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4월 11일 올해 들어 처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를 열어 소위 신용불량자구제금융을 위한 기금사용건을 처리하였다. 지난 3월말 느닷없이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합동으로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뉴스타트’프로그램이 발표된 지 20여일말에 빠른 수순을 거쳐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연금제도 및 그 기금과 관련해 제법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될 수밖에 없어 이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과정에 첫 번째 문제는 청와대 및 경제부처의 연금기금에 대한 불순한 발상에 있다. 즉,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언제나 연금기금이 자신들의 정책적 수단이자 도구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 경제관료들까지 경제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의 부족을 탈피하는 방책으로 잠자고 있는 연금기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편의적 발상이 가해지면 이번처럼 신용불량자의 미상환금을 위한 은행대출금의 담보로서 연금기금을 활용한다는 발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새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원회에서 이미 공약한 신용불량자에 대한 구제책인 바에야 별달리 진지한 내부 검토가 필요할 리가 없다.
둘째, 이 발상은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정책에 의해 대출되는 3,900억원, 그리고 그 이자로서의 420억원이 갖는 금액의 많고 적음을 굳이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연금기금이 정부의 예산과 동일하다는 인식을 또 다시 공고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정부가 사용권을 쥐고 있는 쌈지돈으로 연금기금을 보게 되는 데에 또 다시 일조했다. 이는 연금기금에 대한 운용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가입자를 대표하여 국민연금기금관련 위원회에서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역할을 하며 성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의 칼을 휘두르는 위원들의 활동들이 허사가 되는 순간이다. 더군다나 재정의 안정성을 그렇게 강조하던 정부가 스스로 재원의 손실을 유발할 수 있는 정책결정을 서슴지 않는다는 국민의 시각은 차후 제도의 불신으로 부메랑되어 되돌아오게 된다.
셋째, 국민연금기금이 갖는 사회적 연대기금으로서의 성격을 부정하는 발상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낸 국민들이 그 기여도를 근거로 향후 노후에 급여를 받는 것이기는 해도 보험료 납부액과 노후 급여액 간에는 계리상(計理上)의 연관관계는 없다. 따라서 비교적 조기사망한 노인들은 자신의 납부액을 밑도는 급여를 받는 것이요, 평균수명을 다하고도 그 이상으로 생존하는 노인은 자신의 납부액보다 몇배에 해당하는 급여총액을 누리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지불한 보험료가 고갈되어도 다른 이들에 의해 그 급여가 보장되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연금기금은 사회연대기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자신이 낸 보험료 총액의 이분의 일에 해당하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는 담보금이 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보험료 납부액에 대한 계리상의 소유 의식을 발생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차후 누구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호소하면서 보험료를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다면 연금기금의 사회적 의미는 급격히 쇠잔해 지고 말 것이다.
넷째, 이러한 대출 담보금으로의 사용이 국민연금법의 기본 취지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법 제58조는 “급여를 받을 권리는 양도, 압류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동법 46조에서는 가입자의 복지증진과 기금증식에 한해 대여사업을 허용하고는 있다. 따라서 연금수급권을 갖는 보험료 납입금을 담보로 한신용불량자 채무변제사업은 상환이 어렵다는 점에서 가입자의 복지 증진에도, 기금증식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 조항은 과거 복지사업을 위한 근거 조항으로 기금 이자율이 낮다는 이유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기본적 법률검토도 없이 즉흥적으로 정책을 발표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다섯째, 신용불량자의 노후 소득보장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근시안적이다. 이미 1998년 실직자를 위한 대부사업을 행한 결과 9.5%만이 상환한 결과를 고려할 때 이번 신불자 대상의 대출사업에도 미상환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그들의 수급액에서 변제될 것이므로 그들의 노후 소득이 손상을 입는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현재 광범위한 연금사각지대가 노령빈곤 문제를 야기하리라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여섯째, 금번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2000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가입자와 사용자대표가 위원회의 과반수를 차지한 이후 처음으로 표결로 가입자 중 일부의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배제한 채 정부의 원안을 강행처리한 흠결을 남겼다는 점도 제법 심각한 사안이다.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표면적으로는 가입자와 사용자단체 대표가 과반을 넘어섰다해도 실질적으로 보면 참여단체나 기관의 성격을 볼 때 정부친화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어 불안한 참여민주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음에도 표결이란 극명한 방식의 처리과정은 없었다. 더군다나 실무평가위원회를 거쳐 위원회 안건에 대한 사전심의와 보완을 거치지 않은 채 막바로 본위원회에서만 논의하였다는 점은 강행의도를 처음부터 명확히하고 위원회의 결의과정을 통과의례로 삼았다는 점이 너무나 명백하다. 연금기금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 정신을 지켜온 지난 10년간의 성과가 청와대의 의중을 받들어 모시려는 복지부의 과잉충성이 하루아침에 깨진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며 재발에 대한 방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이제까지처럼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낸 채 정부의 신용불량자구제사업은 시도할 수있게 되었지만 그 후유증과 눈에 드러나지 않을 사회적 손실비용은 결코 가볍다할 수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와 독립성 확보의 의미가 얼마나 절실한 지 다시한번 각인했다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파행적 운용의 서곡이 울린 지금 근본적인 개선책을 서두르지 않으면 이 서곡은 조곡(弔哭)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국민연금기금 관리체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5월호(제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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