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꿈꾸어 이루어낸 현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의의
여럿이 함께 꿈꾸어 이루어낸 현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의의
여럿이 함께 꿈꾸어 이루어낸 현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의의
문진영
서강대 교수, 전 기초연대 정책위원장
시인 박 노해는 감옥에서 나온 직후, “혼자서 꾸는 꿈은 단순한 꿈에 지나지 않지만, 여럿이 함께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였다. 사실 ‘전 국민의 기초생활의 보장’이라는 꿈도 불과 십 수년 전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먼 나라 사람들의 꿈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는 1980년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면서, 전 국민의 기초생활의 보장(national minimum)을 천명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에 대해서 배웠고, 전후에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어떻게 건설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공부하였지만, 도대체 이것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와 닿지 않았다. 당시에는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감히 넘볼 수 없는 피안(彼岸)의 이상향(理想鄕)으로만 생각하였다. 하기야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였다. 군부 독재의 폭압 하에서, 농경사회에나 어울릴 단색적(單色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전 국민의 기초생활의 보장이라는 사회개혁이 어디 가당키나 한 꿈이었겠는가.
이러한 사회복지학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 국민의 기초생활 보장’이라는 사회개혁의 꿈이 강의실을 박차고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것은 정확하게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당시 사회복지위원회가 ‘국민복지 기본선 운동’을 천명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1990년대 초 동구(東歐) 진영 몰락의 여파가 우리 사회를 흔들었던 시기로서, 우리 사회에서도 체제 변혁적 계급운동보다는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밀착된 개혁이슈들을 쟁점화하고 공론화하는 시민운동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활성화에는 독재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역량을 축적해온 민중운동이 밑바탕 되었지만, 이들 시민사회운동은 민중운동과는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시민사회운동의 기본 방향이 계급관계의 변화 즉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변혁보다는 사회체제의 부분적인 개량을 지향하고 있다. 당시의 예를 들자면, 경실련의 ‘금융실명제 운동’,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건강연대의 ‘통합주의 의료보험제도 운동’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파고들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이슈를 선점하고 이에 대한 운동을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둘째, 시민사회운동은 기존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운동을 전개하기 때문에, 운동의 방법 역시 가능한 한 비합법적 수단보다는 합법적인 공간에서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제도의 변화를 가져오는 목표를 가지고 운동이 이루어졌다. 셋째, 운동의 주체를 계급적 이해관계를 강하게 지닌 노동자, 농민, 빈민보다는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계급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전문가가 주체가 되어 일반 시민들을 설득하고 동참시키는 형태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시민사회가 주축이 된 국민기본선 운동은 위에서 살펴본 우리 사회 시민사회운동의 특징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운동의 목표를 계급관계의 본질적인 변화보다는 전 국민의 기초적인 생활의 보장이라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목표를 설정하였으며, 따라서 운동의 방식도 비합법적인 투쟁보다는 합법적인 공간에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제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또한 운동의 주체 역시 계급관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홍보하여 동참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운동은 1990년대 말 미증유의 IMF 경제위기를 겪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당시 개발연대의 종막을 고하는 IMF 경제위기로 우리 사회가 저성장 고실업 사회로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생계형 범죄가 창궐하고, 가족해체가 급격히 진행되는 등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혼란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회혼란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 특히 경제부처에서는 빈곤과 실업의 문제는 우리 경제가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으리란 안일한 사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시적이고 미봉적인 대책만을 양산하였다. 이렇듯 개발연대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참여연대는 전열을 재정비하여 본격적으로 국민복지 기본선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1998년 7월에는 26개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현재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모태가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입법청원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이 법(안)은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데다가 기획예산처에서 추가 소요예산에 대해서 난색을 표명하는 바람에 국회 상임위에 부의조차 되지 못한 채 좌절하고 말았다.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해법이 바로 새로운 조직의 건설이었는데, 이 조직이 바로 참여연대, 양대 노총, 경실련, 민변, 여연 등 우리 사회의 주요한 64개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서 결성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추진 연대회의(이하 기초연대)』이다. 1999년 1월부터 약 2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그해 3월 정식으로 발족한 기초연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이란 단일한 목표를 위하여 매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고, 특히 이 법을 반대하는 세력들과 치열한 논쟁과 싸움을 거쳐서 결국 1999년 8월 제206회 임시국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통과되고 같은 해 9월 7일 제정되었다.
시민의 힘으로 쟁취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시민의 ‘사회적 권리’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생활보호법에서 한 차원 발전한 매우 개혁적인 법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법률용어에서도, 시혜적 성격이 강하게 남아있는 보호대상자, 피보호자, 보호기관 등에서, 수급자, 수급권자 그리고 보장기관 등으로 권리성 급여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한 제도의 내용 면에서도, 1943년 일제의 조선구호령 이후 계속 유지되어 왔던 인구학적 구분의 철폐(자활보호대상자에게 생계급여 가능), 소득인정액의 도입, 자활프로그램의 강화, 주거급여의 신설 등을 통해서 제도를 합리화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공공부조제도로 발전하였다. 사회복지계의 큰 관심사였던 사회복지전문요원의 일반직화와 충원을 이루어짐으로써 제도운영의 원활화를 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의 의의를 정리하자면, 첫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7조에서 수급자에 대한 급여는 소득인정액을 포함하여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복지국가의 가장 기초적인 제도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최저선(national minimum)이 확보되었다. 둘째, 이 법의 제정을 통하여 한국 공공부조제도가 전통적인 노동불능자에게만 극소한도의 급여만을 제공하는 구빈법적 전통을 벗어나 근대적 의미의 공공부조제도로 발전하였다. 즉 기존의 생활보호제도가 빈민에 대한 국가의 자선적‧시혜적 차원에서 운영되었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가의 책임과 국민의 권리가 명시됨으로써 헌법에서 보장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구체적 권리의 성격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저소득층의 최저생계보장이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공공부조적 성격과 더불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는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빠지지 않고 근로의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건부 수급제도와 소득공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이 법이 한국 사회에서 정착되었다고 해서, 전 국민의 기초생활의 보장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앞에는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할 강이 수없이 남아있다. 이런 점에서 전 국민의 기초적인 생활의 보장이라는 꿈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법의 제정과 제도의 시행으로 인해서, 기초생활의 보장이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적인 과업이 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당시 여의도의 한 카페에 모여 법 통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기초연대 집행위원들이 법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했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입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실천적인 연대의 힘으로 기득권층의 완강한 반대를 뚫고 꿈으로만 생각되던 사회개혁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당시 우리는 거의 전율에 가까운 희열을 맛보았다. 그 때의 그 희열이 우리들의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한, 우리는 평생 동안 이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다짐을 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9월호(제131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