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10-01   1297

[동향2]복지라는 국민의 권리, 과연 어디 숨었을까?


 복지라는 국민의 권리, 과연 어디 숨었을까?

– ‘빈곤실태조사’ 활동을 통해 느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10주년의 현실 –

 


임병호(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안녕하세요. 여느 대학생들처럼 등록금과 졸업 후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88만원세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올해 졸업반 임병호라고 합니다. 전 싫어하는 정당은 있지만,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은 없는, 집회도 붙잡혀 갈까봐 무서워서 안 나가는…….. 정치색도 흐리멍텅 하고 겁 많고 소심한 그런 학생이랍니다. 그런 제가 이번 여름방학에 참가한 ‘참여연대 희망복지학교’를 계기로, 동자동 사랑방이라는 단체와 연이 닿아 ‘빈곤실태 조사’라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 같은 평범한 학생의 시선에서 활동하며 느낀 바들을 말씀드리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주위 분들의 말씀에, 한없는 부족함을 무릅쓰고 용기내서 이렇게 펜을 잡습니다.
 
 우선, 제가 참여했던 ‘빈곤실태조사’가 어떤 활동인지 간단히 설명 드리고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 지난 5월부터 약 5개월가량 진행된 이번 ‘빈곤실태조사’는 ‘기초생활보장 권리 찾기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시민사회 단체와 두 정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수급권자분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는 지역을 중점으로 서울, 인천, 대전, 제천등 가급적 많은 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번 빈곤실태조사의 기획 의도는 이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올해로 제정 10주년을 맞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돌아보고, 진정 대한민국의 복지가 국민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있는지, 복지가 국민의 권리로서 이 나라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기초생활수급권자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보자 !!

 

*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불합리한 복지현실을 바꿔나가는 활동으로까지 전개해보자 !!

 

  이에 조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복지권리 침해사례에 대해서는 개선, 시정을 요구했으며   수급자 본인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요구할 수 있게끔 하는 교육활동이 병행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9월7일 국회에서 있었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0주년 기념, 수급권자가 말한다.’라는 발언대회에 수급자분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긍정적인 결과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번 빈곤실태조사의 내용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의 기초자료로, 불합리한 복지현실을 개선하는데 쓰이게 될 것이라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전반적인 설명은 여기서 마치고, 지금 부터는 여러분이 기대하셨을 현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제가 빈곤실태조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 바로 복지가 국민의 권리로서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복지국가라는 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이 말. 매번 국민의 복지를 위해 힘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들을 하셔서 저는 국가의 지상과제가 복지국가 만들기인줄로 착각도 했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 이런 말들이 존재하고 있는 걸로 봐서도 대한민국은 ‘국가가 복지의 주체로서, 국민의 복지를 하나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는 복지국가’ 라고 스스로 정의했었습니다. 헌데 제가 빈곤실태조사 기간 동안 만난 분들은 복지소리만 들어도 ‘개소리’라고 일축하셨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조사를 위해 방문했던 서울의 여러 곳, 으리으리한 빌딩숲 사이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 약40만원이란 수급비로 한 달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세상으로 뚝 떨어진 엘리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아는 복지라는 것은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몇 가지 사례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 분들이 대한민국의 복지를 왜 ‘개소리’라며 일축하셨는지 보도록 하죠.

 

* 사례1. 무료급식소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현실성 없는 최저생계비 

 

위 조사결과를 요약해보자면 이렇습니다. 490명의 응답자 중 70.4%가 수급신청 확정 내용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지만, 물어볼 곳이 없어서 거의 반수에 해당하는 45.7%의 사람들이 그냥 참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이의신청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확정내용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데, 보시다시피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1.4%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의신청제도를 알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응답한 458명 중 83.4%가 모른다고 응답한 것이 그 답이 될 수 있겠네요. 

 

이 사례는 더 기가 막힙니다. 지난 4월, 의료급여 1종이셨던 이00님은 병원비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의료급여가 2종으로 강등되어 종전엔 없던 1660원이란 금액이 부과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왜 아무 말도 없이 2종으로 바뀐 거냐고 항의도 해봤지만 아저씨만 그런게 아니니 구청에 가서 따지라는 말밖에는 전해 듣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아저씨만 이런 피해를 입으신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착오에 의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님은 확실하네요. 급여내용 변경을 통지하는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입니다. 하지만 조사결과 48.9%의 사람들이 수급내용 변경 시 아무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급자의 ‘알 권리’는 이곳에서 더 이상 고려사항이 아닌가 봅니다. 행정편의가 복지권리 우위에 있는 씁쓸한 현실. 이것이 2009년 대한민국의 복지행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국민기초생활법’ 본래의 취지는 이미 무색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본 대한민국 서울 땅에선, 더 이상 국민에게 복지는 권리가 아니었습니다. 돈 없고 가난한……말 그대로 복지가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말입니다. 살맛나는 세상?? 웃기는 소리고 제가 본 대한민국 정말 더럽게 살맛 안 나는 나라였습니다. 그나마 제가 열거한 사례들은 수급액이 나온다는 의미에선 행복한 사례입니다. 노숙을 하시는 분들이나 부양의무자 기준 등 여러 행정적인 이유로 수급권을 갖지 못하시는 분들은 지금 이 순간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완전한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정책들이 오히려 그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어찌 이리 사람을 위하지 않을까요?

 

변화가 필요한 때임을 거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전 이 활동이 조금은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현실과 내가 생각한 세상은 너무 다르구나, 차라리 몰랐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복지, 이 정도는 아니라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바닥까지 꺼져버린 기분이라고 할까요? 빈과 부의 격차 아니, 분배의 불평등이 극에 달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졌고, 나라의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못미더워졌습니다.

 

복지 !! 더 이상 이념의 잣대로 싸울 일이 아닙니다. 제가 본 사람들의 힘든 하루하루는 흔히 얘기하는 개인의 나태함이 원인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구조적인 모순이 원인이었습니다. 이건 삶의 문제이고, 국가가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입니다. 국가가 존재 이유자체를 스스로 부정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앞서 여러 가지 실망스런 느낌들을 많이 전했지만 이번 활동은 제가 사회복지를 하겠다고 처음 마음먹었던 고등학교의 어느 날부터 오늘까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시간들이었음은 꼭 밝히고 싶습니다.

 

끝으로 지난 9월7일 있었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0주년 기념, 수급권자가 말한다.’라는 발언대회에서 제가 마지막에 했던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권리의 주체가 권리를 주장하는 한 누구도 그 권리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10년 동안 뭐 했느냐고 묻고 싶진 않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0년간의 자기성찰을 마치고 이제는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10월호(제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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