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1-01   2833

[심층분석5] 우리나라의 건강권 보장 실태

 


우리나라의 건강권 보장 실태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건강할 권리를 인류의 주요한 권리로 언급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제25조에서 “모든 사람은 먹을거리, 입을 옷, 주택, 의료, 사회서비스 등을 포함해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제12조 1항에서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고 구체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언 및 규약에도 불구하고 ‘건강할 권리’를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추상적 선언 혹은 경구로서 ‘건강할 권리’를 넘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책적, 제도적으로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개념적 준거를 마련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일반논평 제14호를 통해 이 권리를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로 규정하고 이 범위와 영역, 그리고 당사국의 의무 등을 더 구체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회권’으로 불리는 다른 권리가 그러하듯 한 사회에서 ‘건강권’, 혹은 ‘건강할 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는가를 측정하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지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는 ‘가용성’이다. ‘건강할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한 국가 내에 제대로 기능하는 공공 보건의료 시설, 재화, 서비스 및 프로그램이 충분한 양으로 이용 가능해야 한다. 둘째는 ‘접근성’이다. 보건의료 시설, 재화, 서비스 및 프로그램이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여야 한다. 이는 물리적 접근성, 경제적 접근성, 정보 접근성, 비차별의 원칙을 포함한다. 셋째는 ‘수용성’이다. 모든 보건의료 시설, 재화, 서비스가 의료 윤리를 존중하여야 하며, 개인, 소수자, 민족, 공동체의 문화를 존중하는 등 문화적으로 적절하여야 하고, 젠더와 생명주기의 필요에 민감해야 하며, 이용자의 비밀유지와 건강 상태 개선을 위해 계획되어야 한다. 넷째는 ‘질’이다. 보건의료 시설, 재화, 서비스가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하여야 할 뿐 아니라, 과학적 및 의학적으로 적절하여야 하며 양질이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이 동원되어야 하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건강권 보장 실태

 

 

시설, 재화, 서비스의 가용성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 보건의료 시설, 재화, 서비스에 대한 급격한 투자가 이루어져 현재 가용성 측면에서는 그리 낮다고 볼 수 없다. 병상수, 의료기기 수 등의 지표에서 OECD 국가 평균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다만 의사 수, 활동간호사 수 등 의료 인력 수는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낮다. 2006년 한국의 활동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1.7명으로 OECD 회원국 활동의사 수 3.1명보다 적다. 2006년도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터키(1.6명)를 제외하고 가장 적은 수준이다. 2006년 우리나라의 활동 간호사수는 인구 1,000명당 4.0명으로 OECD 회원국의 평균 활동간호사 수 9.7명보다 적다. 이러한 통계 지표를 볼 때 한국의 의료인의 가용성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력 수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의료기관과 보건의료 부분에서 공공재원의 가용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한국의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은 병원 수 기준으로는 6.5%에 불과하고, 병상 수 기준으로는 11% 정도에 불과하여 민간의료기관 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국의 민간병원들은 중소 규모로 운영되는 개입사업자 병원을 제외하면 모두 외형적으로는 비영리법인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구분



공공


민간



비율(%)



비율(%)



비율


기관수


56,399


100


3,646


6.5


52,735


93.5


병상수


450,592


100


49,585


11.0


401,007


89.0


자료: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백서 2007. 2008년 발간

 

 

한편, 2006년 한국의 국민의료비 지출 중 공공부문에 의한 지출 비율은 55.1%를 차지했으나, OECD 회원국의 공공부문의 평균 지출 비율은 73.0%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의 가용성은 많이 떨어진다. 그러다보니 한국은 국민의료비 중 가계본인부담 지출이 상대적으로 높다. 2006년 한국의 국민의료비 중 가계부문에서의 지출 비율은 36.9%로 OECD 수준인 19.0% 보다 높다.

 

 

 


구분


국민의료비 지출 중 공공지출 비율(2006년)


국민의료비 지출 중 가계지출 비율(2006년)


한국


55.1%


36.9%


OECD 평균


73.0%


19.0%

 

※ 자료 : 우리나라 보건의료 실태분석 결과, 보건복지부, 2008을 재가공.

 

 

시설, 재화, 서비스의 접근성

 

 

접근성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접근성이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시설, 재화, 서비스 이용에 차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적 접근성의 한 사회의 의료보장 수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의료보장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일수록 경제적 차이에 따른 접근성 제약이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8년에 62.2% 수준이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제적 수준에 따른 접근성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5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 인구의 13.7%가 지난 1년간 미치료나 치료지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이 실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령이 높을수록, 교육이 낮을수록, 월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의료보장에서는 미가입, 의료급여, 지역 그리고 직장 순서로 미치료‧치료 지연율이 일관성 있게 높게 나타났다.

 

 

 

 

 

하위계층의 의료이용량은 상위계층의 1/3 수준에 불과하며, 이 같은 의료이용의 불평등은 최근 들어 한층 심화되고 있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월소득의 20% 이상을 보건의료지출에 사용하는 가계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하위 10% 소득계층은 월소득의 20% 이상을 보건의료지출에 사용하는 비율이 2001년 10.4%에서 2005년 22.3%로 급증하였다. 이는 저소득층에 의료비 부담이 불균등하게 부과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파국적 의료비 지출 가구’에 해당하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보건의료지출에 사용하는 가구’ 비율 역시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물리적 접근성도 문제가 있다. 1999년 암발생자들의 의료이용 양상을 2005년까지 추적관찰해보면, 부산, 대구․경북, 경남․울산을 제외하고는 전체 암환자 입원 의료이용량의 20% 이상이 서울 지역의 병원들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의료자원의 평등한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불평등한 구조이다. 농산어촌 주민을 대상으로 질병 치료시 애로사항을 물어보았을 때, ‘의료기관이 멀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농산어촌(24.3%)이 도시지역(4.2%) 보다 월등히 높아 농산어촌 지역의 의료기관에의 물리적 접근성에 어려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설, 재화, 서비스의 수용성과 질

 

 

현재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수용성과 질은 그리 높지 않다. 이를 평가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는 병원에 고용되어 있는 의료 인력의 수이다. 의료서비스는 그 특성상 인력 수준에 따라 질이 결정된다. 그런데 OECD 보건통계(OECD, 2008)에 따르면, 급성기 병상당 간호사수는 2006년 기준으로 한국이 0.33명으로, 프랑스 0.58명, 독일 0.77명, 미국 1.56명, 노르웨이 1.75명에 비해 매우 낮다. 인구 천명당 활동 간호사 수에서도 한국은 4.0명으로, 일본의 9.3명, 미국 10.5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노르웨이 31.6명에 비해서는 약 1/8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히 주의가 필요한 계층의 건강권

 

 

저소득층,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은 특히 건강할 권리가 침해되기 쉬운 계층이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소득층은 의료급여 제도로 의료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급여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권의 제약이 존재한다. 2007년 통계상 의료급여 1종의 보장률은 94.1%, 의료급여 2종(근로 능력이 있는 대상자)의 보장률은 87.0% 수준이어서 의료급여 대상자도 본인부담 수준이 적지 않다.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상 의료급여 대상자의 미치료 및 치료지연율이 27.3%에 달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실제로 미충족 의료 서비스는 더욱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건강보험료 체납계층의 문제도 심각하다. 2008년 10월 기준으로 3개월 이상 건강보험료 체납 지역건강보험 세대는 205만 3천 세대에 이르고 있으며, 건강보험료 체납 사업장도 6만 2천개소에 이른다.

 

 

 


연 도


2006


2007


2008.10월


지역


체납가구수


209만3천


205만5천


205만3천


체납금액(원)


1조3873억


1조5547억


1조5018억


직장


체납사업장수


4만6천


5만3천


6만2천


체납금액(원)


1457억


1670억


2175억


* 2008년 7월, 지역 체납 가구 중 약 70만 가구(약 4천억 원)에 대해 체납 보험료를 탕감 조치함.


(자료: 국민건강보험공단, 2009)

 

 

건강권 보장 수준 향상을 위하여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건강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과제는 아직까지 경제적 접근성과 관련된 것이다. 이번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최종 견해 역시 이 부분을 우리나라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므로 건강권 보장을 위하여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 향상이다. 현재 62% 수준인 공적 의료보장 제도의 보장성을 8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적 재원의 투여가 절실하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보건의료에 대한 재정 투자를 늘릴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의료 기관 인력 확충을 위한 전략도 필요하다.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인력 확충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 인력의 양적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본인부담금 면제, 보험료 경감 등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저소득층의 본인일부부담금을 면제하고,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만성질환자의 처방의약품에 대한 본인일부부담을 면제하는 등의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 보험료 하위 30%에 대해서는 소득구간에 따라 단계적으로 보험료를 경감할 필요도 있다. 저소득층 체납자를 위한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3개월 이상 생계형 체납자에 대해서는 소득 수준이 회복될 때까지 국가에서 보험료를 무이자로 대납하도록 하고, 체납자가 보험급여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영리병원 허용, 병원경영지원회사(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 활성화, 병원의 채권 발생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 등 일련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이러한 의료 민영화 정책은 현재도 충분하지 못한 건강권 보장 수준을 더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1월호(제135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