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권운동네트워크, 인권운동사랑방
한국의 주거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박정희 정권 이래 하나의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은 부동산 투기(부드러운 말로는, 부동산 재테크)는 고질적인 문제였고 역대 정권은 하나같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정책 과제로 내세웠다. 노태우 정권 이래 다양한 형식의 임대주택 정책도 시도되었고 주거복지 개념도 차츰 생겨났다.
한편, 60년대부터 끊이지 않고 싸워 온 철거민 운동과 97년 IMF 이후 새롭게 조직되기 시작한 노숙인 운동, 비닐하우스 주민들의 운동 등이 있다. 이들 운동은 주거 현실에 대한 보고와 분석이 정책의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도록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다. 사람과 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다. 주거‘권’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살만한 집이 필요한가.
살만한 집에 살 권리: 용산에서부터 우리집까지
작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한국 정부 심사에 민간단체가 제출한 보고서는 한국의 주거‘권’ 현실을 알리려고 했다. 주거권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민간 단체들은 인권의 관점에서 주거 현실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기도 했다. 정부가 제출하는 보고서를 반박해야 하는데 정부 보고서는 인권의 관점이 아닌 인권의 수사만으로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각종 개발 정책을 주거권 실현을 위한 시책이라며 보고할 정도니 말이다. 출발지도 목적지도 다른 보고서와 ‘병행’해야 했다(민간단체 보고서의 공식 명칭은 ‘parallel report’이다).
작년 1월 용산에서 발생한 철거민 사망 사건(용산참사)으로 주거권이라는 말은 조금 더 낯익은 단어가 된 듯하다. 그러나 집주인이 전세를 올려달라는 말에 속수무책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하거나 각종 대출제도를 알아봐야 하는 문제는 아직 주거‘권’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주거권의 내용은 어렵지 않다. 먼저, 주택의 물리적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면적, 구조, 채광, 환기, 통풍, 상하수도 설비, 에너지 공급 등이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집’이라면 점유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원하는 때까지 거주할 수 있어야 하며 적어도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강제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부담할 만한 가격으로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중요하다. 집이라는 공간의 사회성에서 비롯되는 이웃들과의 관계나 지역의 문화적 특성, 각종 공공시설과 편의시설 접근성도 주거권의 요소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집의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인권은 ‘자격’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권리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 인권침해 가해자가 되어선 안된다. 제3자의 인권침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의무도 있으며 권리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러나 권리-의무의 일반적 접근은 여러 모로 쉽지 않다. 주거권 침해는 선명한 사건으로 드러나기 쉽지 않으며 주거권 실현도 명백한 경로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정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주거권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해결책도 명쾌할 수만은 없다. 이럴수록 주거‘권’ 현실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일단 민간단체의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의 주거‘권’ 현실을 살펴보자.
집 없으면 ‘개고생’?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한 적 있다. 꼭 집을 나가지 않더라도 집 없으면 ‘개고생’이다. 일곱 글자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우여곡절 삶의 자락들이 후벼진다. 자기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걸 능력 없다고 바라보는 시선들은 제치더라도 ‘개고생’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체념은 제치기 어렵다. 바로 그 체념이 공감을 만들어낸다. 주거‘권’은 그 공감을 다시 체념으로 돌려놓지 않기 위해 건너야 할 강이다. ‘집 없으면 개고생’의 현실을 보자.
한국사회에서 주택의 자산 가치는 매우 크다. 주택은 권리 보장의 한 형태이기보다 재산으로서 다루어진다. 그렇다 보니 주택 배분의 형평성은 정책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아 새로 공급된 주택은 대부분 구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저소득층은 집을 ‘소유’하기도 하지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인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세입자로 살아가게 된다. 세입자는 ‘집 없는 사람’이 되고 임대료 부담과 점유의 불안정성으로 ‘개고생’한다.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고소득층의 두 배에 이른다. 게다가 고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은 감소하는 반면,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은 오히려 증가한다(표1). 주거비 보조 제도의 하나인 주거 급여는 2009년 1인 가구 84,645원, 4인 가구 228,794원이다. 주거비 부담을 감소시키는 데에 부족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연동되어 한계가 있다. 전세자금지원제도 역시 수요가 높지만 재정이 충분하지 않아 가구당 평균 대출금액이 최대 대출가능 금액의 1/3 수준이다. 게다가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은 오히려 대출을 받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
표 1. 소득계층별 주거비 부담 변화
구분 |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배) |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 %) |
||||
저소득층 (1~4분위) |
중소득층 (5~8분위) |
고소득층 (9~10분위) |
저소득층 (1~4분위) |
중소득층 (5~8분위) |
고소득층 (9~10분위) |
|
2001 |
6.1 |
5.8 |
4.5 |
21.7 |
22.5 |
18.8 |
2005 |
7.5 |
4.3 |
4.2 |
29.4 |
18.1 |
15.4 |
자료: 청와대 국정브리핑 (2006.3.20.) “부동산, 양극화의 최대 분수령”
2년마다 이삿짐 싸는 일도 ‘개고생’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점유권을 보호하는 2년이 지난 후 계약의 갱신을 요구하거나 임대료 인상 제한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집주인이 나가라거나 주거비를 부담할 수 없는 이유로 이사하는 가구의 비율(강제이동률)은 저소득층일수록 높게 나타난다. 소득1분위는 10분위보다 강제이동률이 7배나 높다. 저소득층이 겪는 주거 문제는 주거의 질에서도 드러난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40.7%는 소득1분위다. 이들이 자신의 소득만으로 주거 수준을 높이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대한 지원체계가 법으로 강제되지 않아 이들은 계속 ‘개고생’이다.
홈리스를 만들어내는 정책의 장
‘집 없으면 개고생’의 현실은 주거불평등과 주거불안정에 시선을 맞추지 않는 정책들이 조합된 결과다. 주택이 거의 완전히 민간 시장에 내맡겨져 있고 심지어 투기가 부추겨지기도 하는 정책의 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소득층이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달리, 주택에는 공공성의 개념이 거의 없다. 이렇게 취약한 주거공공성의 현실에서 홈리스들이 ‘생산’되고 있다.
물론 한국정부는 자기 절제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집도 절도 없는 신세로 내몰린 것이 ‘홈리스’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국의 홈리스 규모를 묻자 한국정부는 12,328명이라고 대답했다. 이 숫자는 노숙인․부랑인 시설에 거주하는 성인의 숫자다. 정부의 인식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홈리스는 특정한 주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홈리스의 정책적 정의는 정부마다 다를 수 있는데 유럽의 홈리스지원기구연합은 홈리스의 정의를 네 가지로 분류해 제시한다. 어떤 종류의 쉴 곳도 없는 상황(rooflessness), 쉼터나 시설에서 잠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houselessness), 불안정한 임대나 퇴거, 가정폭력 등으로 위협받는 상황(living in insecure housing), 이동주택이나 부적절한 주거, 극단적 과밀 주거 등에 사는 경우(living in inadequate housing).
민간단체는 이 정의를 참고해 홈리스 규모를 약 17만 명으로 추산했다(표2). 홈리스지원기구연합의 정의를 모두 포괄하지도 못했고 이용한 통계 자체가 축소 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엄청난 규모다. 규모의 차이보다 더욱 큰 차이가 바로 ‘홈리스’에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다.
표2. 홈리스 규모 추정 (단위 : 명)
홈리스 상태별 분류 |
규모 |
|
주거상실* |
거리노숙인 |
1,285 |
노숙인쉼터홈리스 |
3,511 |
|
부랑인시설홈리스 |
9,492 |
|
주거불안 주거배제 |
쪽방거주민** |
6,201 |
고시원거주민*** |
43,301 |
|
비닐하우스․판자집 거주**** |
109,512 |
|
합계 |
173,302 |
|
* 보건복지가족부 사회통합전략과 (2008)
** 전국 쪽방상담소 협의회 (2007)
*** 서울시 및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2008)
**** 통계청 (2005)
‘비주택 거주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의 거주민들의 실태는 최근 연구들을 통해 자세히 드러나고 있는데 이 글에서 따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이와 같은 주거‘권’ 현실은 ‘집 없으면 개고생’에 대한 체념의 틈새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홈리스의 사회경제적 여건에 맞는 체계적인 정책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극단적인 주거권 침해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즉 홈리스가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적당한 주거비 부담으로 거주할 수 있는 사회주택은 한 사회가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 채택할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이며 효과적인 정책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와 같은 주택 형태로 볼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은 2008년 기준 전체 주택의 3.9%로, 영국 19%, 네덜란드 35%, 일본 7%에 비해 극히 적다. 게다가 임대주택의 임대료가 그리 저렴하지 않다. 2006년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소득1분위 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48.7%였다. 임대료 부담이 높다 보니 2008년 임대주택 거주 가구의 21.7%는 임대료를 체납하고 있었다. 임대료 체납 가구에 대한 강제 퇴거와 배상금 부과도 가혹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 임대주택 재고량과 관련 정책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홈리스들이 입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을 마련하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주거빈곤의 끄트머리에서 홈리스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쫓아내는 데에 관대한 사회
그런데 정부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며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주거권 실현을 한답시고 주거권 침해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부가 스스로 말하듯 저소득층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안다. 한국처럼 건설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와 자본의 부동산․건설 투자가 활발한 곳에서 개발 사업은 이윤 창출의 중요한 고리가 된다. 여기에도 ‘절실’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면 자본에게 개발 사업은 절실한 것이다.
강제퇴거에는 그만큼 관대하다. 한국 정부는 유엔 사회권위원회 심사에서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은 강제퇴거와 관련 없는 사건이라고 항변했다. 보상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민사소송을 통해 강제 집행하는 철거는 강제퇴거가 아니라는 괴상한 주장은 사회권위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한 사회권위원은 “자의에 반해 쫓겨나는 것이 강제퇴거”라고 친히 알려줬다고 한다. 정부의 인식 수준이 이렇다 보니 1, 2차 심사에서 줄곧 강제퇴거와 관련된 권고를 받았는데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인식의 문제만은 아니다. 개발과 강제퇴거에 대한 저항은,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해 주택정책이나 주거복지정책만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현실에 맞서야 함을 일깨워준다.
용산 참사 이후로 개발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논의들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울의 경우 인구의 10% 가량이 개발사업구역에 거주하는데 원주민 재정착률은 20%도 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저렴하게 거주하던 주택들을 철거한 후 고급 아파트를 짓는 도심의 고급화는 ‘빈곤층 청소’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2010년 주택 멸실 규모를 98,742가구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개발사업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전면 철거 방식을 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는 개발 사업 전후를 비교하며 현재 개발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듯했으나(표3) 서울시의 개발 정책은 근본적인 변화를 회피했다. 정부의 개발 정책은 면피용 개선조치는 있으나 근본적인 후퇴를 감행하고 있다.
표3. 개발사업 전후 비교
구 분 |
사업전 |
사업후 |
전용면적 60㎡이하 주택비율 |
63% |
30% |
매매가 5억원미만 주택비율 |
86% |
30% |
전세임대가 4천만원 미만 주택비율 |
83% |
0% |
평균주택규모(전용면적) |
80m² |
107m² |
평균 주택가격 |
3억 9천만원 |
5억 4천만원 |
거주가구 평균소득(요구소득수준) |
207만원 |
653만원 |
자료: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2009)에서 재인용.
개발 사업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쫓겨난다. 현행 제도나 절차는 세입자들이 재정착에 필요한 대책을 협의하거나 개발 사업에 의견을 낼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다. 정부가 강제퇴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명도소송 절차는 퇴거 예정 일자를 예고조차 하지 않는다. 개발사업 제도와 절차는 철거민들의 저항을 ‘불법화’하고 ‘법치’를 위해 투입되는 경찰에 저항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는다.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에서도 경찰은 면죄부를 받고 철거민들만 중형을 선고받았다.
강제퇴거는 주거권 침해 중 매우 명백한 성격을 띠는 편이다. 그래서 국내외 인권기구들이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많은 국가들에서 강제퇴거 금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사법․행정적 조치를 마련한다. 한국 정부는 강제퇴거의 위협에 놓여 있는 인구 수 등 기본적인 통계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사인 간의 문제라며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 설령 개발 사업이 사인 간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정부는 강제퇴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추진되는 대부분의 개발 사업은 관련 법령을 통해 ‘공익사업’으로 승인되어 그에 따른 실질적 이득을 취하며 정부는 그것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강제퇴거를 자행하는 인권침해 가해자이기도 한 현실이다.
꼭꼭 숨어라 주거‘권’ 보일라
그래도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들은 간간히 다뤄지는 내용들이다. 민간단체 보고서에서 ‘주거권과 차별금지’라는 목차를 따로 두어 서술한 내용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청소년 등의 주거‘권’ 현실은 아직 한국에서 충분히 조사되거나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영역이다. 다만 장애인 주거권이 자립생활이라는 가치와 맞물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 정책은 여전히 생활시설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설에서 나오려고 해도 주거서비스가 거의 제공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일단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아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전반적인 장애인 주거실태는 비장애인들보다 열악하고 불안정하다. 2008년 전체 장애인 중 85.8%가 소음․진동․악취․대기오염 등으로 인해 거주하기 적절하지 않은 공간에 살고 있으며, 3%는 상가, 공장, 비닐하우스 등 비주거 공간에서 살고 있다. 주택 구조가 장애인이 거주하기에 적절하지 않아 주택개조를 원하는 장애인은 18.3%에 이른다. 임대를 거부하는 등의 직접 차별도 심각하다.
이주노동자들은 아예 정책의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공장에 딸린 방, 컨테이너 등 비거주용 건물에 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심각한 과밀 주거 상태에 놓여 있다. 부산지역 실태조사에서 설문 응답자의 49.8%가 두 평 이하의 방에 거주하고 이들 중 61%가 세 명 이상의 동료와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서 고용주의 숙식 제공 의무가 사라지고 최근에는 숙식비를 최저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방문취업제를 통해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매우 많은데 이들은 주로 일터(식당, 숙박업소 등)에 딸린 작은 방이나 일터 근처의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주택정책에서 ‘남 모르게’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공공임대주택이나 국민주택기금을 통한 대출 등에서 1인 가구는 불리하다. 35세 이하의 1인 가구는 대출이 불가능하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0.1%를 차지하는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택정책이 ‘세대’ 개념에 기초하고 있어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한국의 ‘세대’는 이성애적 혈연관계만을 인정한다. 이성애적 사실혼은 결혼과 거의 같은 것으로 인정되지만 동성 간의 동반자 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 임대차계약의 승계나 임대주택 입주 등에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주거‘권’에 답하라
이쯤 해서 다시 글을 시작하면서 던졌던 질문을 기억해보자.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살만한 집이 필요한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우리는 장애인도 이주노동자도 성소수자도 사람이냐는 당혹스러운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주거‘권’이 던지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한국의 주거권 현실을 대체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단체들이 뉴타운을 비롯한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린 덕분에 강제퇴거와 관련된 내용도 강조되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강제퇴거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강제퇴거를 막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이나 절차가 없는 점을 우려했다. 위원회는 강제퇴거가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우선적 사항으로 강제퇴거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촉구한다. 위원회가 촉구한 내용은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 7에 근거한 것으로, 사실상 강제퇴거 금지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한국정부가 기본적인 인식조차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셈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권위원회는 홈리스의 규모와 원인을 조사하고 홈리스를 위한 적절한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도록 촉구한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의 규모가 큰 데 반해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적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적당한 주거비 부담으로 거주할 수 있는 사회주택의 공급을 위해 충분한 재원을 배정하도록 권고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하려는 조치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사회권위원회의 보고와 심사 절차는 한계가 있기도 하다. 정부는 적당히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을 조합해서 주거권 실현을 위한 시책이라고 제목을 달아놓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권고는 입맛에 따라 수용하거나 무시한다. 주거권의 실현을 위한 의무가 무엇인지를 특정해서 밝히기는 누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도 원칙적인 수준에서 서술되기가 쉽다. 그러나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는 한국에 주거와 관련된 어떤 인권침해가 있는지 살펴보게 한다. 또한 주거‘권’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최소한 갖추어야 할 것들과 지침을 제공한다.
결국 대답은 한국사회의 몫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기 쉽지 않은 실타래를 기꺼이 손에 쥐되 주거‘권’의 시선으로 접근할 때, 대답은 시작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1월호(제135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