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라 한다)는 2002년 김대중 정권 때 설치된 인권기구이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인권위 설치 논의가 있었지만 그 결실은 김대중 정권 때였다. 이 때문에 인권위 설치를 김대중 정권의 업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그렇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당시 법무부를 비롯하여 인권위 활동과 충돌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던 국가기관들이 인권위 설치에 강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그 때문에 제대로 된 권한을 갖는 인권위법의 제정이 결정적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정적 반응은 인권위법의 날림 공사로 이어졌고, 그러한 부실공사가 오늘의 인권위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만일 당시의 정권이 인권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고 있었더라면, 권력기관의 반발 정도는 과단성 있게 무시하면서 인권위의 위상을 올바로 정립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인권위는 인권관련 정책 권고, 인권침해․차별행위의 조사와 구제, 인권교육 및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해 왔고, 부산광주대구에 지역사무소를 개설함으로써 인권위 업무의 현장성을 높였다.
인권위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가에 관한 올바른 인식은 인권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인권위는 국가기구이면서 동시에 독립기구이다. 인권위는 3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기구이다. 그러한 독립기구의 설치가 법적으로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답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리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가기구이지만 헌법상 3권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이다. 그러한 독립기구는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헌법 제10조 제2문이 규정하는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입법자는 독립적인 인권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는 재반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권위의 업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명령과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인권위의 결정에는 수사기관의 결정이나 법원의 판결과 같은 강제력이 없다. 그래서 인권위의 기능을 가리켜 권고적 기능(advisory function)이라고 말한다. 인권위의 기능이 권고적이기 때문에 인권위의 결정은 실효성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바로 이 권고적 기능이 인권위의 활동의 폭을 넓혀주면서, 인권위로 하여금 그 시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인권의 최고선을 말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권고적 기능은 다른 국가기관의 인권법령, 제도 및 정책과의 충돌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 충돌가능성이 인권위를 인권위답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력을 장악한 세력의 인권감수성이 낮을수록 이 충돌가능성이 현실화될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인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는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실현시켜야 할 가치인가 아니면 정권의 가치관과 충돌을 일으키는 범위에서 후퇴시켜야 하는 상대적 가치인가는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성에 따라 결정된다. 필자가 판단하는 이명박 정권은 후자에 속한다. 마치 과거 박정희 정권이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인권은 유보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권의 가치, 인권위의 존재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시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라 한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인수위는 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만드는 구상을 하였다. 독립성 은 인권위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요소이다. 대통령에 종속하는 인권위, 대통령의 직무상의 명령과 지시를 받는 인권위는 이미 인권위가 아니다. 그것은 청와대 인권팀이에 불과하다. 인수위의 그러한 기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시도한 것이 인권위의 조직축소를 통한 인권위의 불능화이었다. 인권위는 신분보장을 받는 공무원과 민간부분에서 수혈된 인권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권위의 조직축소는 바로 민간부문 인권활동가들을 도려내기 위한 것이다. 결국 현 정권은 인권위 직제령을 개정하여 인권위 208명의 인원을 164명으로 감축하였다.
인권위 축소를 불러온 근거법 조항이 된 것은 인권위법 제18조이다. 이 법에 규정된 사항 외에 위원회의 조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위원회의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의 규칙으로 정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5월호(제127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