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글
남찬섭(동아대, 사회복지학)
최근 정부는 이른바 중산층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거기에 5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하였다. 그보다 앞서서는 이른 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한다면서 2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작년에는 유가인상에 따른 보조금 지급으로 10조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봄에 누군가로부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복지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복지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복지에 엄청 돈을 쏟아붓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조원이면 0이 12개이니 그대로 쓰면 1,000,000,000,000원 이렇게 된다. 백만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1명당 백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10조원이면 천만명에게 한 사람 앞에 백만원씩 줄 수 있다. 20조원이면 2천만명에게, 50조원이면 5천만명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니 이 정부가 복지에 돈을 많이 투입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일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많은 돈의 투입이 제도로 연결되느냐 권리로 보장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정부는 복지를 무슨 자선 베푸는 것처럼 보는 것 같다. 현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날 자신들이 야당이었을 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시도한 복지확대에 대해 퍼주기 복지라며 온갖 비난을 일삼았다. 하지만 진짜 퍼주기 복지는 이 정부가 하고 있다. 수 십 조원이나 되는 돈을 한시적인 대책에 불과할 것들에 마구잡이로 쏟아붓는 것이야말로 퍼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복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필연적으로 생성시키는 모순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으로 강구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른 바 서민의 이해관계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지 생활이 좀 어렵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돈을 써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금액이 조금 적더라도 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재원마련대책과 연동되어야 하고 경제운용과 연동되어야 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남긴 과제는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관계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비전‧전략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현 정부는 이 역사적 과제를 헌신짝 내던지듯 내던지고 있다. 현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종부세 무력화 시도를 하더니 아직도 감세기조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위에서 본 것처럼 수 십 조원의 대책을 남발하고 있다. 이는 정책적으로도 분명 모순이다. 어떻게 세금을 줄이면서 더 많이 쓴다는 것인가? 아마 참여정부가 이렇게 했으면 국가채무가 늘어나서 당장이라도 나라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듯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늘어난 국가채무는 결국은 국민들이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느니 미래세대의 부담이느니 하며 악다구니를 부렸을 것이다. 이 정부는 감세와 퍼주기 복지의 딜레마에 갇혀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맨날 경제 경제 하더니 이렇게 경제에 부담을 주는 퍼주기 복지를 자기들이 스스로 벌이고 있다.
퍼주기 복지의 진수는 대통령의 재산기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재산기부하면 모두 복지재단 설립해야 하는가? 대통령이란 자의 지난 날 행적을 보건대 참으로 웃지 않을 수 없다. 자기가 언제부터 복지에 관심이 있었다고 복지재단 설립인가? 이미 있는 복지기관들에 기부해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 복지재단 설립에 안 써도 된다. 다른 데도 많은 데 왜 하필 복지재단 설립한다고 해서 복지의 이름을 더럽히는가? 그렇게도 하고 싶어 죽고 못하는 4대강 살리기에 그냥 써라! 그렇게 써도 아마 사람들이 욕은 안 할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하고. 그 재산기부로 설립한다는 복지재단은 또 어떤 인간이 이사장이 되어 무슨 말도 되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제발 뭘 좀 모르면 가만이나 있든지 했으면 좋겠다. 퍼주기 복지와 감세의 딜레마는 언론을 장악하여 언로를 막는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딜레마는 이 정부를 파탄시킬 것이며 지난 10년의 기간이 남긴 역사적 과제의 부담을 미래에 더 무겁게 지울 것이다.
퍼주기 복지의 예는 최근 정부가 물불 가리지 않고 추진하는 의료민영화에도 반영되어 있다. 의료를 포함하여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를 추진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서비스 산업 선진화의 방향이나 구체적인 전략, 그리고 그 사회적 파장 같은 것은 매우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필요로 하는 사항이다. 하지만 이 정부는 서비스 산업 선진화를 자신들의 방식대로만 구상하고 실행하려 하며 대안적 방식과의 소통을 하지 않으며(그 단적인 예는 재래시장 방문한답시고 간 대통령이 상인들에게 한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도 퍼주기 복지로 해결하려는 지극히 안이한 생각만을 하고 있다. 퍼주기 복지에 쏟아붓는 돈의 몇 조원 정도면 의료보장성을 지금보다 훨씬 더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제도화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간보험에 지출하는 과도한 금액을 크게 줄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가계는 다른 소비에 여력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관계를 만들어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7월호(제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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