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소득보장정책의 쟁점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위기상황에서 집권한 두 정권
기묘하게도 이명박 정부 1년의 상황은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권이 집권했을 때와 비슷하다. 두 정권 모두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과 늘어나는 빈곤층 문제에 노출되었고 이 문제로 씨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직면하고 있다. 두 정권의 대응의 차이를 논하기에는 아직 시기적으로 적절해 보이지 않지만 대응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 특히 빈곤문제에 대한 대응은 일시적이고 응급적인 대책과 제도화된 대책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두 정권 모두 일시적, 응급적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명박정부가 ‘제도화’된 대책을 매우 기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김대중 정부는 고용, 산재,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확대와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등 빈곤대책으로서 사회복지의 제도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제도화된 대책을 보이지 않고 있다. 3월 12일 발표된 이명박정부의 ‘민생안정 긴급지원 대책’은 이명박 정부의 빈곤대책의 상징이며, ‘긴급’적 성격을 갖고 있고 제도화된 내용을 거의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명박정부 1년 동안 나타난 소득보장제도의 변화를 몇 개 중요한 주제로 나누어 개괄하고 이를 평가해 보기로 한다.
‘민생안정’ 긴급지원 대책: 한시성의 한계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소득보장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소득층을 겨냥한 올해 3월 12일 발표된 6조원 규모의 ‘민생안정 긴급지원 대책’이다. 비교적 큰 규모로 제시된 이 대책은 크게 저소득층의 생계지원, 교육비지원, 그리고 주거비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대책은 두 가지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국제적인 경제위기로 경제사정이 너무 악화되어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부자들에게 집중된 감세정책에 대한 불만을 완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감세를 통해 부유한 층에게 혜택을 주는 반면 빈곤층에게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다는 그 동안의 평가를 상당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30조원을 넘어가는 대규모 ‘슈퍼 추경예산’에 대한 야당의 반발을 무마시킬 명분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대책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지금 같은 경제상황에서 6조원의 예산이 저소득층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은 윤리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좋은 일이다. 윤리적 측면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공동체 성원의 보호라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경제적 측면에서 내수의 기반을 넓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만약 노무현정권에서 이 정책이 나왔다면 ‘퍼주기 복지’라는 우파들의 비난이 쏟아졌을 테지만 다행히 이런 비난도 없다. 또한 대규모의 추경예산 편성으로 예상되는 적자재정이 가져올 후유증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올 법 하지만 과거정권에서 그렇게 비난받던 국가재정의 부실화(!) 대한 우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대책의 한계는 대규모의 예산배정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상처 난 부위에 소독약 바르는 대증요법이라는 점이다. 정부에서도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한시적 지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고, 기초생활보장법으로 대표되는 빈곤층 소득보장의 기본 틀을 바꾸는 정책은 없다. 빈곤층 대책의 핵심으로서 기초법은 그 동안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가장 큰 문제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갖고 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및 재산기준 때문에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빈곤층의 사각지대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 부양의무자 및 재산기준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는 않았으며 그 기준을 한시적으로만 완화하였을 뿐이다.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의 변화 중에서 특이한 것은 빈곤층의 질과 규모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며 기존의 제도화된 빈곤프로그램은 빈곤의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프로그램도 빈곤층 보호에 구멍이 뚫린 마당에 한시적 대책의 효용성은 매우 의문시된다. 때문에 이명박정부는 빈곤층의 구조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화된 프로그램의 대폭적으로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
이번 빈곤대책에서 나온 새로운 시도 중의 하나는 빈곤층중 근로능력이 있는 계층(최저생계비 120% 이하자 중 기초법 미수급자) 40만 가구에게 공공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50%는 현금급여를 지급하고 나머지 50%를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것이다. 예산 규모가 단일 프로그램으로는 가장 큰 2.6조원 규모이기 때문에 결코 적지 않다. 재래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은 지급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사용해야 하는 일종의 바우처로 볼 수 있다. 제대로 시행되면 재래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우선은 그 쿠폰을 사용하는 이용자의 낙인감이다. 백화점 상품권을 사용하는데 낙인감은 없지만 쿠폰은 상당한 낙인감을 동반할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쿠폰 소비시 수급자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쿠폰의 오용 가능성이다. 쿠폰을 모아 현금으로 맞바꾸기 하는 이른 바 ‘쿠폰깡’ 현상이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이미 나타난 것이다. 이런 염려 때문인지 사용기간을 3개월로 한정한 것인지는 몰라도 사용기간과 사용지역 제한한 것이 오히려 이용자의 불평과 불만 그리고 소비 진작 효과를 억제할 가능성도 있다.
소득보장의 행정체계 개편
소득보장의 행정체계 개편은 4대 사회보험의 보험료 부과징수 기능의 일원화 문제이다. 참여정부는 4대 사회보험의 보험료 징수와 자격관리를 국세청 산하에 공단을 신설하여 이관하는 방안을 만들었으나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이명박정부는 국세청으로 징수기능을 이관하는 대신 건강보험공단으로 나머지 세 개의 사회보험료 징수기능을 이관하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건보공단이 보험료 징수 기능을 맡건 혹은 국세청 산하의 공단에서 징수기능을 맡건 현재처럼 각각의 공단이 개별적으로 징수업무를 하는 체계보다는 효율성 측면에서 더 낳을 것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한국 소득보장제도의 중장기적 발전 방향을 볼 때 과연 어느 방안이 더 낳은 방안인가 하는 점이다. 징수체계가 한국 소득보장과 관련되어 논의되는 초점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문제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대략 가입자의 1/3인 약 550만명이 보험료 납부를 하지 않고 있고 다른 사회보험도 적게는 가입대상자의 20%에서 30%가 제외되어 있다. 이들이 왜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가 하는 점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소득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국세청이관이 의미 있는 이유는 국세청이 사회보험공단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소득파악체계를 갖추고 있고, 앞으로도 갖출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즉, 국세청이 사회보험 징수기능을 떠맡을 경우 현재 소득파악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어 사회보험에서 제외되는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근로자, 영세자영자 등에 대해 보다 강력한 소득파악 체계를 구축하고 이들을 사회보험 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보험공단의 경우는 이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사회보험료 부과징수의 일원화는 효율성과 사각지대 해소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두 가지 방안 모두 효율성의 제고라는 측면을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사각지대 문제에 관한 한 국세청이관 방안이 건보공단으로의 일원화방안보다 훨씬 더 강력한 대책이 될 수 있다.
국세청 이관방안이 건보공단으로의 이관으로 바뀌게 된 것은 여러 배경이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정부의 철학이다. 공공부문의 축소를 지향하는 마당에 국세청 산하에 새로운 공단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철학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 건보공단 이관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효율성’의 명분으로 추진 된 부과징수기능 일원화가 장기적으로 효율성에 역행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기획재정위에서는 한나라당 이혜훈의원의 발의로 국세청이관을 추진하는 법안이 상정되어 있는 상황에 있다. 두 위원회에서 서로 상이한 법률안이 법사위원회를 거쳐 본 회의에 제출될 경우 ‘자유투표’ 형식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기금관리 문제
국민연금의 거버넌스 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의 문제도 소득보장제도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 약 250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은 우리나라 총 GDP의 25%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 기금이 어떻게 투자되고 관리되는가에 따라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 제기되었던 기금관리의 문제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금운용을 직접 관장하는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하여 기금운용공사로 분리하는 것, 즉 별도의 기금운용조직을 만드는 것과 다른 하나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과 관리감독을 강화하여 기금운용 전반을 체계화시키는 것이다. 전자의 문제 즉 기금운용본부를 연금관리공단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은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종적인 입법과정에서 각 부처의 이해관계(특히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라 완전한 분리보다는 공단에 기금운용본부를 두되, 내용적으로는 분리시키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기금운용본부의 분리는 기금운용 담당자들의 인사 및 대우 문제가 정부기관의 인사관리원칙에 따라 제한 될 수밖에 없어서 유능한 인력을 충원하기 어렵다는 점과, 기금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가능한 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금운용조직을 그대로 공단에 둘 경우 그것이 내용적인 독립성을 갖춘다하더라도 원래 의도한 기금운용조직 분리의 목적은 상당부분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문제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구성과 위원회의 기금운용조직 관리감독 문제를 어떻게 재구조화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정부안은 현재 사회적 합의기구의 성격을 갖고 있어 기금운용위회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명분으로 위원 전원을 금융전문가로 채우겠다는 법안을 상정하였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노동계나 시민단체 대표들은 제외되어 이해당사자들이 투자결정에서 소외되는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다. 금융전문가로 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국민연금기금은 수익률 위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근의 국제적인 경제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수익률위주의 기금투자가 파국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비정부 위원들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위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 일정한 제어의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에 이들이 배제되면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무너지는 것이다. 공적연금기금은 수익률보다 안정성 즉 기금의 실질가치 유지가 핵심이다. 수익률 위주의 기금운용이 가져 올 다양한 부작용에 대해 이명박정부는 훨씬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재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성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분기별로 한번 씩 열리는 현행 위원회구조로는 각각의 위원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이다. 때문에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실무위원회를 상설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기금투자분야, 성과평가 분야, 그리고 준법감시분야를 나누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을 상시적으로 보좌하고, 이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실무기구가 제대로 갖추어져야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다. 현재는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가 있어서 이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나 실무위원회도 비상설기구이기 때문에 그 기능에 한계가 있다. 정부 법률에서는 실무위원회의 규정은 있으나 상설기구가 아닌 비상설기구로 되어 있으며 사무국은 행정사무국으로 기금운용기능과는 무관한 조직으로 규정되어 있다. 실무위원회가 상설화되어 있지 않으면 현재의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조직이 될 것은 명확하다. 기금운용의 독립성은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핵심이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위원들이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보좌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구조가 갖춰지지 않으면 현행 기금운용구조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이 근본적으로 보완될 가능성은 매우 약하다.
철학과 중장기 전망이 필요하다.
집권 1년이 지났지만 이명박정부의 복지철학과 원칙, 그리고 방향이 무엇인지 드러난 것이 없다. 능동적 복지라는 용어는 수사적 이상의 의미가 없고, 그 내용을 구체화시키는 노력도 없어 보인다. 가장 특색이 드러난 것이 앞에서 서술한 ‘민생대책’인데 그 내용은 한시적, 응급적 성격이 강한 소득보장정책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경제위기,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진행되는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한시적 대책이 아닌 제도적 대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 이명박정부는 극히 소극적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인 회피를 하고 있다. 경제가 활성화되면 굳이 제도적인 복지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전개되는 한국 경제의 흐름은 이 믿음을 지탱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루어지는 경제 성장마저 혜택이 중상층 이상으로 집중되고 저소득층은 그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6조원’의 한시적 대책으로 저소득층의 상실감을 달래고 나아가 사회통합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시 한번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3월호(제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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