지 제도, 즉 사회적 재분배 제도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의 지속 가능성 여부이다. 수백 조 원에 달하는 기금은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있든지 불가피하게 경기 상승과 하강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최근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불러온 세계적 신용 경색 위기는 주식과 채권에 투자된 연기금의 가치를 크게 낮출 수 있고 최악의 경우 공황이 닥치면 몇 년 안에 고갈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이 실제와 크게 엇나간 데서도 볼 수 있거니와 무정부적 경쟁에 의존하는 시장 경제 체제에서 몇 십 년은 고사하고 몇 년 뒤의 경제 상태를 예측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40년 뒤에 기금이 고갈되니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을 덜 받으라’는 정부의 논리는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짙다. 실제로 정부 예측대로 하더라도 앞으로 20년 동안은 연기금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대 간 갈등’이라는 말도 비슷하다. 현재 한국 노인들의 소득에서 ‘사적 이전’ 즉, 자식들이 주는 용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퍼센트 가까이 되는 반면 공적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4퍼센트에 불과하다.
만약 공적 연금 비중이 스웨덴처럼 60퍼센트를 넘으면 어떻게 될까? 현 세대에게 많은 연금이 지급되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된다. 노인 가구 전체의 30퍼센트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후 생계를 개별 가정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것의 장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 경우에도 어느 세대가 재정 부담을 질 것인가가 아니라 동시대에 어느 계급, 계층이 부담을 질 것인가가 핵심이다. 세대 간 갈등이라는 말은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해관계 대립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동시대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의 경제체제를 근본으로 변혁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경제체제 하에서 기업주․부자 들에게 고율의 세금과 누진 보험료를 부과하고, 군비를 줄이고 복지 예산을 늘리는 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빠르고 쉬운 길인지는 토론해볼 문제지만 개인적으로 후자가 전자에 비해 쉽다고 여길 근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유럽 복지국가들의 ‘개혁’이 기존의 복지제도들을 많이 침식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다만 후자의 경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과식 체계로 전환하는 것은 고려해볼 만하다. ‘연기금 고갈론’이나 ‘세대 간 갈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힘을 크게 약화시킬 뿐 아니라 당장 누가 부담해서 누구에게 연금을 지급할 것인가 하는 첨예한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를 회피해서는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다. 또 복지국가들의 연금 개혁 과정에서 보듯 적립식 연금 체계에서 적립된 기금은 일종의 투자 ‘펀드’ 구실을 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고 말이 좋아 투자 펀드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기 펀드들 명단에는 항상 각종 연기금 목록이 포함된다. 고 생각하는 시장주의자들에게 거대한 펀드 조성은 보험료 부담을 회피하고 투자 자본을 굴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겠지만, 막상 보험료를 낸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늘 기금 고갈 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일자리도 위협받는 ‘설상가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사학 연금 삭감에 반대해야 한다. 애초에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핑계삼아 공무원연금을 공격하려 했다. 문제는 국민연금과 달리 공무원․사학 연금의 당사자들이 강력히 조직돼 있었고 정부의 공격에 맞설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공무원연금도 삭감됐을 것이고 이를 핑계로 국민연금 삭감도 정당화하려 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을 이간질시켜 각개격파하는 것은 정부와 기업주, 주류 언론들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해 온 오래된 전술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우는 순간 이런 전술은 완전히 무력해진다. 그러려면 서로의 이익을 옹호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은 정부와 기업주․부자 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첫 번째 원칙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 봐야 할 듯하다. 사실 사람들이 연금 제도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할 때는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왜 내가 이렇게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정부가 매달 꼬박꼬박 돈을 준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도 없고 그걸 마다할 사람도 없다. 문제는 앞선 논점들에서 잘못된 결론을 내렸거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는 시민․사회 운동의 활동가들이 노동자들에게 ‘더 내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정당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그걸 누가 ‘이해’하려 하겠는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 일부가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제안을 했고 당연히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진정한 연금 개혁을 바라는 이들은 노동자들에게 ‘사회연대 의식’ 같은 것을 계몽하려 하기보다는 이명박의 연금 개악 시도에 맞서 실제로 이를 좌절시킬 대중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것이 연금 제도의 진정한 취지를 지키는 길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5월호(제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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