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복지의 등장과 그 이후
남 찬 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Ⅰ. 서 론
한국에서 복지국가의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 한국 복지국가 발전을 상징하는 구호는 이른 바 “생산적 복지”였고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국민의 정부는 이 구호를 내걸고 복지개혁을 추진하였다. 생산적 복지와 이에 의한 복지개혁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라는 평가와 그렇지 않다는 정반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처럼 정반대의 평가가 교차하는 것은 생산적 복지가 그 자체로 가진 혼합적인 성격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생산적 복지와 그에 의한 복지개혁이 놓인 환경이 그만큼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데에도 원인이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생산적 복지에 의한 복지개혁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던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의미를 나름대로 계승하여 복지개혁을 이어가던 정치세력의 수장은 범상치 않은 방식으로 명운을 달리 하였으며 생산적 복지를 처음으로 내걸었던 대통령도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생산적 복지는 우리에게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과연 어떤 것이었던가? 생산적 복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겼으며 우리는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 글은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한 시도이다.
Ⅱ. 본 론
1. 한국 복지국가 전개과정의 진단
한국 복지국가는 연속적으로 발전해온 면도 있지만 불연속적인 몇 번의 급속한 확장기를 거치면서 발전해온 면도 있다. 불연속적인 급속한 확장기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1960년대 초반의 군사정권기이며, 둘째는 1980년대 초반의 5공화국 출범기이고, 셋째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투쟁 이후 시기이며, 넷째는 외환위기 이후 생산적 복지기이다.
이들 네 번의 불연속적 확장기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갖는다. 정치적인 면에서 첫째와 둘째의 확장기가 권위주의 체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셋째와 넷째의 확장기는 민주화와 관련된 것이다. 또한 사회적인 면에서 첫째와 둘째의 확장기가 시민사회나 노동운동의 성장과 큰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셋째와 넷째의 확장기는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성장과 상대적으로 큰 관련이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첫째와 둘째, 셋째의 확장기가 발전국가적 경제개발과 관련된 것이라면 넷째의 확장기는 경제의 세계화 및 탈산업화 경향과 관련된다.
한국 복지국가의 전개과정과 관련하여 여기서 구분한 네 번의 확장기는 논자에 따라서 다르게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연속적인 확장기의 구분을 어떻게 하든 여러 모로 보건대 가장 기본적인 구분은 외환위기 이전 시기와 외환위기 이후 시기의 두 단계의 구분인 것 같다. 즉 한국 복지국가의 전개과정은 크게 생산적 복지기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글에서 구분한 셋째의 확장기 즉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투쟁 이후 기간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기의 복지확장이 확실히 그 이전과는 다른 동력 즉 민주화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질적인 전환에 이르는 것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이혜경, 2002). 이런 점에서 질적인 전환의 기점은 역시 생산적 복지기 이후라고 볼 수 있다.
2. 생산적 복지의 의미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복지개혁은 생산적 복지라는 구호로 표상되듯 생산적 복지는 한국 복지국가의 본격적 발달에서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이 생산적 복지를 둘러싸고는 많은 논쟁이 벌어진 바 있으며 이 논쟁에서 다양한 입장이 개진된 바 있다. 여기서는 이들 다양한 입장에 대해 평가하기보다는 생산적 복지 및 그에 의한 복지개혁이 갖는 의미를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는 시도를 할 것이다. 그 네 가지란 ① 분배와 성장의 관계, ② 세계화‧탈산업화와 복지의 관계, ③ 조세개혁과 복지의 관계, ④ 저출산‧고령화와 복지의 관계를 말한다.
(1) 분배와 성장의 관계
생산적 복지의 성격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한국 복지국가 발전에서 갖는 가장 중요한 점은 생산적 복지를 통해 국가개입에 의한 복지가 경제발전 내지 시장경제와 동등한 위상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적 발전을 주창하고 그 틀에 입각하여 생산적 복지를 내세움으로써 그 이전까지 언제나 경제에 종속되어 있고 경제보다 후순위로 생각되던 복지를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와 동등한 순위에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는 참여정부에서도 일정하게 계승되었다.
생산적 복지에 대해서는 “생산”에 중점을 두어 그것이 시장원리를 복지에 도입하려는 것이며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라는 비판이 상당하였지만 1960년대 초반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된 이후 4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제개발에 모든 다른 가치를 희생‧종속시켜 온 한국의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시장경제와 동등하게 자리매김하고 그런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로부터 성장할 수 있는 복지를 국정지표로 제시한 것은 한국 복지국가 역사에서 획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복지를 정권의 정당성 강화 차원에서 내세웠던 관행과 달리 생산적 복지는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실현된 상황을 토대로 주창됨으로써 사실상 복지(분배)를 경제(성장)과 동등한 순위로 자리매김하여 한국 복지국가의 질적 전환을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 것이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두 후보가 성장과 분배를 놓고 공개적인 토론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분배를 주장하는 후보가 “친북좌파”세력으로 매도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성장론자로 분류되는 후보가 자신은 결코 성장만 우선하는 사람이 아니며 분배도 중시한다고 말해야만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질적 전환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하지만 생산적 복지에 의한 복지개혁은 한계도 안고 있는 것이었다. 복지(분배)를 경제(성장)와 동등한 순위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간 경제개발에만 매달려 온 한국 역사를 고려할 때 획기적인 것이지만, 그렇게 경제와 동등한 우선순위를 갖게 된 것으로서의 복지(분배)가 경제(성장)와 실질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과거 수 십 년 동안 분배라는 단어만 이야기해도 좌파세력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아야 했던 한국 사회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분배를 성장과 동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든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의 정부 복지개혁은 사명을 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국민의 정부가 복지를 경제와 동등한 순위에 놓는 데 기여했다면 이처럼 경제와 동등하게 된 복지가 경제와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를 설정해야 할 과제는 참여정부에게로 넘어갔다. 참여정부는 이 관계를 유기적인 것으로 설정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기울였다. 참여정부 기간에 발표된
월간 <복지동향> 2009년 12월호(제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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