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경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탈시설정책위원회 위원
2008년 현재 장애인생활시설은 총 347개소에 22,250명이 거주하고 있다. 미신고시설 750여명,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는 약 10만 명을 포함하면 12만 명 이상이 대규모시설에 수용되어 있다. 시설입소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며, 시설생활 및 퇴소 역시 당사자의 의사는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입소가 이루어지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다시 지역사회로 나오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한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및 변경 절차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9년 사회복지시설에 갇혀 지냈던 11명의 장애인들은 대한민국의 반인권적인 사회복지서비스 현실을 바꾸고 탈시설-자립생활을 이루기 위한 역습을 시작했다.
온몸으로 탈시설-자립생활을 외친 마로니에 8인의 1차 역습
2009년 대학로는 탈시설 운동의 메카로 떠올랐다. 2009년 6월 4일 양천구청이 관할하는 장애인생활시설인 ‘김포 석암 베데스타요양원(현 향유의 집)’에서 생활하던 8명의 장애인들이 시설을 나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동성을 벌였다. 그해 8월 5일까지 62일간 노숙농성이 진행되던 내내 마로니에 8인(당시 탈시설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이들을 마로니에 8인이라 불렀다)은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농성장을 찾은 어느 날 필자는 그들에게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찬바람에 거칠어진 얼굴 가득 피어오르던 웃음의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질문에 하나같이 “힘들지 않아요……. 여기는 자유가 있잖아요. 사는 거 같아요!”라며 더욱 활짝 웃으셨다. 그리곤 적게는 14년 많게는 30년 동안 수 십 년을 시설에서 생활하는 내내 정해진 시설의 규칙에 맞춰 눈치를 보고 살았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으셨다. 당시 마로니에 8인은 서울시에 탈시설-자립생활을 위한 ‘탈시설 5개년 계획 수립, 증증장애인에게 자립주택 제공, 활동보조 생활시간 확대 대상 제한 폐지’를 요구했다. 또한 탈시설을 원하는 시설생활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전환지원서비스’ 시행을 요구했다.
질긴 싸움 끝에 서울시는 ‘자립생활가정 20가구 설치와 전환지원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당시 ‘시설생활인의 역습’이라는 부제가 붙었던 마로니에 8인의 투쟁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일깨웠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바꾸고 살아가야 할 이웃이며, 무엇보다 시설생활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지를 구체적으로 깨닫게 하였다. 이 결과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농성에 함께했다. ‘대안 없이 탈시설을 주장하며, 그나마 운영이 힘든 사회복지시설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힐난하던 사회복지관계자들 조차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이들의 주장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책이 아닌 삶의 관점에서 입장을 바꿔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나 보다. 또 다른 면에서는 민간 시설과 장애․인권단체 간의 싸움을 벗어나 ‘탈시설화’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촉구한 의미도 크다고 보았던 것 같다.
농성을 지지하며 적극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도 많았다. 아름아름 농성에 필요한 물품과 돈을 지원해주던 손길들, 먹거리 재료를 가져와서 직접 풍성한 식탁을 차려준 사람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진료와 약을 챙겨주던 의사와 한의사들, 기획기사로 크게 보도해 주거나 심층적으로 탈시설을 다룬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영해준 언론사들, 사재를 털어 체험홈을 마련해 준 독지가 등 손으로 꼽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로니에 8인의 투쟁은 사회복지시설의 인권문제를 고발하고 탈시설운동을 전개해 온 사람들과, 사회복지전문가들에게도 깨달음과 숙고의 계기가 되었다. ‘탈시설화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거주인 들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란 깨달음이었다. 현재 마로니에 8인중 3인은 서울시에서 설립한 체험홈에서 5인은 민간 독지가에 의한 자립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시설장애인의 독립 선언,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
2009년 12월 16일 대학로에서는 또다시 3인의 시설생활인에 의한 2차 역습이 이루어졌다. 온몸을 걸고 무작정 시설탈출을 감행한 1차 역습과 달리 2차 역습은 ‘법과 제도’를 활용한 것이었다. 음성꽃동네, 김포 향유의집에 거주하고 있는 황인현, 윤국진, 박현 이상 3명의 뇌성마비가 있는 장애청년들이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한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이하 ‘서비스변경신청’)』을 한 것이다. 서비스 변경 신청은 탈시설정책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12월 16일(수)에 있었던 ‘사회복지서비스변경신청 기자회견’ 모습(출처 : 함께걸음 http://www.cowalknews.co.kr)
사회복지서비스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법은 제33조에서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으며, 서비스 변경 신청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서비스 신청에 대해 해당 지자체는 조사와 평가, 보호계획수립, 서비스 제공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 조항은 2003년 사회복지사업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신설되었지만 6년이 경과한 2009년까지 당사자가 사회복지서비스를 신청하거나 변경한 예는 없었다. 심지어는 해당 지자체와 담당 공무원들조차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날 이루어진 ‘서비스변경신청’은 국내 처음으로 보호당사자가 지자체를 상대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 사문화 되어왔던 ‘서비스 신청권’을 작동시킨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서비스변경신청’이 3명의 장애청년 개인들의 역사 속에서 갖는 의미는 더욱 컸다.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의존적인 보호대상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권리주체이자 자주적인 자유시민’임을 스스로 선언한 ‘독립선언’과 같은 의미를 갖는 역습이었다.
3명의 장애청년은 가족 또는 이웃들에 의해 어린 시절 시설에 입소하였다. 십 수 년 동안 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신들과 관련된 모든 결정에 있어 누구도 이들의 의견을 물어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새 스스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같은 연령의 다른 청년들이 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우고, 노동을 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동안 시설에 갇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으며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런 꿈도 없이 매일 시설의 정해진 일과를 반복했을 뿐이다. 7시 아침식사, 11시 점심식사, 5시 저녁식사 그리고 소등 또다시 7시 아침식사, 11시 점심식사, 5시 저녁식사 ……. 그러던 중 윤국진씨와 박현씨는 지역의 뇌성마비장애인단체를 통해, 황인현씨는 시설 비리에 맞선 운동과정에서 만난 장애인단체를 통해 ‘자립생활’을 알게 되었다.
“시설에 들어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늘 집에서만 생활해야 했고, 가족에게 부담만 주니까… 시설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밤마다 울었어요. 그러다 조금씩 적응이 되니 능력도 없는 내가 먹을 것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곳! 이정도면 만족하고 살 수 있다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2004년도에 모 장애인단체의 여름캠프를 가게 되었는데…충격이었어요. 다른 장애인이 지역에서 이렇게 살구 있구나. 나같이 중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거구나. 내가 살아온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배신감도 밀려왔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시설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윤국진씨가 서비스신청을 위해 음성군수에게 보낸 편지 중 –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설을 나가 지역사회에서 체험홈이나 그룹홈과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지만 가족과 시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곤 했다. 가족의 부담이 되기 싫어 시설에 들어왔는데 또다시 가족의 부담이 되어 시설을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서비스신청은 장애인 등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자립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탈시설-자립생활을 도울 책임을 국가와 지자체에 묻는 것이었다. 또한 서비스 제공방식은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지역사회에서의 보편적인 삶을 우선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자신과 같이 정보와 선택권을 차단당한 채 시설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보편적 권리로써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내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서비스변경신청을 한 이후 해당 시설은 가족들에게 연락하여 ‘강제퇴소조치’를 운운하며 불쾌해 했다. 시설의 연락을 받은 가족들은 ‘강제퇴소조치 또는 시설에 밉게 보여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하며 당사자들을 만류하고 있다. ‘시설에 있는 것이 안전하고 편안한 데 그런 무모한 일을 해서 시설에 물의를 일으키지 말라’고 야단도 치고 사정도 하며 시설생활을 종용한다. 시설과 가족들의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서비스변경신청을 받은 해당 시․군․구청은 서비스 변경신청에 대해 형식적으로 관련 서비스를 안내하는 공문 1장을 달랑 보냈을 뿐이다. 당장 커다란 변화가 있기 어렵다는 것을 예측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였다.
현재 3인의 장애청년들은 시설의 눈치와 가족과의 갈등,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을 참아내며 권리로써 탈시설화와 자립생활을 이루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나마 이들은 스스로 권리주장이 가능한 뇌성마비장애인이다. 시설생활인의 약 7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스스로 권리주장이 어려운 지적장애인 등의 경우’는 이러한 시도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2010년 1월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이 사례는 우리사회의 장애인복지서비스가 매우 열악하고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장애당사자의 자기결정과 선택에 대한 존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이 갖는 의미와 향후 과제
음성군청과 양천구청에서 보내온 회신 내용은 관련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을 뿐 해당 지자체의 복지서비스 ‘제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같이 무책임한 결과 통보가 이루어지기까지 음성군청은 일방적으로 면담약속을 정한 후 1차례 시설에 찾아와 시설관계자들이 동석한 가운데 15분간 면담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나마 양천구청은 면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고로 서구 복지국가들의 경우(우리가 복지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하는 미국조차)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사는 매우 중요하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복지선진국들은 공통적으로 거주서비스(residential service)등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공적인 통합적 서비스진단․조정체계』, 『공적인 이의제기절차』, 『서비스 이용자를 위한 권리옹호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외 서비스 제공자를 관리하기 위한 평가체계 등을 강화해왔다. 이러한 체계가 구축된 가장 큰 이유는 개별 이용자의 필요에 따른 서비스 제공을 통한 선택권 존중과 효율성 증진이라 할 수 있다.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되 이용자의 참여와 선택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추진된 데는 이용자 권리 보장과 함께 견제를 통한 서비스 질 관리와 효율성 증대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진행된 서비스변경신청은 ‘대규모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있는 자립홈 또는 그룹홈 등 보편적이고 제약이 적은 방식으로의 서비스 변경 요청’과 ‘종합적인 서비스지원계획 수립’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형식화된 『사회복지서비스진단체계』와 『이의제기 절차』를 작동시키려는 것이었다. 공적 체계는 아니지만 탈시설정책위 소속 변호사, 법․사회복지전문가, 활동가 등에 의한 권리옹호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권리옹호체계』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의미도 있다.
『사회복지서비스 진단/조정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민간의존률이 높은 데다 개별 서비스 내용이 파편화되어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서비스 신청권’은 이용자의 욕구에 따른 서비스 제공과 서비스 제공기관과 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제가 될 수 있다. 공적 서비스 진단과정에서 보편성, 제약의 최소화,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생활 등의 원칙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자들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이 이루어질 경우 시설보호에 대한 선호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최근까지 남아있는 대규모 주립시설은 더 이상 이용자가 없어 문을 닫고 있다. 미국 등 우리보다 앞서 탈시설화를 이룬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탈시설정책위는 현재 음성군청과 양천구청이 ‘서비스 신청에 대해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여 보호계획을 수립해야 할’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당사자들과 함께 ‘음성군과 양천구청에서 보낸 회신이 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에 의한 결정의 통지’인지를 확인하는 공문을 보내놓은 상태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전국 지자체에 사회복지서비스신청과 관련된 정보공개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만약 서비스 변경 신청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관할 지자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다양한 대응을 11인의 장애운동가를 비롯한 또 다른 당사자들과 벌여나갈 예정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2월호(제136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