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민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실 보좌관
12월31일 오후8시45분, 2010년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이른 아침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변경하면서 까지 단독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켰을 때 예견되었던 데로 ‘날치기’라는 야당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본회의는 일사천리 진행되었고, 일방적으로 통과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민주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는 9월29일 국회에서 ‘4대강 죽이기 사업 폐기! 부자감세 철회! 민생·복지·교육 예산 삭감 규탄!’ 결의대회를 진행하는 등 2010년 예산안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공동으로 대응했지만 결국 한나라당의 일방독주에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 이것이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의 현 주소다.
2010년 복지 예산,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는 복지 분야 지출 비중이 역대 최대라며 마치 복지예산이 늘어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실제 정부 총지출 대비 보건복지가족부 총지출 예산의 비중은 10.7%로 전년대비 1.2%p 증가하였다. 추경을 제외한 2009년 당초 총지출과 비교하면 0.7%p 증가한 것이다. 복지 예산이 그만큼 증가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일반회계, 특별회계 예산은 19.7조에서 19.6조로 줄었으나 비중은 9.4%에서 9.6%로 오히려 늘어났다. 정부 총지출이 △9조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출 비중은 정부의 총지출에서 해당 분야 예산이 차지하는 규모이기 때문에 분모인 총지출이 줄어들면 해당 분야 예산은 마치 증가한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비중의 증감이 아니라 예산액 자체의 증감이 중요하지만 정부는 줄곧 ‘최대 비중’만을 강조하고 있다.
’10년 정부 총지출 규모는
’09년 대비 △9.0조원(△3.0%) 감소한 292.8조원임.
’09년 추경을 제외한 당초 총지출과 비교하면 8.3조원(2.9%) 증가한 금액임.
‘10년 보건복지가족부 소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지출(안): ’09년 대비 1.2%p 증가한 10.7%임.
예 산(안): ’09년 대비 0.2%p 증가한 9.6%임.
기 금(안): ’09년 대비 2.6%p 증가한 13.4%임.
보건복지가족부의 2010년 총지출 규모는 31조2,593억원으로 2009년 대비 5.5% 증가하였다. 이는 응급의료기금이 379.5%나 증가하는 등 기금이 17.6%나 증가한 영향이 크다.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의지를 좀더 분명히 확인할 수 일반회계 예산을 살펴보자.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일반회계 예산은 19조3050억원이다. 이는 2009년 당초 예산 대비 7.2% 증가한 것이나 추경예산 대비 344억원, △0.2%가 삭감된 것이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보건복지가족부 일반회계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이 21.7%에 이르렀다는 점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사상 최저의 증가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된 예산은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이하 복지위)의 예비심사 결과조차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복지위는 정부가 10월1일에 제출한 예산안을 2개월 동안 심의하여 보건복지가족부의 동의를 거쳐 12월8일 의결하였다. 복지위에서는 일반회계 예산 중 1조2504억원 증액, △961억원 감액을 의결하여 결과적으로 1조1543억원을 순증한 바 있다. 하지만 예결특위에서는 1848억원 증액, △33억원을 감액하여 결과적으로 1815억원을 증액하는데 그쳤다. 복지위 의결 안보다 무려 9728억원이 삭감된 것이다.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어렵게 증액시킨 서민복지 예산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일반회계 예산은 19조3050억원으로 확정되었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19조1235억원과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10년도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총지출(안) 규모는
’09년 대비 1조 4,278억원(4.8%) 증가한 31조2593억원
예산안: ’09년 대비 △1,107억원(△0.6%) 감소한 19조5,993억원
※ 예산 내부거래 및 기금 보전지출 제외
(2009 정부 제출자료, 최종 조정내역 포함, 곽정숙 의원실 재분석)
❍ 기금안: ’09년 대비 1조7,467억원(17.6%) 증가한 11조 6,734억원
‘엎었다 뒤집었다’ 장애인을 우롱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장애인들의 피눈물이 담긴 기초장애연금 예산을 반 토막 낸 것이다.
12월8일 복지위 전체 회의 직전까지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하여 통과된 ‘기초장애연금’ 예산안은 3,185억원이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당초 요구안은 3,239억원 이었는데 기획재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삭감되었고,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은 1,519억원이었다. 복지위는 이 예산으로 제대로 된 장애연금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고 보고, 1,666억원을 증액하여 3,185억으로 의결하였다. 그런데 예결특위에서 이를 다시 삭감하여 1,519억원으로 만들었다. 결국 기존의 장애수당 12~13만원 보다 겨우 월2만1천 원 가량 더 받을 뿐인, 그야말로 이름뿐인 연금제도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기초장애연금 도입을 놓고 손바닥 뒤집듯 예산을 뒤집은 것은 장애인을 우롱한 것이다.
‘기초장애연금 심의 단계에 따른 예산 변화’
3239억원 (보건복지가족부 당초 요구안) → 1519억원 (기획재정부 협의를 거친 정부 제출안) → 3185억원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의결안) → 1519억원 (본회의 최종 의결안)
뿐만 아니라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 100명에게 1인당 5백만원씩 지급하자는 장애인자립정착금 예산 5억원, 출산과 양육에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중증 여성장애인들의 출산지원을 위한 예산 4억8천만원, 중증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보조서비스 예산 335억원 등은 복지위에서 의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반영되지 않았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2009년 9월 이후 신청자가 예산상의 목표인원 2만5천명을 넘어서 매월 1,000여명의 추가 신청이 이루어지자 정부가 지난 10월말 활동보조서비스 신규신청을 금지하여 장애인들이 격렬히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임에도 대상자를 3만 명으로 한정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빈곤층 관련 예산도 줄줄이 삭감
빈곤층 관련 예산 상황도 비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2009년 한시적 생계보호를 받았던 대상자만 해도 41만 가구, 92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근로능력이 없는 노인, 장애인 등으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나 아무런 예산도 편성되지 않았다.
겨울이면 지급되던 난방비 지원도 사라졌다. 그동안 2008년에는 기초생활수급자 84만 가구에게 월2만4천원을, 2009년에는 기초생활수급자 87만8천 가구와 차상위 장애인 8만2천명에게 월2만원을 6개월간 지급된 바 있다. 정부는 이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으나 복지위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 92만 가구에게 3개월간 1만5천 원씩 지원하도록 의결하였다. 이 역시 전액 삭감되었다.
갑작스런 위기상황에 놓인 저소득층에게 생계비 등을 지급하는 긴급복지지원 예산은 쥐꼬리만큼 늘었다. 2009년 11월 긴급지원 건수는 81,131건인데 2010년 예산은 추가로 증액한 50억원을 포함하여도 579억원, 건수 기준으로는 59,500건에 불과하다. 2009년은 경제 위기 상황이었으므로 추경예산 1000억원을 추가 편성한 것이며 2010년에는 실직, 휴폐업자에 대한 지원을 폐지하기 때문에 지원 건수를 줄인 것이라고 한다. 저소득층은 경기가 회복되어도 즉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경제의 악영향은 가장 빠르게, 경제의 호영향은 가장 늦게 받는 것이 저소득층의 특징이다. 이를 고려하면 여러 한시대책이 종료됨에 따라 긴급지원을 받아야 하는 저소득층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 만약 2009년 수준으로 지원한다 하더라도 154억원은 증액해야 하는데 겨우 50억원 증액에 그친 것이다.
예산 증액은 소극적, 자랑은 적극적?
또한, 복지위는 적십자병원, 지방의료원 등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를 위하여 352억원의 예산 증액을 의결하였으나, 이 역시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0억 증액에 그쳤다. 이 예산은 적십자병원 시설개보수, 10개 지방의료원 신축 및 리모델링, 15개 의료원의 의료장비 현대화를 위한 예산이다. 정부는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으로 의료 공공성 강화가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을 몸소 체감했고, 2010년 업무추진계획에서 ‘신종 전염병에 대한 완벽한 국민보호망’, ‘빈틈없는 의료안전망’을 강조하면서도 ‘공공의료’를 위한 예산 증액에 소극적인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특히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 예산은 돌봐줄 사람이 없는 어려운 서민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민생 예산의 핵심이었다.
이 사업에 대한 예산 안이 복지위에서 100억원으로 의결되자, 보건복지가족부는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부처 핵심사업으로 지정하고, 2011년부터 제도화하겠다고 조속히 발표하였다. 부처 핵심 사업으로 대통령 업무보고까지 마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상임위에서 의결한 예산의 4분의1 수준인 24억만을 편성하였다. 16개 시도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실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이 100억원이다. 24억원이면 4개 병원 수준의 예산이다. 2008년 7월 종료된 1차 시범사업도 4개 병원에서 시행되었다. 2차 시범사업을 1차와 동일한 수준으로 한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사업 시행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편성하고서 자랑만 하는 것은 몰염치한 행태이다.
불행 중 다행, 결식아동 급식비 예산 확보
이밖에 부대의견으로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재정부가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사업’에 대해 29만 명을 상회하는 급식비의 50%를 특별교부세, 지방교육재정특별교부금, 일반회계 예비비에서 각각 3분의 1씩 2010년에 한시적으로 지원”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소관 사업에 국고를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였으나 여론에 밀려 반영한 것이다. 줄줄이 삭감되는 예산 속에서 일부나마 반영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굶는 아이들의 밥 값’을 지원하자는데 ‘예비비’를 끌어 모아 ‘50%’를 ‘한시적’으로 지원하도록 한 것은 이 정부의 복지 예산에 대한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반서민, 반복지, 반민생 예산
모든 국민은 사회·경제적 지위나 성, 연령,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복지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 마땅히 져야할 책임의 영역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꼭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업조차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자신의 기본적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복지 강화는 필요하지만 예산이 없어서 못 한다’는 정부의 전통적 변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 예산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확보하였다. 정부의 정책의지만 있다면 ‘없는 예산‘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2010년 예산안에 복지는 없다. 서민도, 민생도 없다. 이는 국민을 버린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부를 결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 2010년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관 예산안 조정내역 (2009년12월31일 본회의 통과)
○ 부대의견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재정부는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사업’에 대해 29만명을 상회하는 급식비의 50%를 특별교부세, 지방교육재정특별교부금, 일반회계 예비비에서 각각 3분의 1씩 2010년에 한시적으로 지원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경로당 동절기 난방비 지원’ 및 ‘우수 보육 시설에 대한 환경개선 지원’ 사업을 2010년에 한시적으로 지원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동 법에 따른 규정과 배치되지 않도록 ‘영아정기돌봄서비스 사업’을 집행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인 LPG차량에 대한 연료비 보조금의 지원대상을 축소하여 2010년 6월말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지원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2월호(제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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